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메탄올을 가솔린으로~ 꿈의 제올라이트
<KISTI의 과학향기> 제1020호 2009년 12월 11일
겨울의 어느 오후. 태연은 엄마의 스카프를 목과 머리에 어설프게 두르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창밖으로 쓸쓸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태연아, 뭘 보고 있니?”
“아빠, 송곳 같은 겨울바람이 제 가슴에 숭숭 구멍을 뚫고 있어요. 문득 유치원 때 달님반에 있던 그 멋진 남자아이 생각이 나요. 코딱지를 맛있게 떼어먹으며 살짝 날려주던 그 살인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아빠,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다. 네가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니까 불현듯 제올라이트가 떠오르는구나. 사랑이란 제올라이트가 아닐까?”
“에엥?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거나, 사랑은 행복이라거나 뭐 그런 말을 해주셔야지 제올라이트가 다 뭐에요. 정말 낭만제로야!!”
“아니, 그건 네가 제올라이트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제올라이트는 수nm(나노미터, 1nm=10-9m) 지름의 극도로 작은 구멍이 스펀지처럼 송송 뚫려있는 돌이란다. 18세기에 처음 이 돌을 발견한 크롱스테드라는 과학자는 돌을 가열할 때 구멍 속에 들어있던 물이 끓어 수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는 ‘끓는(zeo) 돌(lite)’ 즉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이름을 붙여줬지.”
“음, 구멍이 숭숭 뚫린 건 제 마음과 비슷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랑을 제올라이트라고 말하는 건 좀 오버 아니세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렴. 제올라이트는 무한변신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단다. 구멍 안에 온갖 물질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가 서서히 배출시키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물질을 넣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든. 예를 들어 미세한 제올라이트에 은나노 입자를 넣은 다음 그걸 섬유에 붙이면 항균효과가 뛰어난 옷을 만들 수 있고, 양분을 넣으면 토양강화제로 쓸 수 있고, 반도체를 넣으면 광통신에 쓸 수 있는 식으로 말이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니까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거지.”
“헉, 아빠한테 그렇게 철학적인 면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게다가 제올라이트는 촉매로 가장 많이 활용된단다. 촉매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그 반응이 수십 수백 배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을 말해. 예를 들어 탄소 덩어리인 원유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반응하는 힘이 세져서 휘발유를 아주 손쉽게 분리해낼 수가 있지. 또 제올라이트의 구멍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크기를 조절해서 촉매효과를 강화하기도 한단다. 사랑에 빠지면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잖니? 사랑이 공부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처럼 제올라이트도 아주 많은 화학반응에서 촉매로 활용된단다.”
“와~ 정말 우리 아빠 맞아? 넘 멋져 보여요!!”
“그게 다가 아냐, 쓸모없는 물건을 깨끗이 없애주기도 해.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해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만, 쓰임이 끝나고 나면 썩지도 않는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되는 거 너도 알지? 태우자니 환경오염이 너무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폐플라스틱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간단히 물과 이산화탄소로 플라스틱이 분리돼 버려. 당연히 환경 걱정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어지지. 사랑 역시 여러 쓸데없는 잡생각을 싹 없애주는 능력이 있으니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말이 딱 맞지 않니?”
“아빠, 오늘부로 아빠를 존경하기로 했어요. 과학적 상식과 철학적 사고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벽한 이론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계셔요!!”
“너 역시, 오늘은 정말 놀랍도록 똑똑하게 말을 하는구나. 자랑스럽다 내 딸!”
그러나 아빠와 대화를 할수록 태연의 눈엔 의심이 가득해진다. 심지어는 사냥감을 만난 늑대처럼 코까지 벌렁거린다.
“그런데 아빠가 무척이나 의심쩍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빠 가슴이 지금 제올라이트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들이 어떤 사랑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얼마 전에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렇다면 아빠의 제올라이트 가슴엔 지금 엄마대신 첫사랑이 있다는 것이로군요!!”
“허걱! 빨리 병원에 가보자. 어쩐지 너답지 않게 지나치게 말을 잘한다 했어. 그렇게 허무맹랑한 억지를 쓰는 걸로 봐서 너의 뇌는 지금 제올라이트 상태가 틀림없어. 구멍이 뚫린 거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태연아, 뭘 보고 있니?”
“아빠, 송곳 같은 겨울바람이 제 가슴에 숭숭 구멍을 뚫고 있어요. 문득 유치원 때 달님반에 있던 그 멋진 남자아이 생각이 나요. 코딱지를 맛있게 떼어먹으며 살짝 날려주던 그 살인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아빠,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다. 네가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니까 불현듯 제올라이트가 떠오르는구나. 사랑이란 제올라이트가 아닐까?”
“에엥?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거나, 사랑은 행복이라거나 뭐 그런 말을 해주셔야지 제올라이트가 다 뭐에요. 정말 낭만제로야!!”
“아니, 그건 네가 제올라이트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제올라이트는 수nm(나노미터, 1nm=10-9m) 지름의 극도로 작은 구멍이 스펀지처럼 송송 뚫려있는 돌이란다. 18세기에 처음 이 돌을 발견한 크롱스테드라는 과학자는 돌을 가열할 때 구멍 속에 들어있던 물이 끓어 수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는 ‘끓는(zeo) 돌(lite)’ 즉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이름을 붙여줬지.”
“음, 구멍이 숭숭 뚫린 건 제 마음과 비슷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랑을 제올라이트라고 말하는 건 좀 오버 아니세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렴. 제올라이트는 무한변신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단다. 구멍 안에 온갖 물질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가 서서히 배출시키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물질을 넣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든. 예를 들어 미세한 제올라이트에 은나노 입자를 넣은 다음 그걸 섬유에 붙이면 항균효과가 뛰어난 옷을 만들 수 있고, 양분을 넣으면 토양강화제로 쓸 수 있고, 반도체를 넣으면 광통신에 쓸 수 있는 식으로 말이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니까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거지.”
“헉, 아빠한테 그렇게 철학적인 면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게다가 제올라이트는 촉매로 가장 많이 활용된단다. 촉매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그 반응이 수십 수백 배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을 말해. 예를 들어 탄소 덩어리인 원유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반응하는 힘이 세져서 휘발유를 아주 손쉽게 분리해낼 수가 있지. 또 제올라이트의 구멍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크기를 조절해서 촉매효과를 강화하기도 한단다. 사랑에 빠지면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잖니? 사랑이 공부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처럼 제올라이트도 아주 많은 화학반응에서 촉매로 활용된단다.”
“와~ 정말 우리 아빠 맞아? 넘 멋져 보여요!!”
“그게 다가 아냐, 쓸모없는 물건을 깨끗이 없애주기도 해.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해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만, 쓰임이 끝나고 나면 썩지도 않는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되는 거 너도 알지? 태우자니 환경오염이 너무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폐플라스틱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간단히 물과 이산화탄소로 플라스틱이 분리돼 버려. 당연히 환경 걱정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어지지. 사랑 역시 여러 쓸데없는 잡생각을 싹 없애주는 능력이 있으니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말이 딱 맞지 않니?”
“아빠, 오늘부로 아빠를 존경하기로 했어요. 과학적 상식과 철학적 사고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벽한 이론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계셔요!!”
“너 역시, 오늘은 정말 놀랍도록 똑똑하게 말을 하는구나. 자랑스럽다 내 딸!”
그러나 아빠와 대화를 할수록 태연의 눈엔 의심이 가득해진다. 심지어는 사냥감을 만난 늑대처럼 코까지 벌렁거린다.
“그런데 아빠가 무척이나 의심쩍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빠 가슴이 지금 제올라이트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들이 어떤 사랑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얼마 전에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렇다면 아빠의 제올라이트 가슴엔 지금 엄마대신 첫사랑이 있다는 것이로군요!!”
“허걱! 빨리 병원에 가보자. 어쩐지 너답지 않게 지나치게 말을 잘한다 했어. 그렇게 허무맹랑한 억지를 쓰는 걸로 봐서 너의 뇌는 지금 제올라이트 상태가 틀림없어. 구멍이 뚫린 거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어디서든 인터넷을 쓸 수 있다…스타링크, 한국 통신 시장 뒤엎나
- 전 지구를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드디어 국내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스타링크 서비스의 국경 간 공급 협정 승인을 위한 ‘주파수 이용 조건’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링크의 모회사인 스페이스X와 순조롭게 협의가 이뤄지면 다가오는 3월에 국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과연 스타링크는 국...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과학향기 Story] 이어폰 없이 혼자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또는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혼자만의 음악에 빠진 모습은 군중 속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80년대 이후 음악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개인용 기기는 카세트테이프를 플레이하는 워크맨에서 휴대형 CD 플레이어, 아이팟 같은 MP3 플레이어를 거쳐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내 솜씨 어때” 125년 만에 밝혀진 소변 색의 비밀은?
- [과학향기 for Kids]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커튼 ‘오로라’
- [과학향기 Story] 원두 갈기 전, 물 “칙칙” 찐~한 커피 만드는 과학적 비법
- ‘누나’가 만들어낸 희소성 만점 핑크 다이아몬드, 비결은 초대륙 충돌
- 2022-2023, ‘양자 개념’이 노벨상 연속으로 차지했다? 양자 연구 톺아보기
- 고양이가 참치에 현혹된 이유, 유전자 때문이다?
-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나? LK-99 초전도체 가능성 ‘0으로 수렴 중’
- [한여름 밤의 술] 샴페인 제대로 즐기려면? 답은 거품 속에 있다!
- [한여름 밤의 술] 시원한 여름 맥주, 과학 알면 더 맛있다!
- [과학향기 호러 특집] 우리가 귀신 보는 이유? 귀신을 ‘만들 수도’ 있다?
“아빠, 송곳 같은 겨울바람이 제 가슴에 숭숭 구멍을 뚫고 있어요. 문득 유치원 때 달님반에 있던 그 멋진 남자아이 생각이 나요. 코딱지를 맛있게 떼어먹으며 살짝 날려주던 그 살인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아빠,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그런데 아빠가 무척이나 의심쩍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빠 가슴이 지금 제올라이트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들이 어떤 사랑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얼마 전에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렇다면 아빠의 제올라이트 가슴엔 지금 엄마대신 첫사랑이 있다는 것이로군요!!”
글처음엔 태연이 가슴이 숭숭 나중엔 아빠가 숭숭 - 뭔가 이상해요.
2011-09-04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