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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칩 하나로 바퀴벌레 조종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1809호 2013년 02월 25일
2012년 9월, 바퀴벌레가 S자 커브를 도는 영상이 공개됐다. 자세히 보니 등에 작은 칩이 달려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대학(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의 연구자들이 바퀴벌레를 원격으로 조종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한 것이다. 아직은 단순한 방향 전환 정도만 가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일종의 마이크로 로봇처럼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 중이다. 실제로 바퀴벌레를 원하는 데로 조종할 수 있게 되면 화재나 지진 등 인간이 직접 들어가기 위험하고 좁은 공간에 투입해 인명구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동물을 조종하려는 연구는 로봇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데서 출발했다. 동물 조종 실험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지만 본격적인 실험은 2000년대 이후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로봇은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 해줬다. 그 중에서도 군사·우주 로봇은 첨단 과학이 집약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로봇이 곤충 같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생명체의 움직임을 응용해 만든 로봇은 정찰, 탐지, 심해 탐사, 전투, 사고 구조 등 활용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동력에너지, 크기, 무게, 운용 범위 등에서 한계도 많았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움직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발상 자체를 뒤집었다. 동물을 본떠 로봇을 만들기보다 동물 자체를 조종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무인정찰기 대신 곤충이나 새를 날려 적진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바뀌는 환경에 금방 적응하고 에너지 동력원을 보충할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다. 게다가 적에게 발각돼도 의심을 살 여지가 없다. 실험은 주로 신경이나 뇌를 자극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동물 조종 연구는 미국 국방과학연구소(DARPA)가 가장 앞서 진행했다.곤충이나 상어, 개 등이 대상이 됐다. 지난 2006년 DARPA는 곤충에 전자 칩을 이식해 정찰용이나 군사용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시도했다.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을 이용해 살아 있는 곤충이 날아가는 방향을 조종하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몸에 심은 MEMS 칩이 특정 주파수를 내면 곤충이 주파수에 맞춰 날갯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좌우 날갯짓의 속도를 조절해 방향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왼쪽 날개를 빨리 움직이면 곤충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식이다.
그러나 어른 곤충의 몸에 칩을 이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성충이 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곤충이 칩을 신체 일부로 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해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할 때 칩을 이식했다. 번데기가 커지면서 이식 부위의 상처가 아물고 동시에 칩이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도록 시도했다.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한데, 최근에는 새로운 동물 조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동물이 지닌 장애물 회피특성과 가상현실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동물에 전기 자극 등을 주지 않아도 조종이 가능하다. 카이스트 CM&SS(컴퓨터기계구조시스템, Computational Mechanics & Structural System) 연구실의 이필승 교수팀은 토목환경공학과 명현 교수 등과 함께 흥미진진한 실험에 성공했다. 거북이가 사람이 그린 길을 따라가며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도달하게 만든 것이다. 실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한때 화제가 됐다.
<실제 거북을 조종하는 동영상>
거북은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장치를 달아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근력이 발달해 있고 움직임이 느려 실험이 쉽기 때문에 실험대상으로 우선 선정됐다. 동영상에는 몸에 반달 모양의 장치를 단 거북이가 바닥에 그려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핵심 원리는 거북의 몸에 달린 ‘순·역자극 장치’다. 이 장치는 장애물이 없는데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동물을 속인다.
가짜 장애물을 피하려는 동물의 본능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나 동물은 앞에 전봇대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피한다. 이처럼 거북이에게 장애물이 좌우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원하는 이동 경로로 유도한다. 거북이를 오른쪽으로 가게 하려면 왼쪽에 커다란 벽을 보여줘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생물체 원격유도 기술’로 이름붙인 이번 연구는 동물의 뇌나 신경에 직접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는 기존 실험과는 다르다. 또 신경이나 뇌를 자극하기 위한 칩을 몸속에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목표 지점에 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구간에서 거북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유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별도의 훈련 없이 장비만 동물의 몸에 부착해 바로 조종하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각종 동물들이 군사용 무기는 물론 인명피해 구조나 수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물론 한편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을 인간이 원하는 데로 조종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와 같은 연구에는 윤리적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며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글 : 김민수 과학칼럼니스트
동물을 조종하려는 연구는 로봇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데서 출발했다. 동물 조종 실험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지만 본격적인 실험은 2000년대 이후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로봇은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 해줬다. 그 중에서도 군사·우주 로봇은 첨단 과학이 집약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로봇이 곤충 같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생명체의 움직임을 응용해 만든 로봇은 정찰, 탐지, 심해 탐사, 전투, 사고 구조 등 활용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동력에너지, 크기, 무게, 운용 범위 등에서 한계도 많았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움직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발상 자체를 뒤집었다. 동물을 본떠 로봇을 만들기보다 동물 자체를 조종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무인정찰기 대신 곤충이나 새를 날려 적진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바뀌는 환경에 금방 적응하고 에너지 동력원을 보충할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다. 게다가 적에게 발각돼도 의심을 살 여지가 없다. 실험은 주로 신경이나 뇌를 자극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그림]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는 바퀴벌레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오른쪽 상단은 S자 커브를 도는 모습. 사진 출처 :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그러나 어른 곤충의 몸에 칩을 이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성충이 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곤충이 칩을 신체 일부로 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해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할 때 칩을 이식했다. 번데기가 커지면서 이식 부위의 상처가 아물고 동시에 칩이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도록 시도했다.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한데, 최근에는 새로운 동물 조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동물이 지닌 장애물 회피특성과 가상현실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동물에 전기 자극 등을 주지 않아도 조종이 가능하다. 카이스트 CM&SS(컴퓨터기계구조시스템, Computational Mechanics & Structural System) 연구실의 이필승 교수팀은 토목환경공학과 명현 교수 등과 함께 흥미진진한 실험에 성공했다. 거북이가 사람이 그린 길을 따라가며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도달하게 만든 것이다. 실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한때 화제가 됐다.
거북은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장치를 달아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근력이 발달해 있고 움직임이 느려 실험이 쉽기 때문에 실험대상으로 우선 선정됐다. 동영상에는 몸에 반달 모양의 장치를 단 거북이가 바닥에 그려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핵심 원리는 거북의 몸에 달린 ‘순·역자극 장치’다. 이 장치는 장애물이 없는데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동물을 속인다.
가짜 장애물을 피하려는 동물의 본능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나 동물은 앞에 전봇대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피한다. 이처럼 거북이에게 장애물이 좌우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원하는 이동 경로로 유도한다. 거북이를 오른쪽으로 가게 하려면 왼쪽에 커다란 벽을 보여줘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생물체 원격유도 기술’로 이름붙인 이번 연구는 동물의 뇌나 신경에 직접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는 기존 실험과는 다르다. 또 신경이나 뇌를 자극하기 위한 칩을 몸속에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목표 지점에 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구간에서 거북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유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별도의 훈련 없이 장비만 동물의 몸에 부착해 바로 조종하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각종 동물들이 군사용 무기는 물론 인명피해 구조나 수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물론 한편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을 인간이 원하는 데로 조종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와 같은 연구에는 윤리적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며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글 : 김민수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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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윤리적 측면을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네요.
2013-03-21
답글 0
윤리적인 측면이 우선 고려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다른 생명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누구나 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안 되겠죠...?^^; 숙고해 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2013-02-25
답글 0
....글쎄요....
2013-02-25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