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전자담배 주의보, 폐질환 환자가 늘어간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451호 2019년 11월 04일기존 궐련형 담배보다 유해물질이 적다고 인식돼 흡연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끈 액상형 전자담배에 비상이 걸렸다. 시작은 미국에서 급작스럽게 증가한 폐질환이었다. 환자들은 기침이나 호흡곤란, 가슴통증 등을 느꼈는데, 처음에 의료진들은 환자들에게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지 묻지 않았다. 액상 전자담배가 폐질환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급작스러운 폐질환 환자들이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전자담배는 궐련보다는 몸에 덜 나쁘다는 인식이 무너지고 있다. 3년 전부터 액상 전자담배를 판매한 미국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원인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1300여 명이고 그중 사망자는 30여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액상형 전자담배 유발로 의심되는 폐질환 환자가 1명이 보고돼 보건복지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사용 중단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이에 국내 대형 편의점에서는 아예 액상형 전자담배의 판매를 중단했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폐의 계면활성제 분비를 망가뜨린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어떻게 중증 폐질환을 일으키는 아직 확실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아직 수집 가능한 데이터가 부족해 ‘건강에 이상이 없다, 오히려 금연에 도움이 된다’는 측과 ‘액상형 전자담배도 궐련과 마찬가지로 폐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라는 측이 대립해왔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에 포함된 일부 물질이 폐가 이물질을 거르는 기능과 호흡 기능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베일러의대 매튜 매디슨 연구팀은 생쥐를 여러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는 일반 담배를, 다른 집단에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증기를 맡게 했다. 그 결과 액상형 전자담배 증기를 흡입한 생쥐에서는 폐에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면역세포인 폐 대식세포에 지질 덩어리가 가득 차 있었고 계면활성제를 만드는 폐포 세포는 형태가 변형돼 있었다.
폐 말단에는 폐포라고 주머니 모양의 기관이 있는데, 여기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폐포의 안쪽 면에는 계면활성제를 분비하는 폐포세포가 있다. 폐포가 만드는 계면활성제는 마치 비누막처럼 폐를 덮고 있다. 폐의 계면활성제는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리가 비누나 세제에서 접하는 계면활성제는 물과 친한 분자와 기름과 친한 분자가 함께 있는 화합물로서 표면장력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폐포가 분비하는 계면활성제는 폐포의 안쪽과 바깥쪽 면의 압력을 같게 해 숨 쉴 때 팽창하고 수축하는 데 드는 힘을 덜어준다. 그렇지 않다면 숨 한 번 쉴 때마다 매우 힘겹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은 아직 폐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폐포 계면활성제의 부족으로 걸리는 질병이다. 계면활성제가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폐포가 잘 펴지지 않아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교환되지 않아 저산소증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폐의 계면활성제는 호흡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이다.
기름 용매가 문제인 것으로 보여
현재까지의 증거로 볼 때 기름 성분의 용매가 폐질환의 원인으로 보인다. 액상형 전자담배에는 니코틴이나 향료를 포함한 다양한 유기물질을 비타민 E 오일, 글리세롤과 같은 지방 용매를 이용해 녹인다. 쉽게 말해 기름에 다양한 물질을 녹여 주입하는 것이다. 이런 기름이 폐의 계면활성제 분비를 방해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암울한 사실은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유기화합물이 너무나 다양해 아직 그것들의 작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품 수도 많을뿐더러 사용자들이 마음대로 원료를 배합해 향기나 증기량을 바꾸기도 한다. 아직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과 이것이 폐의 미치는 영향을 신속하게 조사하기로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호흡기 전문의 등과 함께 민관 합동 조사팀을 구성해 응급실이나 호흡기내과를 찾은 환자 가운데 중증 폐손상자 사례 조사를 해 추가 의심 사례를 확보하고, 임상약학 조사 연구를 통해 연관성을 밝힐 예정이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액상형 전자담배를 바로 끊는 것이 좋겠다.
글: 이인호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이에 커피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커피의 소비량은 ‘차(茶)’의 소비량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는 많은 국가에서 차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인 외에도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건강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디저트 배'는 진짜였다! 당신 뇌 속의 달콤한 속삭임
- [과학향기 for Kids] 나무 뗏목 타고 8000km 항해? 태평양을 건넌 이구아나의 대모험
- [과학향기 for kids] 추위에도 끄떡없어! 북극곰의 털이 얼어붙지 않는 비결은?
- [과학향기 for kids] 사람 근육으로 움직이는 로봇 손 등장!
- [과학향기 Story] 죽음을 초월한 인간, 《미키17》이 던지는 질문
- [과학향기 Story] 인간의 뇌, 와이파이보다 느리다니?
- [과학향기 for Kids] 귓바퀴의 조상은 물고기의 아가미?
- [과학향기 Story] 하루 한 두 잔은 괜찮다더니… 알코올, 암 위험 높이고 건강 이점 없어
- [과학향기 for Kids] 잘 모를 때 친구 따라 하는 이유!
- [과학향기 for Kids] 한 달 동안 똥을 참는 올챙이가 있다?
ScienceON 관련논문
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멘.
2019-11-04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