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폰 노이만과 프로그램 내장방식
<KISTI의 과학향기> 제1028호 2009년 12월 30일
현대 컴퓨터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 게임이론을 창시한 사람, 인공생명체의 가능성을 연구한 사람,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 이 모든 일과 관계된 사람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 주인공이 바로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존 폰 노이만’(1903~1957)이다. 1903년 12월 28일 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디지털 시대는 상당히 늦게 시작됐을 것이다.
노이만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10살 때 김나지움 학교에 들어가자 그의 재능을 알아 본 한 교사가 부다페스트대 출신의 수학자 미차엘 페케테에게 정기적으로 개인교습을 받도록 추천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공동저자로 수학학술지에 논문을 싣기도 했다.
1930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노이만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객원교수의 자격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는 헝가리가 나치의 편이 되는 것을 우려했고 거기에 휩쓸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핵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이 역시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노이만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수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특히 1944년 오스카르 모르겐슈타인과 ‘게임과 경제행동 이론’을 저술해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창시했다. 그들은 게임에도 최선의 방법이 존재하며 수학적으로 그 과정을 증명해 냈다.
또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아담 스미스의 ‘개인의 최대 이익이 곧 전체의 최대 이익’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입장을 완전히 뒤엎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노이만의 순수연구는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점차 응용분야로 확장돼 갔다. 1941년에는 전쟁과 관련된 연구가 전체 연구 시간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는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에 깊이 개입하면서 컴퓨터 개발의 역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기게 된다. 당시 원자폭탄과 관련된 다양한 모의실험을 위해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이만이 제안한 것은 바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다. 노이만은 1944년 에니악(ENIAC) 개발에 참여하다가 컴퓨터에 다른 일을 시키려면 전기회로를 모두 바꿔줘야 하는 불편함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프로그램 내장방식이란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중앙처리장치(CPU) 옆에 기억장치(memory)를 붙인 것인데, 프로그램과 자료를 기억장치에 저장해 놓았다가 사람이 실행시키는 명령에 따라 작업을 차례로 불러내어 처리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에니악 컴퓨터는 작업을 할 때마다 전기회로를 바꿔 끼워야 했지만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에서는 소프트웨어만 바꿔 끼우면 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도 노이만의 개념에 따라 설계되고 있다.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 이 개념은 굉장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컴퓨터 운영은 작업에 따라 계산 알고리듬을 개발하고 이에 맞춰 진공관을 일일이 교체하거나 종이테이프를 이용해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교체하는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마침내 노이만의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실에서 공부했던 영국 유학생 모리스 윌크스가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에드삭(EDSAC) 컴퓨터를 개발함으로써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방식 컴퓨터가 탄생했다.
노이만은 물리학에도 관심을 갖고 맨해튼 프로젝트뿐 아니라 수소폭탄 개발계획에도 참여했다. 플루토늄의 내파 비율에 관한 그의 계산 방식은 원자탄을 개발한 핵 과학자들이 과거 수차례 실패한 실험을 교정해줬다.
1945년 8월, 이론적인 핵폭탄 위력이 일본에서 대참사로 나타나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류를 위해 이바지한다고 믿었던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인류의 생명을 앗아가는 잔혹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손에 묻은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며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 핵무기 폐기를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했다. 또 핵폭탄 개발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레오 질라드는 아예 전공을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꿔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노이만은 끝까지 핵폭탄 개발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는 “미국이 강력한 무장을 해야 한다”며 “소련에 수소폭탄을 투하해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을 사전에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행동은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 줬다. 노이만은 1957년 골수암으로 숨을 거뒀는데, 그가 수소폭탄 실험에 직접 참관한 것이 암에 걸린 원인으로 알려졌다.
노이만의 게임이론으로 두 나라의 핵개발 문제를 살펴봤을 때 가장 좋은 선택은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알았을 노이만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개발을 왜 옹호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노이만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10살 때 김나지움 학교에 들어가자 그의 재능을 알아 본 한 교사가 부다페스트대 출신의 수학자 미차엘 페케테에게 정기적으로 개인교습을 받도록 추천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공동저자로 수학학술지에 논문을 싣기도 했다.
1930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노이만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객원교수의 자격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는 헝가리가 나치의 편이 되는 것을 우려했고 거기에 휩쓸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핵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이 역시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노이만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수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특히 1944년 오스카르 모르겐슈타인과 ‘게임과 경제행동 이론’을 저술해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창시했다. 그들은 게임에도 최선의 방법이 존재하며 수학적으로 그 과정을 증명해 냈다.
또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아담 스미스의 ‘개인의 최대 이익이 곧 전체의 최대 이익’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입장을 완전히 뒤엎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노이만의 순수연구는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점차 응용분야로 확장돼 갔다. 1941년에는 전쟁과 관련된 연구가 전체 연구 시간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는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에 깊이 개입하면서 컴퓨터 개발의 역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기게 된다. 당시 원자폭탄과 관련된 다양한 모의실험을 위해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이만이 제안한 것은 바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다. 노이만은 1944년 에니악(ENIAC) 개발에 참여하다가 컴퓨터에 다른 일을 시키려면 전기회로를 모두 바꿔줘야 하는 불편함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프로그램 내장방식이란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중앙처리장치(CPU) 옆에 기억장치(memory)를 붙인 것인데, 프로그램과 자료를 기억장치에 저장해 놓았다가 사람이 실행시키는 명령에 따라 작업을 차례로 불러내어 처리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에니악 컴퓨터는 작업을 할 때마다 전기회로를 바꿔 끼워야 했지만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에서는 소프트웨어만 바꿔 끼우면 되는 셈이다.
![]() |
<폰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오늘날 컴퓨터의 발 전에 크게 기여했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도 노이만의 개념에 따라 설계되고 있다.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 이 개념은 굉장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컴퓨터 운영은 작업에 따라 계산 알고리듬을 개발하고 이에 맞춰 진공관을 일일이 교체하거나 종이테이프를 이용해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교체하는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마침내 노이만의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실에서 공부했던 영국 유학생 모리스 윌크스가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에드삭(EDSAC) 컴퓨터를 개발함으로써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방식 컴퓨터가 탄생했다.
노이만은 물리학에도 관심을 갖고 맨해튼 프로젝트뿐 아니라 수소폭탄 개발계획에도 참여했다. 플루토늄의 내파 비율에 관한 그의 계산 방식은 원자탄을 개발한 핵 과학자들이 과거 수차례 실패한 실험을 교정해줬다.
1945년 8월, 이론적인 핵폭탄 위력이 일본에서 대참사로 나타나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류를 위해 이바지한다고 믿었던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인류의 생명을 앗아가는 잔혹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손에 묻은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며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 핵무기 폐기를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했다. 또 핵폭탄 개발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레오 질라드는 아예 전공을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꿔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노이만은 끝까지 핵폭탄 개발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는 “미국이 강력한 무장을 해야 한다”며 “소련에 수소폭탄을 투하해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을 사전에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행동은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 줬다. 노이만은 1957년 골수암으로 숨을 거뒀는데, 그가 수소폭탄 실험에 직접 참관한 것이 암에 걸린 원인으로 알려졌다.
노이만의 게임이론으로 두 나라의 핵개발 문제를 살펴봤을 때 가장 좋은 선택은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알았을 노이만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개발을 왜 옹호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이에 커피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커피의 소비량은 ‘차(茶)’의 소비량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는 많은 국가에서 차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인 외에도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건강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국내외 데이터 잇는 KREONET, 미래 과학기술을 부탁해!
- [과학향기 Story] 국제 협력을 통한 기술 표준화, 상생의 길을 열다
- [과학향기 Story] 인간의 뇌, 와이파이보다 느리다니?
- [과학향기 Story] 인공지능이 맛보는 위스키의 미래
- [과학향기 Story] 유전정보 담는 DNA… 빅데이터 · 우주 시대 이끌 새 저장장치로 각광
- [과학향기 Story] AI 전문가, 인간과 함께 미래 유망기술을 꼽다
- [과학향기 for Kids] 산타할아버지는 언제 한국에 도착할까?
- [과학향기 Story] 범람하는 가짜 정보 속,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사이언스온’으로!
- [과학향기 Story] 사이버 안보 위협하는 사이버 공격, 어떻게 대응할까?
- [과학향기 for Kids] 창과 방패의 전쟁, 사이버 공격 VS 사이버보안
폰 노이만. 핵무기 개발.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010-02-02
답글 0
노이만이라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것도 같은대 자세하게 안 것은 처음이네요 좋은 정보입니다.
2010-01-08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