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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커서 슬픈 닐스 보어
<KISTI의 과학향기> 제644호 2007년 08월 22일
“20세기 물리학에 기여한 보어의 업적은 마땅히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꼽아야 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리처드 로즈는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의 업적에 대해 이같이 썼다. 현대물리에 아인슈타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확고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꼽힌 보어는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
보어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크레스드얀 보어는 유명한 코펜하겐대 생리학교수였고, 어머니 엘런 아들러 보어는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이었다. 보어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그는 대학생 때 표면장력을 결정하는 방법인 ‘물 분사의 진동’에 대해 실험하고 이론적으로 분석해 덴마크 ‘왕립 과학문학 아카데미’의 금메달을 받으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전자를 발견한 톰슨을 동경했던 보어는 대학 졸업 후 그와 함께 연구하기 위해 영국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로 갔다. 그러나 톰슨은 보어의 연구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크게 실망한 보어는 할 수없이 맨체스터로 옮겨 러더퍼드와 함께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톰슨과 헤어지고 러더퍼드와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을 바탕으로 보어는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고 이 업적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했으니 말이다.
보어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해서 당시 빛의 복사에 관한 이론이었던 양자론을 원자론에 도입한 것이다. 당시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실험을 통해 나온 여러 현상들을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보어는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같은 이론물리학자들이 발전시키고 있던 양자론을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 결합시켜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양자(量子)란 어떤 물리량이 연속값을 갖지 않고 단위량의 정수배로 나타날 때 그 단위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어는 “모든 원자는 안정 상태 또는 불안정 상태로 존재할 수 있고, 각 상태의 에너지는 양자로 나타난다”고 가정했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이렇다. 첫째 원자핵 주위에는 전자가 돌고 있다. 둘째 전자들이 도는 궤도는 각각 다른 에너지를 갖는다. 셋째 전자가 다른 궤도로 이동하면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데 이 값은 양자로 나타난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당시 받아들이기 힘든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분광학 실험들을 통해 사실임이 증명됐다. 이 모형은 양자론을 활짝 꽃 피우는 기폭제가 됐다. 즉 고전역학이 현대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어의 원자 모형이 그 중간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엄청난 업적”이라는 말로 보어의 원자 모형이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물론 보어의 원자 모형에도 한계는 있었다. 전자의 개수가 1개인 수소 원자의 에너지는 보어의 원자 모형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었지만, 전자의 개수가 2개 이상일 때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보어의 원자 모형을 여러 차례 수정해 오늘날 전자구름 모형으로 발전시켰다.
보어는 원자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어는 미국이 주도하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프로젝트’ 소식을 미리 알았다. 그는 막강한 독일군을 이기기 위해 원자폭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무기가 앞으로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했다. 보어는 차라리 핵개발의 내용을 소련(현 러시아)에도 알려주고 공동으로 기술을 관리해서 원자폭탄의 무차별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보어의 이 생각은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의 오해로 무산되고, 전쟁 후 세계는 핵개발 경쟁에 휩싸이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중 보어는 머리가 너무 커서 생사의 고비에 처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시 독일 비밀 경찰에 쫓기던 보어는 영국 폭격기를 타고 도주하던 중이었다. 폭격기 조종사는 보어에게 낙하산을 주고 혹시 적기가 공격해 오는 불의의 사태가 벌어지면 그를 폭탄 투하구를 통해 투하하라고 지시받았다.
폭탄 투하구에 앉아있던 보어에게 조종사와 교신하도록 송수신기가 주어졌지만 보어의 머리에 헤드폰은 너무 작았다. 비행기 조종사는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서 산소 마스크를 작용하라고 송수신기를 통해 말했지만 헤드폰을 끼지 못한 보어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조종사는 폭탄 투하구에 누워 산소 부족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된 보어를 발견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62년, 닐스 보어는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차 대전 동안 비서처럼 데리고 다녔던 아들 아게 보어(Aage Niels Bohr, 1922~)는 아버지가 이끌던 연구소를 계승했고, 원자핵의 구조 연구에 공헌해 1975년 아버지에 이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닐스 보어는 고전역학이 현대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튼튼한 다리 역할을 감당했다. 양자역학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여러 과학자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탄생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생각을 폭넓게 아우르며 연결한 닐스 보어 덕분에 20세기 핵물리학이 활짝 열렸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리처드 로즈는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의 업적에 대해 이같이 썼다. 현대물리에 아인슈타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확고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꼽힌 보어는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
보어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크레스드얀 보어는 유명한 코펜하겐대 생리학교수였고, 어머니 엘런 아들러 보어는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이었다. 보어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그는 대학생 때 표면장력을 결정하는 방법인 ‘물 분사의 진동’에 대해 실험하고 이론적으로 분석해 덴마크 ‘왕립 과학문학 아카데미’의 금메달을 받으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전자를 발견한 톰슨을 동경했던 보어는 대학 졸업 후 그와 함께 연구하기 위해 영국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로 갔다. 그러나 톰슨은 보어의 연구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크게 실망한 보어는 할 수없이 맨체스터로 옮겨 러더퍼드와 함께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톰슨과 헤어지고 러더퍼드와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을 바탕으로 보어는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고 이 업적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했으니 말이다.
보어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해서 당시 빛의 복사에 관한 이론이었던 양자론을 원자론에 도입한 것이다. 당시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실험을 통해 나온 여러 현상들을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보어는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같은 이론물리학자들이 발전시키고 있던 양자론을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 결합시켜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양자(量子)란 어떤 물리량이 연속값을 갖지 않고 단위량의 정수배로 나타날 때 그 단위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어는 “모든 원자는 안정 상태 또는 불안정 상태로 존재할 수 있고, 각 상태의 에너지는 양자로 나타난다”고 가정했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이렇다. 첫째 원자핵 주위에는 전자가 돌고 있다. 둘째 전자들이 도는 궤도는 각각 다른 에너지를 갖는다. 셋째 전자가 다른 궤도로 이동하면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데 이 값은 양자로 나타난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당시 받아들이기 힘든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분광학 실험들을 통해 사실임이 증명됐다. 이 모형은 양자론을 활짝 꽃 피우는 기폭제가 됐다. 즉 고전역학이 현대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어의 원자 모형이 그 중간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엄청난 업적”이라는 말로 보어의 원자 모형이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물론 보어의 원자 모형에도 한계는 있었다. 전자의 개수가 1개인 수소 원자의 에너지는 보어의 원자 모형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었지만, 전자의 개수가 2개 이상일 때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보어의 원자 모형을 여러 차례 수정해 오늘날 전자구름 모형으로 발전시켰다.
보어는 원자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어는 미국이 주도하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프로젝트’ 소식을 미리 알았다. 그는 막강한 독일군을 이기기 위해 원자폭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무기가 앞으로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했다. 보어는 차라리 핵개발의 내용을 소련(현 러시아)에도 알려주고 공동으로 기술을 관리해서 원자폭탄의 무차별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보어의 이 생각은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의 오해로 무산되고, 전쟁 후 세계는 핵개발 경쟁에 휩싸이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중 보어는 머리가 너무 커서 생사의 고비에 처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시 독일 비밀 경찰에 쫓기던 보어는 영국 폭격기를 타고 도주하던 중이었다. 폭격기 조종사는 보어에게 낙하산을 주고 혹시 적기가 공격해 오는 불의의 사태가 벌어지면 그를 폭탄 투하구를 통해 투하하라고 지시받았다.
폭탄 투하구에 앉아있던 보어에게 조종사와 교신하도록 송수신기가 주어졌지만 보어의 머리에 헤드폰은 너무 작았다. 비행기 조종사는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서 산소 마스크를 작용하라고 송수신기를 통해 말했지만 헤드폰을 끼지 못한 보어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조종사는 폭탄 투하구에 누워 산소 부족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된 보어를 발견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62년, 닐스 보어는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차 대전 동안 비서처럼 데리고 다녔던 아들 아게 보어(Aage Niels Bohr, 1922~)는 아버지가 이끌던 연구소를 계승했고, 원자핵의 구조 연구에 공헌해 1975년 아버지에 이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닐스 보어는 고전역학이 현대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튼튼한 다리 역할을 감당했다. 양자역학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여러 과학자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탄생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생각을 폭넓게 아우르며 연결한 닐스 보어 덕분에 20세기 핵물리학이 활짝 열렸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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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4-09
답글 0
v=h/t라...
이건 등속운동할때 쓰는 식입니다.
자유낙하는 등가속도 운동이기 때문에 성립이 되지 않는 것 입니다.
2007-08-27
답글 0
글쓴이입니다. 확인해 보니 말씀하신 대로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출처가 불명확한 일화였습니다.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글을 실은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지적하신 내용을 빼고 다른 내용을 넣어 수정했습니다. 제목도 적절하지 않아 바꿨습니다.
다음부터는 글의 근거를 정확히 확인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08-23
답글 0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근데요...
중력가속도 x m x h = 1/2 x m x (v제곱) 이잖아요
그리고 v는 h/t 니까
위의 식에서 v에 h/t를 대입하고 정리하면
h = 중력가속도 x 2 x (t제곱)
저는 이렇게 나오는데... ㅎㄷㄷ
뭐가 틀렸죠? ㄱ-
2007-08-23
답글 0
닐스 보어가 기압계로 저런 대답을 했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지만, 그게 사실은 urban legend 에 불과하다는 반박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저도 오래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잡지에서 봤지만, 그 잡지에서는 보어가 아닌 그냥 평범한 미국의 물리학과 학생이었다고 적혀 있었지요. 저 일화는 일종의 농담이었던 것이 세월이 가면서, 거기 실존인물인 보어의 명성이 덧칠된 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에 가보시면 보어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나와 있지요.
http://www.snopes.com/college/exam/barometer.asp
2007-08-23
답글 0
하나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는것..
비단 어떤 학문에 국한된 것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듯 합니다.
좋은 내용 잘 봤습니다.
2007-08-23
답글 0
위키피디아에서 barometer question 이라는 제목으로도 이미 나와있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거기서도 그 이야기는 여러가지 버전이 있고, 그 중 어떤 경우에 보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나와있지요. snopes.com 에서는 1958년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의 유머란이 아마도 그 출처인 것 같다고 밝히고 있고요. 그 이야기가 떠돌다가 보어의 이름이 거기 끼어들게 된 모양이고요.
http://en.wikipedia.org/wiki/Barometer_question
2007-08-23
답글 0
보어라는 사람을 아마도 지금 처음 들어본것같은데 아주 재미있는 천재인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2007-08-22
답글 0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가지 방법 ..
이런것이 창조적 사고계발의 아주 좋은 방법이지요..
놀랍군요 ^^
2007-08-22
답글 0
tanx 는 못구하죠 각도기가 없는데 ㅋ
2007-08-22
답글 0
바로 아래 김진수님, 저와 이름이 같으신데, 가압계를 이용하는 방법을 말하는 건데요
2007-08-22
답글 0
대단한 자심감이네요 물리학에 대한 자신감도 곁들어 있고 거기에 좋은 점수를 주신 교수님도 존경스럽네요 우리도 이런상황이며 같을까 하네요
2007-08-22
답글 0
아아, 정말 유쾌한 일화군요. 자유분방한 사고가 정말 매력적이군요.
2007-08-22
답글 0
재미있으면서도 시사하는바가 큰 좋은 글이었습니다.
보어 같은 사람들이 인정받는 세상은 언제나 올까요?
2007-08-22
답글 0
우리 학원 시험에서 "임의의 검물높이 h를 구하는 방법과, 공식을 써라 (3개이상)"
라는 문제 나왔는데 난 {½x중력가속도x낙하시간2}밖에 못써서 틀렸는데 ㅋ
2007-08-22
답글 0
보어 엄청나게 귀엽네요 ㅎㅎ...완전 신기한 방법들도 잘 생각해내고..
2007-08-22
답글 0
또 다른 방법으로는 일정한 거리에서 옥상까지의 각도를 잰후 tan(x)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2007-08-22
답글 0
늘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오늘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네요^^ 창조적 발상!
2007-08-22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