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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로 렌즈 만드는 ‘일렉트로웨팅’
<KISTI의 과학향기> 제616호 2007년 06월 18일
휴대전화가 발달하면서 카메라가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왔다. 요즘에는 카메라가 부착되지 않은 휴대전화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작은 크기 안에 카메라 기능을 넣다보니 여러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 카메라의 가장 큰 불편은 줌인, 줌아웃 기능이 없고 거리에 따라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여러 개 렌즈 사이의 거리를 조절해서 이런 기능을 제공하지만 작은 휴대전화 카메라에 렌즈를 여러 개 넣기는 무리다. 해결책은 우리 눈에 있다. 우리 눈의 수정체는 하나뿐이지만 두께를 조절해 멀고 가까운 물체 모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즉 딱딱한 유리나 플라스틱 대신 액체로 렌즈를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일렉트로웨팅’(Electrowetting) 현상이다. 과연 일렉트로웨팅이란 무엇일까?
일렉트로웨팅 현상이란 쉽게 말해 ‘전기로 표면장력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현상은 1870년 가브리엘 리프만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유리관에 물을 담으면 유리관 벽은 중심부보다 물의 높이가 더 높은데 이는 물과 유리관 벽 사이의 표면장력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관 대신 금속관을 쓰고 전기를 걸면 벽을 따라 올라오는 물의 높이가 더 높아진다. 전기로 표면장력이 더욱 세졌기 때문이다.
리프만은 이를 ‘전기모세관’ 현상이라고 불렀지만 그 뒤로 1백년간 이 기술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전기모세관 현상은 1V 이하의 낮은 전압에서만 일어났고, 이보다 높은 전압을 걸면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해돼 버렸다. 제한된 전압 때문에 이 현상을 응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1990년 높은 전압으로도 표면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발견됐다. 프랑스 브루노 버지 박사는 금속판을 얇은 절연체로 씌운 뒤 그 위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다음에 금속판과 물방울에 전기를 걸자 전압이 높아질수록 물방울이 얇게 퍼졌다. 이 방법을 쓰자 수십 V의 높은 전압에서도 물방울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족쇄가 걸린 1백년 전 기술을 열어젖힐 열쇠를 찾은 것이다.
물에 전기를 통하면 표면장력이 변하는 이유는 물 분자 자체가 극성(+,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 분자는 산소원자 하나와 수소원자 두 개로 구성돼 있는데, 수소원자가 104.5도의 각도를 이루며 붙어있기 때문에 (+)인 쪽과 (-)인 쪽이 생긴다. 이 극성 때문에 전기가 흐르는 금속에는 더 끌리는 힘이 생겨 표면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과 금속이 직접 만나면 전자를 주고받기 때문에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돼 버리지만 그 사이에 얇은 절연체가 있으면 전기장의 영향은 받지만 전자를 주고받을 수 없어 분해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높은 전압에서 표면장력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에서 액체보다는 얇은 절연체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알려져 있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럼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어디에 응용할 수 있을까? 상용화가 가장 빠른 분야는 처음 언급했던 액체렌즈다. 엑체렌즈에서는 물과 기름으로 렌즈를 만든다. 물과 기름의 경계면을 일렉트로웨팅 현상으로 변화를 주면 전체 모양이 달라진다. 이를 통해 렌즈의 초점을 5cm부터 무한대까지 맞출 수 있게 된다.
2004년 삼성전기에서 세계최초로 액체렌즈 방식으로 130만 화소의 휴대카메라 모듈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올해 4월에는 선양디엔티에서 200만 화소 제품을 내놓았다. 액체렌즈 방식은 렌즈를 이동시키는 방식보다 6배 이상 전력 소모가 적고 제품의 크기도 작아지는 장점이 있다.
액체렌즈 다음으로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응용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전자종이 분야다. 전자종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꽃으로 불리지만 화면이 바뀌는 속도가 느린 문제가 있어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존 방식은 화면을 표시할 때 전기로 제어되는 작은 입자를 사용한다. 이 입자의 움직임이 느려 화면 반응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입자 대신 유동성이 큰 액체로 전자종이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픽셀에 액체를 채우고 이를 일렉트로웨팅 현상으로 이동시켜 화면을 제어하는 것이다. 현재 필립스에서 이 방식으로 전자종이를 개발하고 있다.
‘랩온어칩’(Lab on a Chip)도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이용하는 분야다. 랩온어칩이란 혈액과 같은 액체 한 방울을 작은 칩에 떨어뜨려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한마디로 ‘혈액 한방울로 질병을 진단하는 손바닥 위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워낙 작기 때문에 액체를 극미세한 관으로 이동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은 액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만V의 전압을 걸어야 했지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사용하면 수~수십V의 전압으로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또 기존 방식보다 1백배 이상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액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은 액체 방울의 한쪽 부분만 표면장력의 변화를 주면 된다. 이 방식으로 한쪽 끝에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일어나면 물방울이 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은 오래된 발견을 현대에 맞게 재발굴한 좋은 예다. 과거에는 쓸모없어 보였던 기술이 오늘날 무엇보다 유용한 기술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쓸모없어 보이는 기술도 앞으로 엄청나게 유용한 기술이 될 수 있다. 앞으로 MEMS 분야와 결합해 무궁무진한 변신을 거듭할 일렉트로웨팅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카메라는 여러 개 렌즈 사이의 거리를 조절해서 이런 기능을 제공하지만 작은 휴대전화 카메라에 렌즈를 여러 개 넣기는 무리다. 해결책은 우리 눈에 있다. 우리 눈의 수정체는 하나뿐이지만 두께를 조절해 멀고 가까운 물체 모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즉 딱딱한 유리나 플라스틱 대신 액체로 렌즈를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일렉트로웨팅’(Electrowetting) 현상이다. 과연 일렉트로웨팅이란 무엇일까?
일렉트로웨팅 현상이란 쉽게 말해 ‘전기로 표면장력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현상은 1870년 가브리엘 리프만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유리관에 물을 담으면 유리관 벽은 중심부보다 물의 높이가 더 높은데 이는 물과 유리관 벽 사이의 표면장력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관 대신 금속관을 쓰고 전기를 걸면 벽을 따라 올라오는 물의 높이가 더 높아진다. 전기로 표면장력이 더욱 세졌기 때문이다.
리프만은 이를 ‘전기모세관’ 현상이라고 불렀지만 그 뒤로 1백년간 이 기술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전기모세관 현상은 1V 이하의 낮은 전압에서만 일어났고, 이보다 높은 전압을 걸면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해돼 버렸다. 제한된 전압 때문에 이 현상을 응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1990년 높은 전압으로도 표면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발견됐다. 프랑스 브루노 버지 박사는 금속판을 얇은 절연체로 씌운 뒤 그 위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다음에 금속판과 물방울에 전기를 걸자 전압이 높아질수록 물방울이 얇게 퍼졌다. 이 방법을 쓰자 수십 V의 높은 전압에서도 물방울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족쇄가 걸린 1백년 전 기술을 열어젖힐 열쇠를 찾은 것이다.
물에 전기를 통하면 표면장력이 변하는 이유는 물 분자 자체가 극성(+,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 분자는 산소원자 하나와 수소원자 두 개로 구성돼 있는데, 수소원자가 104.5도의 각도를 이루며 붙어있기 때문에 (+)인 쪽과 (-)인 쪽이 생긴다. 이 극성 때문에 전기가 흐르는 금속에는 더 끌리는 힘이 생겨 표면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과 금속이 직접 만나면 전자를 주고받기 때문에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돼 버리지만 그 사이에 얇은 절연체가 있으면 전기장의 영향은 받지만 전자를 주고받을 수 없어 분해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높은 전압에서 표면장력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에서 액체보다는 얇은 절연체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알려져 있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럼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어디에 응용할 수 있을까? 상용화가 가장 빠른 분야는 처음 언급했던 액체렌즈다. 엑체렌즈에서는 물과 기름으로 렌즈를 만든다. 물과 기름의 경계면을 일렉트로웨팅 현상으로 변화를 주면 전체 모양이 달라진다. 이를 통해 렌즈의 초점을 5cm부터 무한대까지 맞출 수 있게 된다.
2004년 삼성전기에서 세계최초로 액체렌즈 방식으로 130만 화소의 휴대카메라 모듈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올해 4월에는 선양디엔티에서 200만 화소 제품을 내놓았다. 액체렌즈 방식은 렌즈를 이동시키는 방식보다 6배 이상 전력 소모가 적고 제품의 크기도 작아지는 장점이 있다.
액체렌즈 다음으로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응용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전자종이 분야다. 전자종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꽃으로 불리지만 화면이 바뀌는 속도가 느린 문제가 있어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존 방식은 화면을 표시할 때 전기로 제어되는 작은 입자를 사용한다. 이 입자의 움직임이 느려 화면 반응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입자 대신 유동성이 큰 액체로 전자종이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픽셀에 액체를 채우고 이를 일렉트로웨팅 현상으로 이동시켜 화면을 제어하는 것이다. 현재 필립스에서 이 방식으로 전자종이를 개발하고 있다.
‘랩온어칩’(Lab on a Chip)도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이용하는 분야다. 랩온어칩이란 혈액과 같은 액체 한 방울을 작은 칩에 떨어뜨려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한마디로 ‘혈액 한방울로 질병을 진단하는 손바닥 위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워낙 작기 때문에 액체를 극미세한 관으로 이동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은 액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만V의 전압을 걸어야 했지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을 사용하면 수~수십V의 전압으로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또 기존 방식보다 1백배 이상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액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은 액체 방울의 한쪽 부분만 표면장력의 변화를 주면 된다. 이 방식으로 한쪽 끝에만 일렉트로웨팅 현상이 일어나면 물방울이 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일렉트로웨팅 현상은 오래된 발견을 현대에 맞게 재발굴한 좋은 예다. 과거에는 쓸모없어 보였던 기술이 오늘날 무엇보다 유용한 기술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쓸모없어 보이는 기술도 앞으로 엄청나게 유용한 기술이 될 수 있다. 앞으로 MEMS 분야와 결합해 무궁무진한 변신을 거듭할 일렉트로웨팅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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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웨팅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2009-04-18
답글 0
이 기술이 실용화 되려는 노력이 있었군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도전이라 저역시 기대가 됩니다!
2009-04-06
답글 0
일렉트로웨팅의 활약을 정말 기대합니다. 차세대 렌즈, 전자종이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합니다.
2009-04-04
답글 0
하루빨리 완성되어 제품에 응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07-06-18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