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모기 꼼짝 마! 천연 모기 퇴치제 만들기

<KISTI의 과학향기> 제1392호   2011년 07월 18일
고민하다가 결국 일을 쳤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자는 게 내 좌우명이다. 언제부터였느냐면 오늘부터.

다시마 숲에 사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유모에게 들은 것만 합쳐도 귀에 딱지가 다시마 길이만큼 앉았을 거다. 그 유모는 또 자기 유모에게서 들었다네? 아니 그럼 대체 그 마녀는 몇 살이나 먹었다는 거야? 지상 생물에 비하면 우리 수명이 좀 긴 편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500살이 넘은 건 심하지 않나. 얼마 전에 최고령 군인으로 훈장 받은 거북 대원수도 230살인데.

정식 의사 면허는 없지만 성형이나 피부 미용 쪽은 또 그렇게 잘 해준다네. 이것도 유모에게서 들은 거다. 지금도 비늘을 빛나게 하는 약을 계속 사 먹고 있다던데, 내 눈이 옹이구멍인지 아니면 마녀가 사이비인지 전혀 빛나 보이지 않는다. 속이 좀 쓰리지만 내 눈 문제로 덮어 두자. 왜냐하면 나도 오늘 상담을 받으러 갔거든.

정말 방법이 없었다. 지상 사람들은 인어를 괴물로 본다는데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니면 약으로 잡아먹는다면서? 뭐라더라, 우릴 먹으면 불로불사한다는 전설이 동방 어디 섬나라에 전해 내려온다는데 그거 다 뻥이다. 그럼 우린 왜 늙어 죽겠냐고. 게다가 우린 지상 생물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아, 피 냄새 나면 일단 씹고 보는 상어는 빼고. 인어는 고고하단 말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교육 받고 자랐다. 물 냄새도 안 나는데다 쓰레기만 버려대는 인간 따위 뭐가 맛있다고. 게다가 그 인간 왕자 생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대는데 먹이로 삼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래 어차피 내 일기장이니까 쓰는 건데 그놈, 아니 그 분이 좀 심하게 잘생기긴 했다. 꼬리만 달렸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 보는 건데! 인간들은 왜 다리 같은 쓸데없는 기관을 달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아가미도 없잖아. 그럼 물속에서 어떻게 숨을 쉬지?

어쨌든 인간 남자에게 반했다. 물 위에 나가서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해보려면 인간이 되는 거 외엔 방법이 없다. 이 동네에서 그 비법 아는 사람은 마녀뿐이다. 오케이, 결론은 모두 나왔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뒷문으로 몰래 나와 다시마 숲까지 헤엄쳤다. 진짜 오지게 멀더라. 얼마 전에 물 위로 올라간다고 체력 쌓는 특훈을 받아둔 게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택시 불렀을 거다. 그럼 아바마마 귀에 직통으로 들어간다.

마녀는 그냥 좀 깐깐하게 생긴 할머니였다. 내 사정을 듣더니 코웃음 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 할머니 아니면 방법이 없기에 억지로 참았다. 그간 내 인내심이 허무하게 대충 이야기 들어주고 키랑 몸무게 좀 재보더니 진찰 끝났으니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오라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걸로 끝이냐 했더니 원래 상담은 짧게 끝내는 거라나? 그러면서 전복 껍데기는 두 개나 받아갔다.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낸 거니 국민이 돌려받아야 한다나? 흥. 세금도 안 내는 무허가 의사인 주제에.

열째 날

오늘은 휴일이기에 아침 먹고 바로 다시마 숲으로 갔다. 휴일에도 공부 좀 하라고 가정교사는 늘 쫑알대지만 자신도 휴일에 쉬면서 왜 날 일하게 만드나? 이런 애들이 꼭 주말에 인터넷 쇼핑몰 전화 안 받는다고 짜증내지.

할머니는 여전히 떫은 표정을 짓고 계셨다. 껍데기 내는 사람은 나인데 왜 욕먹는 것까지 내 몫인가. 같이 떫은 표정을 짓고 맞서자니 이젠 대놓고 한숨까지 쉰다. 어린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나 어쩐다나. 아 진짜, 저 얼마 전에 성인식 했거든요? 애 아니거든요? 물론 무서워서, 아니 체통을 지키기 위해 속으로만 외쳤다.

할머니 왈, 성형과 다이어트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란다. 마음에 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짓은 오히려 독이라고 입에 침을 물었다. 왜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지 못하냐고 난리를 치는데 오히려 내가 반문하고 싶어졌다. 잘생긴 왕자님께 한눈에 반한 것은 맞지만, 인간이 되고 싶다는 건 오롯이 내 소망인데 그게 왜 나를 위한 게 아닌 거지? 혹시 연애해본 적 없으신가. 역시 무서워서 물어보지는 못했다. 자존심 잘못 건드려서 이상한 약 받으면 나만 손해다.

한동안 설교를 늘어놓더니 인간이 무서운 생물이라나 어쨌다나. 그건 저도 충분히 알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왕자님이 좋은 거구요, 어쨌든 입 다물고 속으로만 꽥꽥거렸다. 그래도 그렇게 다리를 달고 싶으냐고 묻는다. 지상의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물 밖에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행위인지, 자신을 받쳐주는 부력이 없는 곳에서 받는 중력이 얼마나 무겁고 강한지에 대한 잔소리도 이어졌다. 그뿐이랴, 다리를 달면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마치 난파선에 가득한 뾰족한 도기 조각에 몸을 맡긴 채 뒹구는 것 같은 고통 속에 매 분, 매 초를 견뎌야 할 거라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확실히 마지막 엄포는 좀 강력했다. 하지만 설마 말미잘 선생네 치과보다 더 아플까. 으, 쓰다 보니 신경을 건드리는 그 촉수 드릴 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다.

아 참 이거 잊으면 안 되지. 오늘 지불, 아니 강탈당한 껍데기는 무려 네 장…. 경찰에 확 찌를까 보다.

열일곱째 날

가정교사가 몸이 안 좋다고 일찍 퇴근해버렸다. 나는 조퇴도 안 시켜주면서…. 하지만 수업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치료 받는 시간이 길어지니 아바마마께 이르진 않았다. 난 착한 학생이다.

이제 다시마 숲까지는 눈 감고도 간다. 기껏 갔더니 이상한 약을 만들면서 나한테도 일을 시켰다. 지상에서 꼭 필요한 약이라던데 그러면 본인이 만들어서 날 주면 되지 않나. 분량이 얼마 없다고, 나도 방법을 알고 있으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라며 뭐라 뭐라 변명은 하시던데 그건 넘어가자.

어쨌든 국화라는 지상 식물에서 추출한 기름, 아 맞다 시트로렐라 오일, 거기에 깨끗한 물과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알코올이라는 약품을 섞은 아주 간단한 약이었다. 굉장히 좋은 향이 나던데, 할머니 말로는 역시 지상에서 나는 레몬이라는 과일의 향과 똑같단다. 봐, 지상은 이렇게 좋은 곳이잖아. 물론 바닷속에 가득한 물 냄새를 좋아하긴 하지만 난파선에서 찾은 예쁜 병 속의 향이 더 좋단 말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이 약은 지상에 사는 모기라는 생물을 쫓을 때 사용하면 된단다. 인간이나 인어, 다른 동물의 피를 빨고 사는 해충이라나. 우리가 바닷속의 벌레를 거느리는 것 같이 지상의 인간들도 그 곤충이라는 벌레를 거느리고 지도하면 될 텐데 할머니 말로는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아바마마 말씀처럼 지상의 인간이 우리보다 하등하기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인간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선입견은 버려야지!

모기도 바닷속 벌레처럼 수컷과 암컷이 있다고 한다. 수컷은 꽃의 달콤한 꿀을 먹고 살지만 암컷은 피를 좋아한다고, 암컷이 알을 낳기 위해서는 동물의 피에서 영양분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모기는 2m 이상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쁘지만 인간이나 동물의 땀 속에 섞인 성분은 20m 밖에서도 감지할 정도로 촉각이 발달했다나.

할머니는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자연의 섭리니 그냥 피하라고 했지만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되면 정말 싫을 것 같긴 하다. 모기가 긴 관으로 피부를 쿡 찔러서 피를 쭉쭉 빨고 나면 모기 침 속의 성분 때문에 물린 곳이 빨갛게 붓고 가렵다던데…. 내 보들보들하고 하얀 피부가 울긋불긋해지다니 그건 정말 싫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이상한 병도 옮기고 다닌다니 끔찍해. 아니 왜 인간은 그런 곤충 하나 제대로 못 다스리는 거냐고! 내가 가서 비법이라도 전수해줄까 보다.

물속의 온도에 익숙해져 있는 내 피부가 밖에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모기가 좋아하는 땀이 많이 날지 어떨지도. 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서 물이 나온다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할머니는 이번에 만든 약을 자주 뿌리면 시트로렐라 오일을 싫어하는 모기가 가까이 오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어도 되나. 만에 하나 모기에 물린 자리가 부어오르면 침 같은 거 함부로 발라서 균 들어가게 만들지 말고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다음 제대로 된 치료제를 바르라는 명령도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 또 들은 주의사항. 인간들은 약이 안개처럼 뿜어지는 스프레이? 뭐 그런 걸로 모기를 잡는다던데, 그 안에는 환경호르몬인 ‘퍼메트린’이 들어있다나. 환경호르몬은 나도 잘 안다. 얼마 전에 괜히 바닷가까지 놀러갔던 꼬맹이 물고기 몇 마리가 갑자기 여자애로 변해서 다들 난리 났더랬지. 걔들 분명 남자애였는데! 퍼메트린은 그런 성분은 없지만 피부나 눈이 따끔거리거나 염증이 나고 기침, 재채기, 코 막힘, 호흡 곤란 같은 증세도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 무서운 약을 함부로 뿌려대다니, 역시 인간들은 어리석다. 뭐 적정량을 사용하고 환기를 잘 하면 좋다고 하지만….
오늘은 약 만들었다고 껍데기를 열 장이나 빼앗아갔다. 레몬 향이 좋아서 봐준다, 쳇.

스물넷째 날

지금 내 손에는 병이 하나 들려있다. 마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처럼 맑은 푸른빛을 띠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는 유리병. 하지만 난 이 액체의 원래 정체를 알지. 이게 끓기 전에는 분명 시궁창 냄새를 풀풀 풍겨대던 구중중한 녹색의 걸쭉한 놈이었다고! 무슨 마법처럼 - 음, 확실히 그 할머니 직업은 마녀지만 - 지금 색으로 변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펄쩍 뛰어 오르다가 냄비에 지느러미 끝을 데어버린 건 속 쓰린 일이다.

이 액체, 이 꺼림칙한 약을 먹으면 난 인간이 된다. 그 왕자님처럼 기다랗고 가느다란 다리로 배 위를 사뿐사뿐 걸어 다닐 수 있겠지. 지느러미 끝을 아무리 세워 봐도 되지 않았던 일을 해낼 수 있는 거다! 내일 아침, 아무도 없는 새벽에 몰래 바닷가로 올라가 약을 죽 들이키면 모든 게 끝난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이 이제 열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이 영 두근대지 않는다. 사랑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하는 거라던데, 그럼 내 사랑은 이미 식은 걸까. 큰 언니가 놀리던 말마따나 열여섯 짜리의 첫 사랑은 십육일이면 끝나버리는 건가. 그럴 리 없다. 아직도 왕자님 얼굴만 떠올리면 얼굴부터 지느러미 끝까지 빨개진단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두근대긴 한다. 그런데 영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아니다. 괜찮을까 하는 두근거림이다. 아 망했어. 괜히 그 마녀에게 상담했나봐. 그 할머니 세 번 만났더니 이렇게 이상한 말만 머릿속에 새겨 놓고…. 뭐? 내 목소리를 받아 가? 왕자님의 고백을 듣지 못하면 물거품이 돼?! 왜 그런 중요한 말을 나중에야 말하냐고! 미리 들으면 내가 도망갈 것 같아서 그랬나? 그래, 그게 분명하다. 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갖고 놀면서 전복 껍데기를 최대한 많이 뜯어내려던 속셈이 분명하다. 하여간 ‘사이비’자 붙은 것들은 다 똑같아. 그 딴 마녀를 믿고 용돈을 탈탈 턴 내가 미친 인어지.

그러니까 이 두근거림은 분명 두려워서일 거다. 아무래도 지상의 생활은 많이 낯설겠지. 다리가 생길 때는 정말 아프다던데, 그건 괜찮을까. 걷는 건 더 힘들 텐데, 아가미가 없으면 숨도 못 쉴 텐데. 무엇보다 걱정인 건 이거다. 왕자님도 날 좋아해줄까. 인간은 자신과 다른 종족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꽉 막힌 생물이라고 들었다. 내게 다리가 생기더라도 물속에서의 습관은 그대로 남아있을 텐데, 그걸 보고 날 마녀 같은 존재로 보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이제 난 말도 못 할 텐데,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왕자님이 좋을 뿐이라고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혹시라도 날 버리면 어떡하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각오한 바지만, 물거품이 되는 건 너무 무서운데….

아니 아니,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하자. 내가 결정한 길이다. 불평도 책임 전가도 할 생각이 없다. 최대한 노력해서 어떻게든 좋은 결말을 이끌어 내고 말겠어. 같은 이야기라도 염세적이고 불운했던 동화작가가 썼는지, 미국의 떼돈 버는 회사에서 각색했는지에 따라 배드와 해피를 오갈 수 있는 게 동화 엔딩의 묘미 아니겠어? 엥? 내가 왜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거지? 뭐가 씌었나? 음, 어쨌든 넘어가고.

물속에서 쓰는 마지막 일기다. 그러길 바란다. 결전은 내일 아침.
왕자님, 제가 곧 가요. 제 레몬 향을 좋아해 주시길.

ps.
오늘은 전복 껍데기 안 털렸다. 내 목소리와 등가교환할 거라나?
고로 경찰에 찌르진 않겠음. 이상 끝.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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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벨트쟁이 이정일
  • 평점   별 5점

님아 그 선을 건너지 마오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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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영
  • 평점   별 5점

시트로렐라와 레몬향같은것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2011-10-08

답글 0

권다영
  • 평점   별 5점

이야기형식으러풀어써서더이해가잘되네요^^이번여름은모기물릴걱정없을꺼같아용!!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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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평점   별 5점

실험그림이 안보여요

20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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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 평점   별 5점

우와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ㅋ

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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