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나치 핵무기!? 하이젠베르크의 변명

<KISTI의 과학향기> 제509호   2006년 10월 11일
최근 북한의 핵실험 강행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핵무기 개발은 언제나 과학의 사회적인 책임을 묻는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미국의 ‘맨하튼프로젝트’ 참여 과학자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때문에 비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맨하튼프로젝트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난 뒤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내손에는 피가 묻어있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비록 핵무기 개발에는 실패했지만 나치 독일 아래서 핵무기를 개발했던 독일 과학자들은 어땠을까? 당시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이끌었던 사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였다. 그는 1923년 22세의 나이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26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 정교수가 될 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이 젊은 천재 물리학자는 1925년 양자역학의 토대를 세우는 행렬역학을 만들고, 이어서 1927년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양자역학에 도입한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결정론적인 추론은 불가능하고, 확률론적인 추측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현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 공로로 하이젠베르크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이젠베르크는 청년운동 지도자로 적극 참가하는 등 정치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2차세계대전 중 미국 망명 권유를 뿌리치고 독일에 남아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물리연구소 소장으로 히틀러의 우라늄 계획을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이 1945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은 끝이 났다.

비록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졌지만 독일 과학자들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에 협력하려 했다는 ‘불순한 의도’에 대해 비판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이 미국보다 먼저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불순한 의도에 대한 해명’과 ‘무너진 자존심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절묘한 증언을 했다. “자신이 조국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한 양심적인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무기를 ‘안’ 만든 것이라는 얘기다.

정말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를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었을까?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성공한 원자로를 통한 플루토늄239 생산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에 대해 “자신은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폭탄이 아니라 발전소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의 그럴듯한 변명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지만, 몇몇 과학사학자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변명을 할 당시 그는 이미 미국 정부의 핵에너지 공식 보고서인 ‘스미스 보고서’(Smyth Report)’ 사본을 통해 미국 핵무기 계획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준비된 변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진위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1944년 미국 그로브즈 장군은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알소스(Alsos)’란 암호명의 특공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1945년 4월 경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우라늄클럽 과학자 10명을 체포해 영국 캠브리지 근처 팜홀이라는 시골에 6개월이 넘게 억류했다. 이곳에서 이들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비밀리에 녹음됐는데, 50년간 비밀로 분류됐던 이 자료가 90년대 후반 공개됐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 후 이들이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들어보자.

한 : 그들은 우리보다 50년 정도 앞서 있었어. 어떻게 30kg 정도의 순수한 우라늄 235를 가지고 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이젠베르크 자네는 왜 2톤이 필요하다고 했었나?
하이젠베르크 : 그들은 아마 우리가 모르는 동위원소 분리법을 사용했던 것 같아.
디브너 : 우리가 실패한 이유는 관리들이 즉각적인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미국처럼 장기적인 정책을 펴지 못한 게 우리가 진 원인이야.
바이체커 : 우리도 그들에 근접하긴 했지만, 결국 전쟁 중 완성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잖아.
하이젠베르크 : 나는 우리가 우라늄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가 폭탄을 만들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한 적 없네. 나는 그것이 폭탄이 아니라는 사실이 심장 밑에서부터 기뻤을 뿐이야.

대화를 통해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독일의 과학자들이 적어도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이론적 실수를 범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안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보다는, ‘만들려고 했어도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더 적절하다.

그럼 하이젠베르크가 나치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한 후 ‘선량한 독일인’들이 독일의 정권을 되찾게 되었을 때 독일의 과학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의도가 나치가 아닌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결정이 사회와 정치에 가져올지도 모르는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았던 점은 비판의 대상이다. 과학자가 과학의 정치적인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지금 북한의 핵실험에 참여한 과학자 중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과학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글 : 안형준 과학전문 기자)
평가하기
ㅇㅇ
  • 평점   별 2점

& #39;대화를 통해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39;라고 하면서 제목을 변명이라고 쓰는 건 뭔가요? 편향적인 기사가 아닌가 싶네요.

2019-09-08

답글 0

이미란
  • 평점   별 5점

잘 보았습니다.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2009-04-08

답글 0

보아
  • 평점   별 5점

현재 잘 알려진 리처드 파인만 교수의 이름도 명부에 올라있고요.

기자분이 던진 질문이 가슴을 치네요.

2006-12-19

답글 0

고스식구
  • 평점   별 3점

과학나라였나... 책에서 같은내용봤는데...

2006-11-26

답글 0

조사좀잘해
  • 평점   별 1점

2차대전중 가장유명했던 독일 과학자 두명 로켓과학자 폰브라운과 물리학자
하이젠 베르크였다 하이젠 베르크를 비판하는데 어떻게 보면 하이젠 베르크는
조국을 사랑한 과학자였고 독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같다 그러나
배신자 폰브라운을 보아라 자신을 출세를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많은 로켓을
만들었고 나사를 창립하는데도 기여했으며 지금도 폰브라운 상이라는 것이있다
하이젠 베르크는 자신의 출세가 아닌 조국을 사랑했고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며 망명하지도 않았고 전쟁이 끝난뒤에도 조국에 남았다
좀 제대로 글을 써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엉터리로 쓰지말고
그리고 하이젠 베르크는 현대물리학에 영향을 끼친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걸 명심해라

2006-10-18

답글 0

김동일
  • 평점   별 5점

요즘 폰노이만과 관계된 책을 읽고 있는데 여기도 맨하탄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봤음직한 모든 과학자 분들이 이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하고 계시다는데에 대해서 상당히 놀랍더군요. 폰 노이만, 존 내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등...

2006-10-16

답글 0

과학자가 되고
  • 평점   별 5점

과학자 의 양심적 판단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인데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알려주세요

2006-10-14

답글 0

자유시
  • 평점   별 4점

과학자가 사회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에 새삼 감동스럽네요. 우리나라의 하이젠베르크는 어디서 숨어 있을까요?

2006-10-14

답글 0

김현진
  • 평점   별 5점

고등학교 논술의 단골 주제네요..^^ 과학자의 가치 중립성에 대해 논해라..

2006-10-14

답글 0

김진수
  • 평점   별 1점

정치적 판단은 승자의 몫,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승자편에 있던 사람은 그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고, 패자 쪽에 있던 사람은 헛수고의 쓰라림 외에 정치적 판단에 대한 책임까지 추궁당해야 하는가? 북한의 핵실험에 참여한 과학자에 대해 그런 걸 묻는다면 미국의 핵무기 개발은 지고지선의 가치란 말인가? 종교인에 대해서까지도 국적을 묻는 이 극심한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시대에 과학자는 종교수준까지도 초월하는 성직자가 돼야하는가?

2006-10-12

답글 0

나무그늘아래
  • 평점   별 5점

정말 좋은 글이네요 ^^ㄳ

2006-10-12

답글 0

박상휘
  • 평점   별 4점

υ

2006-10-12

답글 0

lee
  • 평점   별 4점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내용을 통해 만들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즉, '안 만들었다'라는 주장이므로 '만들려고 했어도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위해 필요한 전제인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했다'가 성립하지 않네요. 물론 당시 상황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못 만들었다'라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하이젠베르크가 애초부터 만들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안 만들었다'도 틀리지는 않으므로 하이젠베르크의 '못 만든것이 아니라 안 만든것이다'라는 변명은 '안 만들려해서 못 만들었다'라고 고치면 어떨까요.

2006-10-12

답글 0

JJE
  • 평점   별 5점

너무 흥미로운 글이네요~
재밌게 읽었어요
감사감사~~

2006-10-12

답글 0

CJH
  • 평점   별 5점

하이젠베르크가 안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는 그의 속을 뒤집어볼 재주가 없는 한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이 직접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면, 달리 토를 달면서 왈가왈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군요.

그 분의 전체적인 성품이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단편적인 한 장면을 가지고 모종의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려 하는 것은 그 분께 대단히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또한 그분의 청년운동에 대한 언급이 혹시라도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기를 유도하는 것이라면, 그건 아니었던 걸로 전에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면 보다 자세히 알게 되겠지요.)

어찌되었건, 독일은 불행 중 다행으로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전과까지는 범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2006-10-12

답글 0

경제학자
  • 평점   별 5점

하이젠베르크 스스로가 자기들이 몰랐던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군요. 기자는 "만들려고 했어도 (즉 만일 만들 생각이 있었다 하더라도)..."라는 단서를 달아놓고 있기 때문에,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이 틀린 게 아닙니다. 정확한 표현이군요.

2006-10-12

답글 0

박상휘
  • 평점   별 5점

////

2006-10-12

답글 0

김사무
  • 평점   별 5점

고등학교 과학 자습서 하이탑 화학2에 하이젠베르크 사진있는데
미남이더라......

2006-10-11

답글 0

재범
  • 평점   별 5점

어떻게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요?

2006-10-11

답글 0

주명식
  • 평점   별 5점

좋은 글이네요~

2006-10-11

답글 0

kims
  • 평점   별 5점

하이젠베륵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다
나치스가 핵무기를 개발은 했지만 결국 발사대를 문제사용하지 못하였다
엔리코 페르미와 하이젠베르크는 2차대전에서 빠질수 없는 최고의 물리학자다 !

2006-10-11

답글 0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링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