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스치는 빗방울까지 전기로 쓴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95호   2024년 09월 16일
유독 더운 날씨로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한 이번 여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월평균 전력 수요는 87.8기가와트로 역대 월평균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루 중 수요가 가장 높은 1시간으로 집계하는 시장 수요와 시장 밖 전력 수요까지 포함한 총수요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이다.
 
더욱이 올여름은 2018년 이후 최악의 더위를 기록한 데 더해 기상 변동까지 잦았다. 태양광으로 대표되는 재생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기후와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오르내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여름처럼 내내 비가 오거나 국지성 호우가 잦다면, 관측 기관의 예상과 다르게 흐리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급증한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는커녕 평소의 수요를 안정적으로 채우는 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재생 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할 방법은 없을까?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는 유리창에 붙은 빗방울로 전력을 만드는 소자를 개발한 노준석 포스텍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 교수 연구팀의 연구가 실렸다. 이는 버려질 뻔한 에너지를 수집해 전기로 쓰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의 좋은 사례다. 에너지 하베스팅에는 어떤 유형이 있으며, 포스텍 연구팀의 신기술은 어떻게 작은 빗방울을 전기로 변환하는지 살펴보자.
 
스쳐 가는 모든 물질을 다시 보자
 
‘에너지 하베스팅’은 소리의 진동, 물질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 등 작지만 주변에서 쉽게 발생하는 에너지를 모아 유용하게 만드는 기술을 통칭하는 용어다. 순식간에 발생하고 사라지는 작은 에너지로는 운행 중인 자동차의 타이어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며 발생하는 마찰열처럼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우리 신체에서 피어나는 열처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도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태양에너지를 모아 전기를 만드는 태양광 발전도 에너지 하베스팅의 일종인 셈이다.
 
이 기술을 구현하는 데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원리가 작용한다. 하나는 압전 효과로, 이는 어떤 물질에 진동이나 압력을 가할 때 전류가 생기는 현상을 이른다. 결정 구조를 가진 물체가 눌리면 결정을 구성하는 분자나 이온 사이에 상태 변화가 일어나 전기장이 형성되기에 이러한 효과가 나타난다. 몇 년 전 국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팀은 폴리머 기반(이소불화비닐)의 압전 발전 장치를 선보인 바 있다. 연구팀은 도로를 달리는 차량 무게를 활용하는 압전 발전 장치에 도로의 미세한 진동만으로 크게 변형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해 압전 발전의 효율을 높였다.
 
다른 하나는 열전 효과다. 재료들 사이에 온도 차이가 있을 때 어느 한쪽으로 열이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르게 되는 현상이다. 이 효과는 웨어러블 기기에 주로 활용된다. 체온이 발생하는 피부에 부착한 부분과 공기 부분의 온도 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식이다.
 
태양열 대신 비를 활용한 전천후 에너지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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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노준석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빗방울 TeRC 시스템의 에너지 하베스팅 개념도. 날씨와 상관없이 작동한다. ⓒNature Communications
 
나노광학 메타 물질 연구 및 개발로 뛰어난 성과를 낸 노준석 교수 연구팀이 금번 개발한 소자는 마찰 전기 나노 발전 기술(TENG)과 복사 냉각(RC) 기술을 결합한 유리 기판이다. 이 장치는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으로 고안되었다. 비 오는 날에는 유리창과 빗물 사이의 마찰 대전 효과(서로 다른 물질이 붙었다가 떨어질 때 전하를 갖는 현상)를 이용해 전력을 만든다. 맑은 날에는 적외선을 반사해 실내 온도를 낮추어 에너지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다.
 
비를 활용한 에너지 전환 분야의 최신 연구에서는 액체인 빗방울이 깨끗한 고체 표면과 충돌할 때 전자가 이동하고, 이에 따라 정전기장이 형성되는 현상에 주목해 기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직접 변환하는 방법론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이 채택한 TENG는 압전 소자보다 순간 전력 밀도가 훨씬 높고, 가볍고 비용 효율적이다. 심지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할 수 있는 유도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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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왼쪽은 나노 발전 기술과 복사 냉각 기술을 합한 TeRC 기스템 기판 내부 구성과 그 기능을 소개한 그림이다. 오른쪽은 연구팀이 실제로 제작한 투명 유리 기판의 모습이다. Nature Communications
 
연구팀은 여기에 빗방울 TENG과 RC를 통합한 약칭 TeRC 시스템을 개발했다. 앞서 짚었듯 전력 발전 외에 에너지 절약까지 소자의 기능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용도에 따라 다양한 층으로 설계된 유리 기판의 상부는 마찰 전기 발전과 전극이 채우고, 하부는 태양열을 반사하고 열에너지를 방출하도록 구성했다. 또한 RC 부품과 호환되는 투명한 마찰 전기 층을 체계적으로 설계해 날이 개어 물방울이 증발함에 따라 복사 냉각을 통해 실내 온도를 낮추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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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빗방울 TeRC 시스템 전력으로 불 밝힌 LED. Nature Communications
 
장치의 성능은 어떨까? 에너지 발전 측면에서 물방울 하나의 에너지 변환 비율은 2.5퍼센트로, 에너지 생성률은 1제곱미터당 248.28와트를 기록했다. 체계적으로 최적화된다면 LED 100개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다. 에너지 절감 측면에서는 보통의 유리와 비교해 실내 온도가 최대 24.1도, 평균 8.2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에너지 하베스팅 장치는 다양한 저전력 기기에 활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 각지 어디에서나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볼 때 전 세계 강수량은 열대 우림 지대인 적도에 집중되지만, 머지않아 더 많은 이들이 뜨거운 햇빛과 그치지 않는 비를 교대로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기후의 변화에 따라 신기술의 방향 역시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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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맹미선 과학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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