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블루베리는 원래 ‘파란색’이 아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51호   2024년 04월 15일
마트에서 파는 식재료들의 색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라 등 다양한 빛깔이 있지만 파란색은 굉장히 드물다.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식재료 중 파란색을 띠는 것은 블루베리가 거의 유일하다. 탐색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도 결과는 비슷하다. 서양 자두, 오리건 포도 등 일부 과일이 파란색을 띠지만 다른 색과 비교했을 때 차지하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 동식물의 색을 연구하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대 재료화학부 보도 윌츠 교수는 “자연에서 파란색은 이상한 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파란색 과일, 채소가 드물다 보니 과학자들에게는 블루베리와 같은 파란 과일이 파란색을 띠는 이유가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지난 2월 헤더 휘트니 영국 브리스톨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블루베리가 지닌 파란색의 비밀을 밝혀냈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월 7일 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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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자연에서 푸른 빛을 띠는 동식물은 흔치 않다. ⓒClipart Korea
 
 
블루베리 껍질의 왁스 가루가 청색광 반사시켜
블루베리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물질이 들어있다. 이 색소는 포도에도 다량 함유돼 있는데 주로 붉은색 빛을 반사한다. 즉, 블루베리의 파란색은 색소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블루베리를 압착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블루베리를 짜서 주스를 만들면 파란색이 사라진다. 애초에 파란 색소를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더 히트니 영국 브리스톨대 교수팀은 블루베리의 껍질에 있는 하얀 가루에 주목했다. 이 가루는 껍질에 있는 지방 성분의 왁스가 굳어진 것으로, 물을 밀어내 껍질을 깨끗하게 유지하게 한다. 해더 히트니 교수팀이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블루베리 표면에 있는 왁스를 관찰한 결과, 두께는 2㎛(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로 매우 얇았으며 무질서한 나노 구조로 배열돼 있었다. 이 나노 구조를 통과한 빛은 산란 과정을 거쳐 파란색과 자외선 영역의 빛으로 반사됐다. 실험실에서 블루베리의 표면을 마모시키거나 클로로포름으로 왁스 성분을 제거하면 파란색을 띠지 않았으며, 물로만 씻어 왁스 성분이 남아 있을 경우에는 파란색을 띠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더 교수팀은 왁스의 무질서한 나노 구조가 파란색을 만든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추출한 왁스 성분을 검은색 기판에 입힌 뒤 재결정시켰다. 그 결과, 기판에도 블루베리와 비슷한 파란색이 나타났다. 기판에 만들어진 왁스층에서도 블루베리의 표면과 마찬가지로 무질서한 나노 구조가 관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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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파란색을 띠는 오리건 포도(A)와 표면 왁스를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C). 왁스만 추출해 검은 기판에 입혔더니 파란색이 나타났으며(B) 현미경 관찰 결과(D)와 파장을 분석한 결과(F)도 오리건 포도의 표면을 관찰했을 때와 비슷했다. ⓒScience Advances
 
연구에 참여한 록스 미들턴 브리스톨 생명과학부 연구원은 “이번 결과는 자연이 착색제를 만들기 위해 색소가 아닌 초박막이라는 깔끔한 트릭을 사용하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준다”며 “추출한 왁스를 얇게 코팅해 파란색을 구현하는 이전에는 없던 착색법을 발견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파란색은 과학자들에게 꿈의 색
사실 파란색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에서 드문 색이다. 그래서 빨간색과 노란색 안료는 약 10만 년 전에 개발됐지만, 파란색 안료는 지금으로 5,0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모래와 식물 재, 구리를 섞어 만든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도 파란색 안료는 다른 색과 비교해 굉장히 드물다.
 
이에 과학자들은 인위적으로 파란색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 중이며, 화학적으로 안료를 제조하는 것을 넘어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위스키 제조회사인 산토리는 2000년대 초 장미의 유전자를 조작해 파란 꽃을 만드는 데 도전했다. 당시 꽃잎이 푸른색 색소를 생산하긴 했지만, 꽃의 전체적인 모습은 연보라색에 가까웠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2017년, 산토리 연구팀은 다시 한번 파랑을 구현하는 데 도전해 성공했다. 유전자 조작으로 순수한 파란색을 띠는 국화를 개발했으며 해당 연구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분홍 국화에 ‘델피니딘(Delphinidin)’이라는 푸른색 색소가 합성되도록 외부 유전자 두 개를 넣어줬다. 하나는 안토시아닌 색소를 델피니딘 색소로 만드는 효소와 관련된 유전자이고 다른 하나는 델피니딘 색소가 활성화되도록 산성도를 높이는 유전자였다. 연구에 참여한 노다 나오노부 일본 국립농업식품연구소 연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푸른 꽃이 탄생했다”며 우리가 이렇게 완벽한 파란색을 만들어 낸 것은 우연의 결과로, 우리조차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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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파란 국화. ⓒ일본 국립농식품연구기구
 
 
이외에도 완벽한 파랑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 런던대 지구공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돕손은 지구 맨틀의 고온 고압에서 형성되는 푸른 암석인 ‘링우다이트’를 연구실에서 재현했다. 링우다이트의 푸른색은 Fe2+와 Fe3+ 사이의 전자 교환으로부터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내, 산소 원자로 둘러싸인 아연과 게르마늄에서 각 금속을 철로 대체하는 실험을 통해 성공했다. 돕손은 “엄청난 압력으로 생성된 광물이 새로운 파란색을 찾는 데 영감을 주었다”며 “철을 더 첨가해 더 완벽한 파랑에 가까워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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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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