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은행알은 왜 고약한 냄새가 날까?

<KISTI의 과학향기> 제1463호   2011년 10월 21일
해마다 가을을 알리는 냄새가 있다. 도심의 가로수 길을 걷다보면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바쁜 출근길 직장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지그재그로 걷고 있다. 바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알 때문이다. 자칫 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무(Ginkgo biloba)의 종자를 밟으면 과육질이 구두에 묻어 회사 사무실에서 불쾌한 냄새를 풍길 수 있다. 은행알에서는 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일까?

개나리나 목련, 진달래와 같은 나무는 수꽃과 암꽃이 한 그루에서 피기 때문에 모든 나무마다 열매가 열린다. 반면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자라서 암나무에서만 종자가 난다. 우리가 흔히 은행나무 열매라고 알고 있는 은행알은 실은 열매가 아니라 은행나무 종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학문적으로 은행나무는 침엽수(나자식물)에 속하고 자방(종자가 들어있는 방)이 노출돼 있어 열매가 생기지 않고 종자만 생긴다.

은행알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암나무에 열리는 종자의 겉껍질에서 난다. 겉껍질을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수컷 은행나무만 골라 가로수로 심으면 도심에서 고약한 냄새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그림 1]은행알은 암나무에서만 열리며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종자의 겉껍질에서 난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그러나 은행나무는 어른으로 자라나 종자를 맺기 전까지 암수를 구별할 방법이 없다. 어린 은행나무는 심은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야 종자를 맺을 수 있는데, 다 자란 다음에 암수를 구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손자대에 가서야 종자를 얻을 수 있다고 해 ‘공손수(公孫樹)’란 별칭이 있다. 수명이 긴데다 종자의 결실도 매우 늦다는 데서 얻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2011년 6월 국립산림과학원이 은행나무 잎을 이용해 암수를 식별하는 ‘DNA 성감별법’을 개발했다. 은행나무 수나무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DNA 부위를 검색할 수 있는 ‘SCAR-GBM 표지’를 찾아낸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1년생 이하의 어린 은행나무도 암, 수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

은행나무는 지구에서 살아온 온 역사가 길다. 식물학자들은 은행나무가 약 3억 5,000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초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살았던 은행나무 가운데 일부는 땅속에 묻혔다가 오늘날 석탄 혹은 석유 형태로 쓰이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생대 쥐라기 때 가장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룡들과 함께 지구상에 군림했던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공룡들도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면 키가 큰 은행나무의 그늘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은행나무가 아니라 ‘바이에라 은행나무(Ginkgo baiera)’가 번성했다. 바이에라 은행나무는 현재의 은행나무와 비교하면 잎이 더 많이 갈라진 모양을 하고 있고 키도 훨씬 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이에라 은행나무는 멸종돼 지금은 화석으로만 볼 수 있다. 중생대 말 백악기가 도래하면서 현재의 은행나무가 번성하기 시작해 1억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은행나무도 인간의 꼬리뼈처럼 진화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과연 그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태초에 생명체는 물속에 살고 있었는데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식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육상 환경에 맞도록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켰다. 은행나무도 여기에 동참했다. 물속식물은 수컷의 정자와 암컷의 난자를 물속에 뿌려 수분을 맺도록 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식물의 꽃가루에 해당하는 것이 정자다. 물속에서는 꽃가루를 운반해줄 바람이 불지 않는다. 물고기가 벌과 나비를 대신해 꽃가루를 옮겨다 주지도 않는다. 때문에 정자는 여러 개의 꼬리를 달고 물속을 헤엄쳐 난자를 찾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육상에서 자손을 남길 수 없었다. 결국 암컷의 난자는 세포 안에서 수컷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난자는 다른 세포로 둘러싸인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정자가 찾아오길 기다린 것이다.

오늘날 육상식물은 바람과 벌, 나비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운동성을 지닌 꼬리가 필요 없다.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그런데 은행나무만은 여전히 정자에 꼬리를 달고 있다. 꼬리가 없다면 꽃가루라 불러야 마땅하지만 스스로 움직이면서 운동할 수 있어 ‘정충’이라 부른다. 1895년 일본인 히라세 교수가 정충을 처음 발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정충이 스스로 움직여 이동할 수 있다는 표현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혹은 한 가지에서 이웃가지로 나무껍질을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오해다. 암꽃의 안쪽에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우물이 있고, 이 우물의 표면에 떨어진 정충이 짧은 거리를 헤엄쳐 난자 쪽으로 이동하는데 꼬리를 쓰는 것이다. 은행나무 종자는 원시시절 물속식물이 지녔던 흔적인 것이다.

이제껏 식물학자들은 지구 어딘가에 야생 상태로 자라는 은행나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중국 쓰촨성과 윈난성 같은 오지를 답사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중국 양쯔강 하류 절강성과 안휘성의 경계를 이루는 톈무산맥의 해발 약 2,000m 지점에서 야생지를 발견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도 과거 중국에서 들어온 외국수종이란 얘기다.

신기한 것은 깊은 산속에서는 은행나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 있는 은행나무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듯 깊은 산 속에 자라더라도 인간이 옮겨다 심은 것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은행나무 종자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산 위로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하지만 참나무류 열매인 도토리는 크고 무거워도 다람쥐가 겨울철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옮겨다 땅에 묻는다. 이 가운데 일부는 매년 봄 싹이 돋아나 나무로 자라난다. 그렇다면 은행나무를 옮겨다 심어주는 동물은 없을까?

아쉽게도 종자를 덮고 있는 과육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만지면 피부가 가렵기 때문에 다른 동물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은행알을 먹으며, 다른 곳에 종자를 퍼트려 준다. 인간이 사는 곳 부근에서만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은행알의 고약한 냄새는 은행나무가 인간에게만 보내는 비밀 신호는 아닐까?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평가하기
쫀득
  • 평점   별 5점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을때 암수암수 이런식으로 번갈아 가면서 심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가봐요?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작년에서야 발견됐다하면...

아 30년 넘은 어른나무만 가로수가 되는건가요?

2012-01-06

답글 0

서금영
  • 평점   별 5점

우리나라 야산에서 참나무류는 자연적으로 번식된 것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심거나 가꿨기 때문에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참나무류는 우리나라 자연에 적합한 품종인 것이지요. 반면 은행나무는 인위적으로 심지 않은 곳에서 자라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생지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은행 종자의 냄새나 피부가 벗겨지는 독성 등에 적합한 어떤 야생동물이 있었고, 그 야생동물이 은행종자를 퍼트려주는 구실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야생동물이 멸종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더불어 다른 동물이 먹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손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견해는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자손의 번창을 위해서는 자신이 자라고 있는 곳에서 더 멀리 종자를 퍼트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멸종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부근에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심어서 자라고 있는 어린 은행나무를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용문산 부근은 산 전체가 은행나무로 덮인 곳도 있답니다^^; 가을에는 산 전체가 온통 노랗습니다.

2011-11-13

답글 0

start
  • 평점   별 5점

살아있는 화석 은행... 대부분은 생물들은 자손을 퍼트리기위한 생식의 방법들도 진화를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각 생물들의 특성에 맞는 여러가지의 수정(수분)방법들과 산포방법들이 발달하였으리라 추정됩니다만 은행의 경우 우선 암수 그루가 따로 존재하고 수정을 위해 물을 필요로 하므로 널리 퍼지는 것은 오히려 불리하므로 가까운 곳에 자손들이 생겨나는것이 유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산포방법은 여러가지 중에서 맛있는 열매로 동물들을 통해 여러 곳으로 퍼트리는것보다 열매가 냄새가 남으로 인해서 동물들의 먹이로 부적합하여 종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으로, 새로운 개체를 주위에 형성하는 것이 종족유지에 유리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2011-11-08

답글 0

start
  • 평점   별 5점

근데 주위에 무리를 형성하기는 은행나무들이 크죠^^ 전 아직 어린 은행 나무들은 못봤어 산위에 은행은 상상이 잘 안되네요 그리고 참나무 처럼 양성화였다면 오히려 번식이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은행은 자연 번식이라기 보단 인간에 의한 번식으로 오늘날 까지 유지되어 왔으니 주위에서 볼 수 있으리라 추정되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는....

2011-11-08

답글 0

나나샤
  • 평점   별 5점

재밌고 궁금증이 풀렸네요 감사해요~^-^

2011-11-03

답글 0

한솔이내꾸
  • 평점   별 5점

진짜유용한정보인듯...ㄳㄳ

2011-11-03

답글 0

제천
  • 평점   별 5점

늘궁금해서 네X버에 검색해보려던 참이었는데, 쿠쿡 재미난 기사 쉽고 알차게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11-11-01

답글 0

이태욱
  • 평점   별 5점

인간에게만 보내는 비밀신호가 무엇일까요?

2011-10-25

답글 0

주상일
  • 평점   별 5점

은행나무가 원시목이라는건 예전에 어떤 책을 통해 알긴했지만. 지금까지 굳건히 유지해 왔던만큼 자신의 역사가 대단하군요, 그리고 과학향기를 통해 은행이 특이하게도 정충을 지니고 있음을 첨알았습니다.

2011-10-24

답글 0

궁금이
  • 평점   별 5점

가까이 할수 있는 은행나무가 이리 많은 역사와 정충까지 지니고 있다니 재미있네요...1억년이 넘은 세월을~
그런데 은행알이나 은행잎이 혈류순환에 좋다는거는 사실인가요?
아님 제약회사들의 과대포장 광고일뿐이가요? 궁급하네요^^

2011-10-24

답글 0

호균아부지
  • 평점   별 5점

저도 은행의 열매나 잎의 효능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 제약사들이 말하는 혈류개선재의 원재료로 쓰이는 은행잎은 단풍이 들어버린 노랑색은 약효가 극히 적어 푸른잎일때 채취해 쓰인다고 들었습니다.

2011-10-24

답글 0

이우진
  • 평점   별 5점

은행나무에대해 정말 많은걸 알 수 있었습니다.ㅋ 식물도 동물과 다를게 없군요.~~ 인간이 옮겨심지 않았더라면 은행나무도 멸종에 이르렀을듯 하네요.

2011-10-24

답글 0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링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