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해외여행 시차 극복 비결, ‘아침 배꼽시계 채우기’

<KISTI의 과학향기> 제3899호   2023년 10월 09일
10월 2일이 일요일인 10월 1일과 개천절(10월 3일) 사이에 낀 대체 휴무일로 지정되면서, 대한민국은 추석 연휴(9월 28일~30일)를 포함한 엿새 황금연휴를 지냈다. 긴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으로 새로운 경험을 맛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여행 시작과 끝에서 겪는 시차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도 존재한다. 시차 피로는 여행객들에게 밤낮이 바뀐 것 같은 피로감과 두통을 느끼게 하고, 심하면 위장에 탈을 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집중력 저하와 어지럼증, 기분 변화 등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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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든든한 아침식사가 시차 피로를 극복할 간단한 비결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출처: Shutterstock
 
시차 피로를 극복할 간단하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팁이 하나 있다. 여행지에 도착한 당일,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하는 것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와 산타페 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일주기 리듬을 모방하는 수학적 모델을 개발해, 빛과 음식 같은 외부 신호가 시차 피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카오스(Chaos)’에 발표했다. 시차 피로의 원인과 아침 식사가 시차 적응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자.
 
시차 피로의 원인은 ‘엉켜버린 생체시계’
시차 피로는 우리 몸의 일주기 리듬 ‘생체시계’와 연관이 있다. 생체시계는 간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에 존재해 24시간 주기로 활동하며, 해가 지면 잠을 유도하고 아침이 되면 분비가 멈추는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의 분비를 조절한다.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날이 밝으면 잠에서 깨고, 어두워지면 잠드는 것도 생체시계 덕분이다.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지는 이유도 생체시계의 일종인 ‘배꼽시계’가 작동해 소화효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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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방문지 시간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시차 피로가 발생한다. 출처: Shutterstock
 
한국과 타지 사이의 시차가 5~6시간 이상 벌어지면 몸이 인식하는 생체시간과 방문지와의 부조화가 발생한다. 몸의 입장에서는 자야 할 시간에 깨어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밤에 잠들고 아침에 깨는 수면 리듬과 함께 체온과 맥박, 혈압 같은 신체 리듬이 모두 깨지게 된다. 외부환경과 생체시계가 일시적인 차이를 보이면 시차 피로 같은 단기적 증상이 주로 나타나지만, 차이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자가면역질환 같은 난치성 만성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시차 피로 극복법, ‘아침은 왕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연구팀은 인체에 대한 근사치인 수학 방정식을 사용해 여러 생체시계가 동기화되지 않을 때 시차 적응이 힘들어지는 원리를 풀어냈다. 연구팀의 수학적 모델에 따르면 각 생체시계는 진동자 두 개가 결합한 것과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연구팀이 계산한 결과, 사람의 몸속에는 생체시계가 하나가 아닌 여러 종류가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 생체시계는 빛과 태양 주기에 반응하지만, 말초 신경은 식사 시간 같은 신호로 조절된다. 이러한 생체시계들이 서로 엉키고 동기화가 되지 않으면 시차 피로 증상이 유발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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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연구팀이 개발한 일주기 리듬 수학적 모델 개략도. 출처: Chaos
 
따라서 연구팀은 소화기관인 위의 생체시계에 변화를 줘, 뇌의 생체시계를 조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위의 생체시계를 새로운 시간대에 적응시키는 방법이 바로 아침 식사를 많이 먹는 것이다. 이번 모델링 연구를 주도한 노스웨스턴대 수학자 이통 황(Yitong Huang) 박사는 “타지에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사흘 동안 든든히 먹으면 시차 피로를 좀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저녁에는 과식과 야식을 피할 것을 권했다. 규칙적인 식사 시간을 정하고 자주 바꾸지 말라는 점도 강조했다. 식사 일정을 계속 바꾸거나 밤에 식사하면 생체시계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젊었을 때는 생체시계 간 동기화가 쉽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포가 노화돼 동기화가 어렵고 시차 피로가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발견했다. 나이가 들면 생체시계가 더 쉽게 깨지거나 다시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릴 수 있어, 이러한 과정을 좀 더 길게 이어가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로즈메리 브라운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각각의 생체시계가 시차뿐만 아니라 노화 과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며 “생체시계 간 동기화가 일시적으로 잘 안되면 시차 피로로 끝나지만, 장기적으로 안 되면 불면증과 우울증, 암, 노화 등 각종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명과 초콜릿, 운동도 시차 극복에 좋아
노스웨스턴대 연구팀 이전에도 과학자들은 시차를 극복할 방안을 연구해왔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찰스퍼킨스센터 연구팀은 호주 콴타스 항공과 협업해 뉴욕이나 런던에서 시드니까지 20시간 동안 진행하는 시험 비행 3차례에 자원한 승객 23명을 대상으로 기내 경험의 변화가 시차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우선, 참여자들이 목적지 시간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객실 조명 일정을 조정했다. 참여자들은 비행이 시작될 때 밝은 빛에 노출되고, 마지막 10시간 동안은 어두운 조명 속에서 지냈다. 졸음 또는 각성을 유도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었다. 시험 비행 중 콴타스 항공은 칠리와 초콜릿, 카페인 같은 각성을 돕는 음식을 승객들에게 제공했다. 수프 같은 편안한 음식과 트립토판이 많이 들어간 음식, 치킨과 빵 같은 탄수화물도 제공해 잠을 유도하기도 했다. 기내에서 안내 비디오에 따라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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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빛을 피해야 할 시간에 햇빛이 들거나 조명이 밝다면, 선글라스나 눈가리개로 시야를 어둡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출처: Shutterstock
 
시험 비행 연구 결과, 참여자들은 비행 후 이틀 동안 시차 적응 문제에 덜 시달리고 수면의 질과 인지능력이 더 개선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비행기 내에서도 이러한 작은 실천만 지켜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피곤함을 덜 느끼고, 시차에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비행기 안이라도 여행자 개인마다 시차에 적응하는 방법이 다르다”며 “빛에 노출될 시간이라면 영화를 볼 때 컴퓨터 밝기를 높이고, 빛을 피해야 할 시간이 된다면 짙은 선글라스를 끼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업무를 비롯한 일상으로 돌아가자니 아쉽고, 시차 때문에 몸이 힘들 수 있다. 국내 소설가 은희경은 여행 수필집 <안녕 다정한 사람>에서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라고 비유했다. 이러한 명언을 떠올리며 시차 피로 극복법과 함께 활기찬 하루를 맞이해보자.
 
 
글: 강지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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