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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가 ‘유전자 신분증’을 가졌다면?
<KISTI의 과학향기> 제1363호 2011년 06월 06일
“너는… 입, 입양됐다.”
이 말을 들은 쿵푸팬더 ‘포’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입양이라니! 충격을 감출 수 없는 포의 얼굴.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빵’ 터졌다. 당연한 사실을 믿고 있는 포와 거위 아빠의 오버액션 덕분이다. 하지만 입양 사실에 놀란 포는 상심에 빠졌다. 그리고 친부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말 개봉한 ‘쿵푸팬더2’는 쿵푸를 지키고,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포의 이야기를 그렸다. 거위를 친아빠로 알았던 포. 그가 만약 유전자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DNA는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된 이 물질에는 각 생물의 설계도가 담겨있다. 이것만 있으면 생물의 겉모습이나 전체가 없어도 원래 주인이 어떤 생물인지 알 수 있는 셈이다. 동물의 털이나 살점처럼 아주 작은 부분만 있어도 DNA를 추출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만든 ‘DNA 바코드’가 유전자 신분증이다.
쿵푸팬더 포와 같은 자이언트판다의 경우 이미 중국에서 만든 유전자 신분증이 있다. 저쟝대학 생명과학원에서 완성한 이 유전자 신분증에는 가족번호와 가족명칭, 성별, 나이, 유전자신분증 번호, 부모이름 등 비교적 자세한 정보가 기록돼 있다. 1996년과 1997년 자이언트판다의 배설물에서 DNA조직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 개발한 결과다. 만약 포가 자신의 털 하나를 뽑아들고 연구소를 찾았다면 자신의 정체와 부모까지 상세히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림 1] DNA 바코드 분석 과정.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다른 생물도 판다처럼 자신의 고유한 DNA 바코드를 가질 수 있다. 세계 과학자들은 이미 2005년부터 생물종의 DNA 바코드를 만드는 ‘DNA 생물 바코드 프로젝트(Barcode of Life)’를 시작했다. 포처럼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가지는 생물에게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종마다 다른 DNA 염기서열을 가진다. 이 차이를 구분하고 분류하면 겉모습이나 세포 조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여러 생물 종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희귀생물을 보존하고, 품종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수 있다. 생물자원의 관리와 유통에 혁신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생물 바코드 컨소시엄(CBOL)’은 세계 45개국 150여개 연구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학교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등 5곳이 참여하고 있다.

[그림 2] 구렁이(Elaphe schrenckii, 왼쪽)와 DNA 바코드 증폭 확인을 위한 전기영동사진(오른쪽).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의 일부분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하면 나오는 고유한 코드가 나온다. 이를 사진과 설명, 과학적 정보와 연결시키는 게 DNA 바코드의 핵심이다. 이를 이용하면 범죄수사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립생물자원관은 DNA 바코드를 사건해결에 사용했다. 2011년 3월에는 멸종위기의 구렁이(Elaphe schrenckii)를 몰래 수입하려던 밀수업자가 붙잡혔다. 밀수업자는 구렁이 수백만 마리를 다른 뱀과 섞어 수입하려다 경찰에 잡혔고, 구렁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의 DNA 바코드 분석결과 구렁이로 최종 확인돼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2010년에는 국내로 몰래 들어온 호랑이 가죽이 가짜임이 밝혀졌다. 가죽의 일부를 이용해 DNA 바코드를 분석하자 호랑이가 아니라 개(Canis lupus familiaris)라는 결과가 나왔다. 밀수범은 가짜 호랑이 가죽을 들여 비싼 값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에는 꿀벌 농가에 피해를 준 짐승을 알아내기도 했다. 현장에 남겨진 몇 가닥의 털에서 DNA를 추출, 분석한 결과 농장을 습격한 동물이 반달가슴곰(Ursus thibetanus thibetanus)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보조작이 불가능한 DNA 바코드를 이용하면 멸종위기의 생물이 유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생물의 종을 보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또 DNA 바코드로 어떤 생물이 어디에 사는지 파악하게 되면 생태계 모니터링도 할 수 있다. 이는 더 다양한 생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 3] 가짜 호랑이 가죽(a)과 DNA 바코드 분석에 쓰인 분석용 시료(b)(c)(d)(e)의 모습.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마침 국립생물자원관은 2011년 4월 말부터 야생생물의 DNA 바코드 확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2011년 주요 생물자원 200종에 대한 DNA를 확보하고 2015년까지 5,000여종의 우리나라 자생식물에 대한 DNA 바코드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생태계 연구와 생물의 산업적 활용에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
‘쿵푸팬더2’에서처럼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생물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생물 대부분이 이름도 모른 채 살다가 멸종되는 건 슬픈 일이다. DNA 바코드가 지구상에 살고 있는 5,000만종 이상의 생물에게 정체성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170만종, 이름조차 모르는 4,830만종 이상의 생물이 ‘이 땅에서 멋지게 살았노라’는 증명이 되도록 말이다.
결국 유전자 신분증(DNA 바코드)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생물다양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이 말을 들은 쿵푸팬더 ‘포’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입양이라니! 충격을 감출 수 없는 포의 얼굴.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빵’ 터졌다. 당연한 사실을 믿고 있는 포와 거위 아빠의 오버액션 덕분이다. 하지만 입양 사실에 놀란 포는 상심에 빠졌다. 그리고 친부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말 개봉한 ‘쿵푸팬더2’는 쿵푸를 지키고,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포의 이야기를 그렸다. 거위를 친아빠로 알았던 포. 그가 만약 유전자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DNA는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된 이 물질에는 각 생물의 설계도가 담겨있다. 이것만 있으면 생물의 겉모습이나 전체가 없어도 원래 주인이 어떤 생물인지 알 수 있는 셈이다. 동물의 털이나 살점처럼 아주 작은 부분만 있어도 DNA를 추출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만든 ‘DNA 바코드’가 유전자 신분증이다.
쿵푸팬더 포와 같은 자이언트판다의 경우 이미 중국에서 만든 유전자 신분증이 있다. 저쟝대학 생명과학원에서 완성한 이 유전자 신분증에는 가족번호와 가족명칭, 성별, 나이, 유전자신분증 번호, 부모이름 등 비교적 자세한 정보가 기록돼 있다. 1996년과 1997년 자이언트판다의 배설물에서 DNA조직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 개발한 결과다. 만약 포가 자신의 털 하나를 뽑아들고 연구소를 찾았다면 자신의 정체와 부모까지 상세히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림 1] DNA 바코드 분석 과정.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다른 생물도 판다처럼 자신의 고유한 DNA 바코드를 가질 수 있다. 세계 과학자들은 이미 2005년부터 생물종의 DNA 바코드를 만드는 ‘DNA 생물 바코드 프로젝트(Barcode of Life)’를 시작했다. 포처럼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가지는 생물에게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종마다 다른 DNA 염기서열을 가진다. 이 차이를 구분하고 분류하면 겉모습이나 세포 조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여러 생물 종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희귀생물을 보존하고, 품종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수 있다. 생물자원의 관리와 유통에 혁신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생물 바코드 컨소시엄(CBOL)’은 세계 45개국 150여개 연구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학교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등 5곳이 참여하고 있다.

[그림 2] 구렁이(Elaphe schrenckii, 왼쪽)와 DNA 바코드 증폭 확인을 위한 전기영동사진(오른쪽).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의 일부분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하면 나오는 고유한 코드가 나온다. 이를 사진과 설명, 과학적 정보와 연결시키는 게 DNA 바코드의 핵심이다. 이를 이용하면 범죄수사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립생물자원관은 DNA 바코드를 사건해결에 사용했다. 2011년 3월에는 멸종위기의 구렁이(Elaphe schrenckii)를 몰래 수입하려던 밀수업자가 붙잡혔다. 밀수업자는 구렁이 수백만 마리를 다른 뱀과 섞어 수입하려다 경찰에 잡혔고, 구렁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의 DNA 바코드 분석결과 구렁이로 최종 확인돼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2010년에는 국내로 몰래 들어온 호랑이 가죽이 가짜임이 밝혀졌다. 가죽의 일부를 이용해 DNA 바코드를 분석하자 호랑이가 아니라 개(Canis lupus familiaris)라는 결과가 나왔다. 밀수범은 가짜 호랑이 가죽을 들여 비싼 값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에는 꿀벌 농가에 피해를 준 짐승을 알아내기도 했다. 현장에 남겨진 몇 가닥의 털에서 DNA를 추출, 분석한 결과 농장을 습격한 동물이 반달가슴곰(Ursus thibetanus thibetanus)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보조작이 불가능한 DNA 바코드를 이용하면 멸종위기의 생물이 유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생물의 종을 보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또 DNA 바코드로 어떤 생물이 어디에 사는지 파악하게 되면 생태계 모니터링도 할 수 있다. 이는 더 다양한 생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 3] 가짜 호랑이 가죽(a)과 DNA 바코드 분석에 쓰인 분석용 시료(b)(c)(d)(e)의 모습.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마침 국립생물자원관은 2011년 4월 말부터 야생생물의 DNA 바코드 확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2011년 주요 생물자원 200종에 대한 DNA를 확보하고 2015년까지 5,000여종의 우리나라 자생식물에 대한 DNA 바코드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생태계 연구와 생물의 산업적 활용에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
‘쿵푸팬더2’에서처럼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생물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생물 대부분이 이름도 모른 채 살다가 멸종되는 건 슬픈 일이다. DNA 바코드가 지구상에 살고 있는 5,000만종 이상의 생물에게 정체성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170만종, 이름조차 모르는 4,830만종 이상의 생물이 ‘이 땅에서 멋지게 살았노라’는 증명이 되도록 말이다.
결국 유전자 신분증(DNA 바코드)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생물다양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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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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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0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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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6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