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할머니 손맛의 비밀을 알려주마~ 장독

<KISTI의 과학향기> 제485호   2006년 08월 16일
예전에 어느 TV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 장독에 대해 다루면서 독특한 장면을 내보낸 적이 있다. 벌들이 날아와서 장독에 꼬이는데, 뚜껑이 있는 윗부분이 아니라 장독 중간의 몸체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장독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그야말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고유의 장독에 어떤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기에 이런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장독의 과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장독은 그 파편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수많은 기공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독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흙은 입자 크기가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굽는 과정에서 이 불규칙한 입자들이 아주 작은 공간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숨구멍들은 공기는 투과하지만 물이나 그 밖의 내용물들은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독 안에 김치나 기타 발효음식들을 넣어 저장해 두면 독 바깥에서 신선한 산소들이 끊임없이 공급되어 발효 작용을 돕는다. 또한 공기 순환도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음식의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기도 한다. 벌들이 꼬이는 것은 물론 장독 안 내용물의 냄새 분자들이 장독 몸체를 통과해서 밖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장독의 숨구멍들이 생기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옹기를 굽는 동안 온도가 섭씨 800도 이상이 되면 ‘루사이트 현상’이 나타난다. 루사이트는 백류석이라고도 부르는 일종의 화산암이며, 자연 상태에서는 화산의 용암이 굳은 곳 등에서 관찰이 된다. 장독이 구워지는 동안 재료인 고령토가 이 루사이트로 변하게 되는데 이때 광물의 결정 구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결정수들이 빠져나가면서 미세한 공간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공들은 공기는 통과하지만 물은 투과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스펀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장독이 제 구실을 하려면 당연히 재료가 되는 흙부터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겉에 바르는 유약이다. 전통적인 천연 유약을 쓴 재래식 장독을 최상품(上品)으로 치는데, 여기서 천연 유약이란 솔가루나 콩깍지 등에다가 특수한 약토를 섞어 두 달 이상 삭힌 뒤 앙금을 내린 잿물이다. 흔히 ‘조선 유약’으로도 불린다.

요즘에는 광명단이라는 일종의 중금속성 유약을 발라서 저온에서 구워내는 장독이 많은데, 여기엔 납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겉보기에는 마치 도자기처럼 반들반들하게 검은 광택이 나지만 사실은 숨구멍이 막혀 있는 것이다. 코팅된 유약이 장독 바깥 표면을 완전히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장독은 유약의 중금속 성분이 발효되던 산성 식품에 녹아 배어들어 우리 몸에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을 담가도 숙성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천연황토에다 조선유약을 발라 섭씨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낸 항아리야말로 바로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원조 장독이다.

또 장독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전라도나 경상도처럼 남쪽 지방에 살던 분이 서울이나 경기 지역으로 오면, 분명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솜씨를 발휘해서 장을 담아도 미묘하게 맛이 달라진다. 이는 각 지역에 따른 장독의 특징을 무시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일이다. 중부 이북 지방의 장독은 대체로 입이 크고 배가 홀쭉하며 키는 큰 편이다. 반면 남부지방의 독은 배가 나온 대신 입은 작다. 이는 일조량의 차이를 감안한 구조로서, 남부는 중부에 비해 기온도 높고 일조량이 많으므로 수분 증발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입을 작게 만드는 것이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손맛이 변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중에는 장독이 달라져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장독 하나에도 상당히 복잡한 과학적 원리들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만의 전통 음식들 중에는 발효식품의 비중이 매우 높다. 각종 김치와 젓갈에다 된장, 식초, 그리고 막걸리 같은 발효주도 있다. 이들 발효식품들은 장독이라는 고유의 용기가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양의 과학기술만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 생활양식 역시 수 천 년을 이어 내려오며 숱한 시행착오와 경험이 쌓여 집대성된 소중한 과학 유산이다. 비록 서양식으로 수치를 통해 과학 원리를 규명해 내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더뎠다 하더라도, 그 전통의 지혜 자체는 조금도 뒤질 것이 없는 훌륭한 자산이다. 흔한 항아리 하나에도 고도의 복잡한 과학적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다시금 새겨보자. (글 : 박상준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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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방짜 그릇이라던지, 옹기라던지 이런 과학이 숨어 있는 그릇들을 발전시켜 수출하면 좋을텐데.. 안타깝네요. 아직도 저희 베란다에는 장독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아파트라서 제대로 기능을 할지 의문스러워요.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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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덕
  • 평점   별 5점

이런 장독 하나에도 그만한 기술과 노-하우가 배어있군요, 역시 우리나라의 조상님들의 머리도 가히 대단하셨어요, 그러한 기술을 현대의 기술로 전환하여 길이 보존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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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자
  • 평점   별 5점

50

고향에 있는 50년이상된 윤기도 없은 장독 장맛좋기로 소문난 집인데 지금은 부산에 있는 광명단 장독의 장맛이 더좋아요
담는 사람의 손맛이 장독보다는 영향이 더크다

200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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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자
  • 평점   별 5점

그럼 장독이나 도자기 같은 용기들은 동양에서만 발달되었나요?
서양의 전통용기들은 어떤 과학적인 장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 :)(..)(: )('')( :)(..)데굴데굴~~~~~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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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발트
  • 평점   별 4점

// 재미돌이님 : 우선 비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으로 보는것입니다. 광명단 옹기는 환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느낌이 듭니다. 낮은 온도에서 굽기 때문이죠. 그리고 쉽게 깨지기도 하고요. 약간 덜 익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격에서 많은 차이가 나죠..손이 많이 가거든요..온도, 유약 등등..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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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이주인
  • 평점   별 5점

이런 원리가 있다니.. 우리 선조들이 멋있어 지네요..^^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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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가이
  • 평점   별 5점

우리 고유의 장독에 이런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니....너무 멋지네요.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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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영
  • 평점   별 5점

아 그렇군요~ 저는 요즘 나오는 장독도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장독에 중금속이 있다니, 무섭군요^^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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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용
  • 평점   별 5점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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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   별 5점

그랬었군..장독의 유약과 재료가 달라져 옛날처럼 맛깔나는 김치를 못만든다는거..어머니 솜씨가 변한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주변 여건이 점점 죽어간다는걸 의미하는군..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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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돌이
  • 평점   별 3점

조상님들의 생활과학을 느켜집니다. 그런데 천연황토에다 조선유약을 바른 전통항아리와 광명단을 바른 요즘항아리를 비교 구분할수 있는 좋은 방법 없나요?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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