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악어의 암수를 뒤바꾸는 33℃

<KISTI의 과학향기> 제518호   2006년 11월 01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관점들 중 하나는 여성은 선천적으로 차가우며 남성은 뜨겁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따뜻한 바람이 불 때 이루어진 수태를 통해서는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차가운 바람은 여자아이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바람의 온도에 따라 인간의 성이 결정된다는 논리다.

중학교에서 유전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비웃을지 모르겠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조류는 모두 성염색체에 의해 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될 때 이미 남녀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뒤 전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생물이 다 그럴까?

암수의 성 결정 메커니즘은 동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물고기나 파충류 따위의 냉혈동물은 성염색체가 없어 대부분 비유전적인 요인, 예컨대 온도 또는 환경 여건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할 때 성이 결정되지 않고, 이후 성장하는 단계에서 주변의 환경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류에서는 성체 물고기의 성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동물은 파충류에 많아서 모든 악어류, 대부분의 거북, 일부 도마뱀은 알이 부화되는 온도에 따라 암수가 판가름 난다. 비교적 건조한 습지대에서는 같은 보금자리 안에서도 온도가 낮은 주변부와 온도가 높은 중심부에서는 암수가 달리 태어난다. 또 온도가 중간인 곳에서는 암컷도 될 수 있고 수컷도 될 수 있다. 성을 결정짓는 온도는 종류마다 다양하다.

악어와 같은 몇몇 파충류의 알은 부화할 때의 온도가 낮으면 암컷으로, 온도가 높으면 수컷으로 태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미시시피악어와 엘리게이터악어, 그리고 도마뱀이다. 과학자들은 미시시피악어 풀 둥우리에 온도계를 꽂아 부화 온도를 측정하고, 부화했을 때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연못과 같이 습하고 시원한 곳의 둥우리에서는 암컷이 많이 나왔고, 건조하고 더운 땅의 둥우리에서 부화한 알은 대부분이 수컷이었다. 보통 엘리게이터악어나 도마뱀의 알은 33℃ 이상에서 부화하면 수컷이 되고, 30℃ 이하에서는 암컷이 된다. 30~33도 사이에서는 암수가 고르게 태어난다. 과학자들은 알에서 깨어날 때, 온도에 따라 생성되는 호르몬이 달라져 암수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추정한다.

적당한 온도면 무조건 수컷만 태어나는 것도 있다. 북미산 악어는 부화시 살기 좋은 적당한 온도면 수놈만 태어난다. 수놈은 항상 암놈보다 덩치가 크다. 성분화(性分化)학자인 미국의 디밍 박사는 악어의 경우 덩치가 크고 빨리 성숙해야 더 많은 암컷을 거느릴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여건만 좋다면 수컷을 많이 낳는 것이 생존경쟁에 유리하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같은 파충류라도 거북은 반대로 햇볕이 따뜻한 곳에서는 암컷이 태어나지만 응달에서는 수컷이 생긴다. 미국의 붉은바다거북은 산란지가 따뜻한 남쪽이면 90% 이상이 암컷으로 부화된다.

바다거북의 예를 보자. 바다거북은 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지만 암컷들이 알을 낳기 위해서 육중한 몸을 이끌고 해변으로 나올 때는 예외다. 바다거북 암컷들이 발을 이용해 모래구멍을 판 후 그 바닥에다가 알을 낳으면 약 8주 후에 알을 깨고 새끼들이 나오는데, 모래의 온도가 낮으면 대부분 수컷이고 모래의 온도가 높으면 암컷이며, 중간 정도의 온도에는 1:1 비율을 이룬다. 30~35℃에 부화하면 암컷, 20~22℃에서 부화하면 수컷, 두 온도 사이에서는 암수가 모두 태어난다.

어류는 이미 성이 결정되어 부화되지만 간혹 온도 변화에 따라 성이 바뀌기도 한다. 즉 온도가 너무 심하게 높으면 민물고기인 피라미의 경우 일부 암컷에게서 수컷의 추성돌기와 지느러미의 붉은색 변화가 나타난다. 유전자형은 분명 암컷인데 해부해 보면 난소 대신 정소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극히 극단적인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악어와 거북의 두 경우를 볼 때 성 결정은 동물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도에 의한 성 결정은 진화적인 장단점을 가진다. 암수의 성비가 1:1에 묶여 있지 않고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암컷을 많이 만들어 자손을 번창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지역적으로 온도가 상승하거나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온도에 의해 성이 바뀌는 종들은 암컷과 수컷의 성비가 한쪽으로 편중되게 된다. 이는 멸종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악어는 수컷, 거북은 암컷만이 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환경에 대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평가하기
이미란
  • 평점   별 5점

정말 신기합니다. ^^

2009-04-08

답글 0

익명
  • 평점   별 5점

그건 불가능 합니다 ^^*
양성동체인 생물도 혼자선 산란 수정 못 합니다.

2006-12-23

답글 0

허수
  • 평점   별 5점

재미있군요
우리 아이들이 살 환경을 생각해 봅니다.

2006-11-08

답글 0

눈팅
  • 평점   별 5점

넘 잼나는 글이네요~ 33도!

2006-11-05

답글 0

미래과학자
  • 평점   별 5점

사람도 살다가 성이 바뀌면 참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네요^^

2006-11-02

답글 0

운영자
  • 평점   별 4점

관심 감사합니다.

2006-11-02

답글 0

박병호
  • 평점   별 5점

사람도 가끔 남녀가 뒤바뀌어 살아 봤으면 합니다.

2006-11-01

답글 0

현진
  • 평점   별 5점

성염색체가 없다라.. 신기하네요. 온도에 따른 성 결정이 파충류에 많다니..
혹시 파충류가 지배하던 시대에 공룡들이 멸종한 것도 지구 기온의 변화에
의해 그런걸까요? 한쪽 성으로만 부화하면서 멸종의 길을 걷게 된.....

2006-11-01

답글 0

일편단심지연
  • 평점   별 5점

그런...피라미는... 한마리가 혼자서 자신의 알 낳고, 수정도 다 할수 있나요???

2006-11-01

답글 0

이대현
  • 평점   별 4점

호호~ 신기해요

2006-11-01

답글 0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링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