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호주 대륙은 북동쪽으로 항해 중
<KISTI의 과학향기> 제2740호 2016년 09월 19일
호주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지 않다. 지도 위의 그 장소가 아니다. 왜? 호주 대륙은 움직이니까. 대륙이 움직이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 대륙이 움직인다는 건 지구가 돈다는 사실 만큼이나 지구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체감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1915년 독일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1880. 11~1930. 11)가 저서 <대륙의 해양과 기원>을 통해 대륙이동설을 주장했을 때 논란을 일으켰지만 인정은 받지 못했다.
아프리카에 빙하의 흔적이 남극 대륙에 열대우림 지층에서 생성된 석탄층이 남아 있는 등 과거 대륙 이동의 증거는 설득력 있었지만, 대륙이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는지는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이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는 상식을 움직이긴 힘들었다. 베게너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탐사하던 중 사망했다. 1930년이었다. 베게너의 억울함을 달래줄 대륙 이동의 증거는 1960년대가 돼서야 밝혀졌다. 답은 바다 속에 있었다.
지구의 일종의 퍼즐이다. 유라시아판, 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태평양판, 아프리카판, 인도-호주판, 남극판 등 7개의 커다란 판상(tectonic plate)과 그보다 작은 여러 개의 판들로 이뤄져있다. 이 판들은 해저산맥과 해구를 경계로 나뉘어 있다. 지진파를 통해 바다 밑의 지각 형태를 관찰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우리는 이러한 판의 경계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 판의 경계 지역은 불안정하며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구라는 퍼즐이 보통의 퍼즐과 다른 점이라면 퍼즐 판 하나의 두께가 100km에 이른다는 점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이 100km 두께의 단단한 암석층 밑에는 힘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이기도 하는 ‘연약권’(asthenosphere)이 존재한다. 판들은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다. 판의 이동 속도는 대체로 1년에 10cm 이내지만 판마다 속도는 제각각이다.
호주 대륙이 속한 판은 현재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판이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사람이나 생물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호주는 매년 7cm씩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770만km2에 달하는 거대한 땅 덩어리니 그저 적도 방향으로 움찔한 정도다. 단, 움직임은 꾸준하다. 지난 1994년 이후 22년 동안 총 1.5m의 거리를 움직였다. 실제 위치와 GPS에 사용되는 위도와 경도 사이에 오차가 1.5m 가량 생기지만, 현재 GPS 시스템에는 대략 5~10m 오차가 있으니 실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호주 지구과학연구원은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지도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내년 초 지도를 갱신할 예정이다. 2020년에 예상되는 이동 좌표에 맞춘 데이터로 갱신하는 만큼 몇 년 간 오차를 감수해야 하지만 지금 지도보다는 차이가 덜하다. 이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1.5m의 오차는 현재는 대수롭지 않지만, 미래 자율자동차 시대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숫자다. 1.5m의 차이로 내 차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드넓은 호주의 경작지에선 자율 주행하는 트랙터가 농경지를 벗어나 가축의 우리를 침범할 수도 있다.
호주가 이렇게 북으로 계속 움직이면 어디로 가게 될까? 지금 추세대로라면 호주 대륙은 5천만년 뒤엔 중국 남동해안에 부딪치리라 예상된다. 학자들은 지구가 4억년에 한 번씩 초대륙(supercontinent)을 형성한다고 예상하는데, 호주와 유라시아 대륙의 만남을 새로운 초대륙 형성의 신호탄으로 본다. 이를 시작으로, 2억년 뒤엔 새로운 초대륙 시대가 열리리란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도 이 대륙 충돌의 격랑(激浪)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북상하는 호주 대륙 앞에는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가 있다. 이들과 일본 열도가 충돌하면 히말라야 산맥 보다 거대한 산맥이 만들어지고 그 뒤에 자리한 한반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후를 가진 땅이 될 것이다. 고비 사막과 같은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이 될 수 있다. 대륙 이동은 우주로 대피하지 않는 한 어떤 주인공도 살아남을 수 없는 거대한 재난 영화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재난의 속도는 인간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니까.
판의 이동은 지각 변동을 동반한다. 판이 움직이면서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강진이 일어나면서 판의 이동을 촉진하기도 한다. 지난 8월 이탈리아 중부 산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의 경우도 아프리카 판의 이동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아프리카 판은 매년 북쪽으로 5cm씩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네팔 지진 뒤엔 히말라야 산맥 일부가 1.5m 낮아지기도 했다.
인간의 과학은 지진이 어떻게, 왜, 언제 일어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한다. 어디에서 지진이 일어날지도 예측하지 못한다. 지진파를 이용해 간신히 지구 내부 구조를 엿보는 상태고, 판의 구조나 이동에 대한 지식도 걸음마 단계다. 인간의 과학은 지구 비밀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까?
지난 8월 26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지는 일본 도쿄대 지진연구소 기와무 미시다 교수와 도호쿠대 료타 타카시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표지로 실었다. 북대서양의 폭풍에서 기원한 지진파를 관측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이 지진파는 폭풍으로 생기는 바닷물의 진동이 해저의 대륙판에 부딪히면서 생겨난다. 이 관측으로 땅에서 발생하는 지진파 외에도 대기와 해양의 영향까지 총체적으로 지각 변동을 이해할 길이 열렸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판들이 자기 갈 길을 가는 동안 인간의 과학도 지구의 비밀을 알기 위해 달려갈 테다. 거대한 대륙의 움직임을 상상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경이를 선사한다. 세계 지도 퍼즐이 있다면 당장 꺼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맞춰보자. 나만의 초대륙을 만들며 대륙의 이동을 상상해보는 일도 멋지지 않을까.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아프리카에 빙하의 흔적이 남극 대륙에 열대우림 지층에서 생성된 석탄층이 남아 있는 등 과거 대륙 이동의 증거는 설득력 있었지만, 대륙이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는지는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이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는 상식을 움직이긴 힘들었다. 베게너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탐사하던 중 사망했다. 1930년이었다. 베게너의 억울함을 달래줄 대륙 이동의 증거는 1960년대가 돼서야 밝혀졌다. 답은 바다 속에 있었다.
지구의 일종의 퍼즐이다. 유라시아판, 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태평양판, 아프리카판, 인도-호주판, 남극판 등 7개의 커다란 판상(tectonic plate)과 그보다 작은 여러 개의 판들로 이뤄져있다. 이 판들은 해저산맥과 해구를 경계로 나뉘어 있다. 지진파를 통해 바다 밑의 지각 형태를 관찰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우리는 이러한 판의 경계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 판의 경계 지역은 불안정하며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구라는 퍼즐이 보통의 퍼즐과 다른 점이라면 퍼즐 판 하나의 두께가 100km에 이른다는 점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이 100km 두께의 단단한 암석층 밑에는 힘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이기도 하는 ‘연약권’(asthenosphere)이 존재한다. 판들은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다. 판의 이동 속도는 대체로 1년에 10cm 이내지만 판마다 속도는 제각각이다.
호주 대륙이 속한 판은 현재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판이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사람이나 생물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호주는 매년 7cm씩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770만km2에 달하는 거대한 땅 덩어리니 그저 적도 방향으로 움찔한 정도다. 단, 움직임은 꾸준하다. 지난 1994년 이후 22년 동안 총 1.5m의 거리를 움직였다. 실제 위치와 GPS에 사용되는 위도와 경도 사이에 오차가 1.5m 가량 생기지만, 현재 GPS 시스템에는 대략 5~10m 오차가 있으니 실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호주 지구과학연구원은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지도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내년 초 지도를 갱신할 예정이다. 2020년에 예상되는 이동 좌표에 맞춘 데이터로 갱신하는 만큼 몇 년 간 오차를 감수해야 하지만 지금 지도보다는 차이가 덜하다. 이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1.5m의 오차는 현재는 대수롭지 않지만, 미래 자율자동차 시대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숫자다. 1.5m의 차이로 내 차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드넓은 호주의 경작지에선 자율 주행하는 트랙터가 농경지를 벗어나 가축의 우리를 침범할 수도 있다.
호주가 이렇게 북으로 계속 움직이면 어디로 가게 될까? 지금 추세대로라면 호주 대륙은 5천만년 뒤엔 중국 남동해안에 부딪치리라 예상된다. 학자들은 지구가 4억년에 한 번씩 초대륙(supercontinent)을 형성한다고 예상하는데, 호주와 유라시아 대륙의 만남을 새로운 초대륙 형성의 신호탄으로 본다. 이를 시작으로, 2억년 뒤엔 새로운 초대륙 시대가 열리리란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도 이 대륙 충돌의 격랑(激浪)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북상하는 호주 대륙 앞에는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가 있다. 이들과 일본 열도가 충돌하면 히말라야 산맥 보다 거대한 산맥이 만들어지고 그 뒤에 자리한 한반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후를 가진 땅이 될 것이다. 고비 사막과 같은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이 될 수 있다. 대륙 이동은 우주로 대피하지 않는 한 어떤 주인공도 살아남을 수 없는 거대한 재난 영화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재난의 속도는 인간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니까.
판의 이동은 지각 변동을 동반한다. 판이 움직이면서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강진이 일어나면서 판의 이동을 촉진하기도 한다. 지난 8월 이탈리아 중부 산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의 경우도 아프리카 판의 이동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아프리카 판은 매년 북쪽으로 5cm씩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네팔 지진 뒤엔 히말라야 산맥 일부가 1.5m 낮아지기도 했다.
인간의 과학은 지진이 어떻게, 왜, 언제 일어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한다. 어디에서 지진이 일어날지도 예측하지 못한다. 지진파를 이용해 간신히 지구 내부 구조를 엿보는 상태고, 판의 구조나 이동에 대한 지식도 걸음마 단계다. 인간의 과학은 지구 비밀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까?
지난 8월 26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지는 일본 도쿄대 지진연구소 기와무 미시다 교수와 도호쿠대 료타 타카시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표지로 실었다. 북대서양의 폭풍에서 기원한 지진파를 관측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이 지진파는 폭풍으로 생기는 바닷물의 진동이 해저의 대륙판에 부딪히면서 생겨난다. 이 관측으로 땅에서 발생하는 지진파 외에도 대기와 해양의 영향까지 총체적으로 지각 변동을 이해할 길이 열렸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판들이 자기 갈 길을 가는 동안 인간의 과학도 지구의 비밀을 알기 위해 달려갈 테다. 거대한 대륙의 움직임을 상상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경이를 선사한다. 세계 지도 퍼즐이 있다면 당장 꺼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맞춰보자. 나만의 초대륙을 만들며 대륙의 이동을 상상해보는 일도 멋지지 않을까.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파란만장한 인생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핵분열 연쇄반응’이 발견됐다. 원자의 핵이 분열하면서 강력한 애너지를 내기에, 당시 물리학자들은 이를 활용하면 지금까지 없던 위력의 (新)무기,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누가 먼저 이 무기를 손에 넣느냐에 따라 인류 역사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
- [과학향기 Story]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연구데이터
-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 맞춤형 인터넷 검색 결과, 유튜브에서 추천해주는 음악과 동영상 알고리즘부터 신약 개발이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까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은 모두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발전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연구데이터다. 연구데이터의 중요성 연구데이터는 말 그대로 과학기술 ...
-
- [과학향기 Story] 더 많은 공유로 더 나은 과학을, 오픈 사이언스
- 국제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지 약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전 세계는 경제 침체의 시기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실제 세계가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신재생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지체되는 한편, 온라인 공간은 챗GPT로 대표되는 초거대 인공지능(AI) 언어 모델 서비스가 빠르게 점유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중요한 기술...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여러분, 저 아직 살아있어요!” 보이저 1호의 편지
- [과학향기 for Kids] 영국에서 미국까지 ‘똥’으로 여행할 수 있을까?
- [과학향기 Story] 공전주기 동기화된 ‘완벽한 태양계’ 발견
- [과학향기 for Kids] 아름다운 천왕성의 고리, 모습을 드러내다!
- [과학향기 for Kids]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커튼 ‘오로라’
- [과학향기 for Kids] 일본에서 지진이 났다고? 우리도 조심해야 할까?
- 2024년은 청룡의 해, 신화와 과학으로 용의 기원 찾아 삼만 리
- ‘누나’가 만들어낸 희소성 만점 핑크 다이아몬드, 비결은 초대륙 충돌
- 북한이 쏘아올린 작은 ‘만리경-1호’ 궤도 진입 성공, 성능과 목적은?
- 달 남극 정복하려는 주요국들의 단두대 매치, 목적과 현황은?
....잘 보고 갑니다ㅡ^^
2016-09-23
답글 0
잘보았습니다---! 새로운것과기존에알고있었던것을다시느끼니감흥이새롭네요---! 고맙습니다.
2016-09-19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