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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KISTI의 과학향기> 제1144호 2010년 07월 12일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스며들 듯 사는 거다. 천천히, 이끼처럼 들러붙어 사는 거다.”
2009년 인터넷을 달궜던 인기 만화, ‘이끼’의 주인공 유해국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간 마을에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마을에 머물겠다는 자신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마음에 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정확하게 조사하지 않는 것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그는 이끼처럼 이곳에 들러붙어 살기로 결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익숙한 존재로 생각하게 됐을 때 이 마을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장 천용덕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끝없이 의문을 품으며 다가오는 유해국에게 마을이 가진 비밀을 감추려 최선을 다한다. 이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는 독자들을 끌어당겼고, 마침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2010년 7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끼’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80회에 걸친 만화에 이끼가 등장하는 것은 위의 대사 하나뿐이고 이야기도 이끼와 관련된 것이 아닌데, 왜 이끼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혹시 이끼의 생태에 대해 알면 그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 이끼에 대해 몇 가지를 알아봤다.
이끼는 원래 ‘물기가 많은 곳에 나는 푸른 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츰 바위나 나무, 작은 식물 등에 달라붙어 사는 식물 전체를 부르는 용어가 됐다. 그러다보니 이끼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실제로 이끼가 아닌 것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물이끼인데, 이는 이끼류가 아니라 녹조류에 속한다. 또 괴불이끼나 바늘이끼라 불리는 것은 양치식물에 속한다. 산성과 염기성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종이를 만드는 리트머스이끼도 이끼가 아니라 지의류이다.
이끼는 원시적인 식물이라 꽃이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뿌리는 헛뿌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 관다발도 발달되지 않아 물과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끼는 크게 자라지 않고 1~10cm 정도로 키가 작다. 하지만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녹색식물로 분류된다.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육상 식물이다. 그러다보니 살아가는데 반드시 물기가 필요했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주로 자라게 됐다. 집 주변의 돌담이나 그늘지고 축축한 마당, 습기가 많은 숲 속 등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끼가 살고 있다. 계곡의 바위나 늪의 가장자리, 물 속 등 다른 식물이 뿌리내리기 힘든 물가에서도 이끼는 잘 자란다.
이끼가 자라는 데는 빛의 양과 습도, 온도가 중요하다. 빛이 많고 온도가 높으면 대기 중 습도가 낮아지므로 이끼가 살기에 좋지 못한 환경이 된다. 이끼의 광합성 활동은 보통 25℃ 정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약 400Lux의 빛(맑은 날 해가 뜨거나 질 때의 밝기)에서 잘 성장한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물을 증발시켜 이끼를 말라죽일 수 있기 때문에 이끼는 그늘지고 서늘하며 습한 곳을 선호한다.
이끼는 비록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지만 자연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흙이 무너지거나 공사 등으로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나타나 정착하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끼가 자라면서 생긴 부식토 덕분에 식물들이 뿌리내릴 수 있고, 이끼 스스로가 작은 동물에게는 안식처와 음식을 제공한다. 결국 이끼가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비를 저장하고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이끼는 세포 속에 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평균적으로 자기 몸무게의 5배 정도의 물을 몸에 가둬둘 수 있다. 특히 이탄이끼(Peat Moss)의 경우에는 그 양이 최고 25배에 달한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비가 왔을 때 이끼는 많은 물을 저장해 홍수와 강의 침식 등을 막고, 비가 잘 내리지 않을 때는 저장했던 물을 내놓아 피해를 줄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숲의 홍수와 가뭄 방지 기능을 이끼도 함께 하는 것이다.
생수태(Sphagnum Moss)는 물 저장력이 뛰어나 상처를 감싸는 붕대로 만드는 데 이용됐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이탄이끼를 지혈을 위한 외과치료용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줄기와 잎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이끼의 종류인 선류(蘚類)를 식물기름과 혼합해 습진이나 베인 상처, 화상 등을 치료하는 데 이용했다. 선류의 추출물은 기관지염이나 심혈관 질환, 이뇨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끼는 의약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연구결과 화학적 성분도 어느 정도 입증됐다.
이밖에도 이끼는 과거 유럽에서 침대의 속재료와 건축 재료로 사용됐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인들이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 데도 이용되는 등 세상에 이롭게 사용됐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이끼처럼 어둡고 습한 곳에 살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이끼처럼 맨 먼저 도착해 마을을 세웠던 유해국의 아버지, 유목형은 마을에 모여든 결함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장과 함께 마을을 꾸렸고,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제 몫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은 이끼와 달리 자신들의 환경만 신경쓸 뿐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영화 이끼를 보며, 또 진짜 이끼의 생태를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2009년 인터넷을 달궜던 인기 만화, ‘이끼’의 주인공 유해국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간 마을에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마을에 머물겠다는 자신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마음에 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정확하게 조사하지 않는 것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그는 이끼처럼 이곳에 들러붙어 살기로 결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익숙한 존재로 생각하게 됐을 때 이 마을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장 천용덕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끝없이 의문을 품으며 다가오는 유해국에게 마을이 가진 비밀을 감추려 최선을 다한다. 이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는 독자들을 끌어당겼고, 마침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2010년 7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끼’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80회에 걸친 만화에 이끼가 등장하는 것은 위의 대사 하나뿐이고 이야기도 이끼와 관련된 것이 아닌데, 왜 이끼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혹시 이끼의 생태에 대해 알면 그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 이끼에 대해 몇 가지를 알아봤다.
이끼는 원래 ‘물기가 많은 곳에 나는 푸른 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츰 바위나 나무, 작은 식물 등에 달라붙어 사는 식물 전체를 부르는 용어가 됐다. 그러다보니 이끼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실제로 이끼가 아닌 것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물이끼인데, 이는 이끼류가 아니라 녹조류에 속한다. 또 괴불이끼나 바늘이끼라 불리는 것은 양치식물에 속한다. 산성과 염기성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종이를 만드는 리트머스이끼도 이끼가 아니라 지의류이다.
이끼는 원시적인 식물이라 꽃이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뿌리는 헛뿌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 관다발도 발달되지 않아 물과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끼는 크게 자라지 않고 1~10cm 정도로 키가 작다. 하지만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녹색식물로 분류된다.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육상 식물이다. 그러다보니 살아가는데 반드시 물기가 필요했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주로 자라게 됐다. 집 주변의 돌담이나 그늘지고 축축한 마당, 습기가 많은 숲 속 등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끼가 살고 있다. 계곡의 바위나 늪의 가장자리, 물 속 등 다른 식물이 뿌리내리기 힘든 물가에서도 이끼는 잘 자란다.
이끼가 자라는 데는 빛의 양과 습도, 온도가 중요하다. 빛이 많고 온도가 높으면 대기 중 습도가 낮아지므로 이끼가 살기에 좋지 못한 환경이 된다. 이끼의 광합성 활동은 보통 25℃ 정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약 400Lux의 빛(맑은 날 해가 뜨거나 질 때의 밝기)에서 잘 성장한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물을 증발시켜 이끼를 말라죽일 수 있기 때문에 이끼는 그늘지고 서늘하며 습한 곳을 선호한다.
이끼는 비록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지만 자연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흙이 무너지거나 공사 등으로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나타나 정착하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끼가 자라면서 생긴 부식토 덕분에 식물들이 뿌리내릴 수 있고, 이끼 스스로가 작은 동물에게는 안식처와 음식을 제공한다. 결국 이끼가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비를 저장하고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이끼는 세포 속에 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평균적으로 자기 몸무게의 5배 정도의 물을 몸에 가둬둘 수 있다. 특히 이탄이끼(Peat Moss)의 경우에는 그 양이 최고 25배에 달한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비가 왔을 때 이끼는 많은 물을 저장해 홍수와 강의 침식 등을 막고, 비가 잘 내리지 않을 때는 저장했던 물을 내놓아 피해를 줄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숲의 홍수와 가뭄 방지 기능을 이끼도 함께 하는 것이다.
생수태(Sphagnum Moss)는 물 저장력이 뛰어나 상처를 감싸는 붕대로 만드는 데 이용됐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이탄이끼를 지혈을 위한 외과치료용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줄기와 잎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이끼의 종류인 선류(蘚類)를 식물기름과 혼합해 습진이나 베인 상처, 화상 등을 치료하는 데 이용했다. 선류의 추출물은 기관지염이나 심혈관 질환, 이뇨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끼는 의약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연구결과 화학적 성분도 어느 정도 입증됐다.
이밖에도 이끼는 과거 유럽에서 침대의 속재료와 건축 재료로 사용됐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인들이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 데도 이용되는 등 세상에 이롭게 사용됐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이끼처럼 어둡고 습한 곳에 살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이끼처럼 맨 먼저 도착해 마을을 세웠던 유해국의 아버지, 유목형은 마을에 모여든 결함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장과 함께 마을을 꾸렸고,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제 몫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은 이끼와 달리 자신들의 환경만 신경쓸 뿐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영화 이끼를 보며, 또 진짜 이끼의 생태를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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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ㅎ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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