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이어폰 없이 혼자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52호 2025년 05월 05일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또는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혼자만의 음악에 빠진 모습은 군중 속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80년대 이후 음악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개인용 기기는 카세트테이프를 플레이하는 워크맨에서 휴대형 CD 플레이어, 아이팟 같은 MP3 플레이어를 거쳐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반면, 우리의 귀에 닿는 기기는 겉보기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모양은 귀 안에 들어가는 이어폰 형태와 귀를 덮는 헤드셋 두 가지 정도이고, 유선에서 무선 위주로 변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그 이면에선 외부 소음은 차단하고 듣고자 하는 음악이나 통화 음성은 더욱 또렷이 들리게 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다 개인적이면서 풍성한 소리 경험이 가능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어폰 줄은 꼬이고 엉켜 관리하기 힘들다. 무선 이어폰은 분실 위험이 크고 계속 충전을 해야 한다. 헤드셋은 귀를 덮어 불편하다. 이어폰이건 헤드셋이건 오래 쓰면 청력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불편을 덜어줄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 눈길을 끈다. 만약 귀 안이나 표면에 기기를 두지 않으면서도, 주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본인만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 소리가 내 주위를 맴도는 ‘가상 헤드셋’을 만드는 셈이다.
초음파로 나만의 음향 공간을 만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공과대학 연구진이 소리가 들리는 작은 영역을 정밀하게 구현해 그 안에 있는 사람만 소리를 듣게 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이어폰을 끼면 옆 사람에겐 소리가 안 들리고 자신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어폰 없이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자동차 안처럼 밀폐된 공간에 있거나, 소리가 나오는 음원 앞에 서 있더라도 마찬가지로 구현할 수 있다. 이어폰이나 헤드셋 없이도 어디서나 완전히 개인화된 음향 경험을 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에 '가청 구역(Audible Enclave)'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연구는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가청 구역이란 휘어지는 비선형 초음파 빔을 두 개 쏘아, 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만 소리가 들리는 구역을 생성하는 것이다. 교차점 주변에 있는 사람에겐 소리가 안 들리고, 교차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소리가 들리는 프라이버시 장막이 생긴다.
연구진은 밀리미터 이하의 미세 구조를 가져 소리의 방향을 휘게 하는 렌즈 역할을 하는 메타 표면(metasurfaces)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두 개의 변환기 앞에 두었다. 이에 따라 두 초음파 빔은 미세하게 다른 주파수로 초승달 모양 영역을 따라 이동하다 한 곳에서 만난다. 두 초음파 빔 자체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각 초음파 빔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20Hz-20kHz 대역 밖에 있으나, 두 빔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청 주파수의 소리가 생성된다. 음파의 강도를 높이면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며 특정 영역에서만 들리는 가청 주파수대의 새로운 음파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이용했다. 만약 두 초음파 빔의 주파수가 각각 40kHz와 39.5kHz라면, 두 주파수의 차이에 해당하는 500Hz 주파수의 새 음파가 형성된다. 500Hz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대역이다.
또 초음파 빔은 사람 머리와 같은 장애물을 우회하여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논문 제1 저자인 지아신 중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후연구원은 “우리가 만든 것은 본질적으로 가상 헤드셋”이라며 “소리 영역과 침묵 영역을 만들어, 가청 구역 안에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귀 안 부분에 마이크를 단 머리와 몸통 모형으로 시험한 결과, 소리가 지정된 영역 안에서만 들림을 연구진은 확인했다. 테스트는 일상적 수준의 잔향이 일어나는 보통의 실내 환경에서 이뤄졌다. 교실이나 자동차 안, 또는 실외 공간 등 다양한 환경에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
차량 내부부터 공연장까지 OK!
연구진은 60데시벨(dB) 정도의 소리를 목표 지점에서 1m 정도 떨어진 곳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60데시벨은 보통 대화하는 말소리 정도의 크기다. 음향 품질이나 출력 등은 해결 과제이다. 소리 크기와 도달 거리는 초음파 강도를 높여 늘일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
앞으로 이 기술은 개인화된 음향 공간 구현에 폭넓게 쓰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자동차 안에서 내비게이션 안내를 듣는 운전자와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동승자가 각기 필요한 소리를 듣도록 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별도 음향 안내 장치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전시물 위치에 따라 맞춤형 설명을 해 줄 수 있다. 군사 작전 중 기밀 통신에 활용할 수도 있다. 공연장에서 VIP석에 앉은 사람에게만 특별한 음원을 전송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반대로 외부 소리를 차단해 업무나 학업에 집중하도록 돕는 데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 : 한세희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어디서든 인터넷을 쓸 수 있다…스타링크, 한국 통신 시장 뒤엎나
- 전 지구를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드디어 국내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스타링크 서비스의 국경 간 공급 협정 승인을 위한 ‘주파수 이용 조건’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링크의 모회사인 스페이스X와 순조롭게 협의가 이뤄지면 다가오는 3월에 국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과연 스타링크는 국...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사람 근육으로 움직이는 로봇 손 등장!
- [과학향기 Story] 보조배터리, 이젠 안녕! 호주머니에 넣고 충전하는 시대가 온다?
- [과학향기 Story] 계단 오르고 장애물 넘는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모핑 휠 등장
- [과학향기 Story] ‘화마’ 불러오는 전기차 화재…피해 심각한 이유는?
- [과학향기 Story] 스치는 빗방울까지 전기로 쓴다?
- [과학향기 Story] 스포츠에 불어든 AI 바람
- [과학향기 for Kids] 엄청난 속도와 성능으로 세상을 바꾸는 슈퍼컴퓨터!
- [과학향기 Story] 소중한 데이터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비결은?
- [과학향기 Story]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향한 슈퍼컴퓨터의 진화
- 북한이 쏘아올린 작은 ‘만리경-1호’ 궤도 진입 성공, 성능과 목적은?
ScienceON 관련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