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인간을 지배하는 영장류, 현실 영장류의 사회성은 어느 정도일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057호   2024년 05월 06일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1970년대를 전후로 영화화된 ‘혹성탈출’ 시리즈를 기억할 것이다. 핵으로 멸망한 지구에서 진화한 유인원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스토리는 40년 뒤 약간의 설정을 달리하여 리부트되었다.
 
오는 8일 개봉하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7년 만에 찾아온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 신작이다. 리부트 시리즈의 첫 주인공인 유인원 리더 ‘시저’는 인간에게는 치명적이나 유인원이 맞으면 높은 지능이 생기는 약을 탈취해 실험실에 갇힌 동족을 해방한다. 진화한 유인원은 인간처럼 말하고 총기, 장창과 같은 인간의 도구를 쓴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대항하는 군단을 만들 정도로 사회적 결속력이 있다. 혹성탈출 개봉을 맞아 유인원을 비롯한 영장류의 사회성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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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새로운 시대의 영장류는 새를 길들여 정보를 수집하고 문명을 일구며, 그 힘으로 인간을 몰아낸다. 인간은 언어 능력이 퇴화해 짐승과 다름없이 살지만 ‘노아’는 소녀 ‘노바’에게서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한다. ⓒ월트 디즈니 코리아

 
인류의 진화와 함께한 모방 능력
리부트 시리즈의 전편이 유인원 군단의 결집과 바이러스로 인한 인간 세력의 쇠퇴를 다루었다면, 신작은 시저의 죽음 후 몇 세대가 지나 ‘진화한 유인원 대 퇴화한 인간’의 구도가 명확해진 새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는 흩어진 무리를 통일해 최초의 유인원 제국을 세운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다. 프록시무스는 과거 인간의 역사와 기술을 활용해 유인원 종의 진화를 이끌고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 그 반대편에는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어린 유인원 ‘노아’와 인간 소녀 ‘노바’가 있다.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직면했을 때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해 대처한다. 인류는 어떤 개인이 좋은 역할 모델인지, 언제 그 행동을 모방하면 유용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습 편향을 진화시켜 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문화적 학습자라 불린다. 그런데 군단을 이룬 데 이어 제국을 일군 상상 속 유인원이 아닌 실제 동물도 모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
 
 
동료를 따라하고 평가하는 영장류
최근 타계한 저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그의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다음의 일화를 전했다. 1971년 네덜란드 아른험의 영장류 센터를 개관했을 때 첫 연설자로 나선 데즈먼스 모리스는 앞으로 이런 재난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예언했다. 침팬지들이 뗏목을 만들어 도랑을 건너거나, 아니면 사다리를 발명해서 차단벽을 넘어 도망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후자는 ‘로크’라는 수컷 침팬지가 실제로 개발한 방법이기도 했다. 로크가 긴 장대를 사다리로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자 같은 집단 동료 침팬지는 그 방법을 금세 흉내냈다. 심지어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서로 돕기도 했다. 드 발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은 열쇠 사용법도 알고 있어 가끔 사육사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기도 한다. 탈주 사건이 흥미로울 때는 시간이 지나서 그 일을 회상할 때뿐이다.”
 
결국 영장류의 사회적 모방 능력은 구작 <혹성탈출>이 개봉한 시기에 이미 확인된 바다. 반세기가 지난 최신 연구는 이들의 사회적 협력 능력을 더 구체적으로 살핀다. 가령 작년 3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앤서니 포모 연구팀은 반야생 환경에서 기니개코원숭이 18마리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연구팀은 터치스크린 시스템을 만들어 원숭이 두 마리가 짝을 이뤄 협력 과제를 하도록 했다. 이 과제에서는 둘 중 한 마리가 ‘친사회적’ 자극을 선택하면 두 마리 모두에게 먹이가, ‘이기적’ 자극을 선택하면 해당 원숭이에게만 먹이가 돌아가며 ‘통제’ 자극을 택하면 모두에게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머지 한 마리는 투명 칸막이 옆에서 파트너의 선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95일간 153쌍이 상호작용한 24만 8,616개 영상을 분석한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원숭이 사이에 협력이 일어나고 강화되는 것은 물론 파트너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협력이 깨지기도 했다. 이는 원숭이가 과제 수행에서 파트너와의 사회적 협력을 고려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영장류 사회의 풍부함
더 오랜 기간 진행된 연구도 있다. 스위스 로잔대를 중심으로 한 세 영장류학자는 ‘인카우 버벳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간 아프리카 버빗원숭이 247마리의 상호작용을 관찰해 국제 학술지 'i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체 버빗원숭이를 이웃한 세 개 그룹으로 나누고 개체의 집단 내 상호작용을 관찰했다. 셋 중 가장 사교적인 ‘앙카세’ 그룹은 계급 차이가 큰 암컷이 더 정기적으로 털을 고르거나 다른 두 그룹보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차이는 집단의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 잡아 학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승되었다. 또 각각의 원숭이는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면 새로운 집단의 분위기에 따라 행동을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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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프리카 버빗원숭이 관찰 연구에서 원숭이 집단은 사회성이 높은 앙카세(AK), 사회성이 낮은 바이 단키(BD), 노하(NH)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iScience
 
영장류뿐일까? 3월 《네이처》에 실린 영국 셰필드대학 앨리스 브리지스 연구팀의 연구는 무척추동물인 꿀벌도 다른 개체의 행동을 참고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사회적 학습과 문화적 전파를 이루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니다. 더욱이 축적된 영장류 연구는 도구를 제작하고 정치적 권모술수를 꾀하는 침팬지가 이른바 ‘정치를 한다’는 점을 보인다. 가정의 달인 5월, 영화관 외출 계획이 있다면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장류의 사회성과 정치를 담은 영화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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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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