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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0만 년 전, 지구 생물 대멸종의 순간은 어땠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351호 2019년 05월 13일왜 공룡은 갑자기 자취를 감췄을까. 66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 하나가 멕시코 유카탄반도 칙술루브를 강타해 공룡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 종이 멸종했다는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이다.
대멸종의 상황을 보여주는 화석 매장지 발굴
백악기 말에 발생한 이 대충돌의 결과로 이리듐이 풍부한 KT 경계층이 형성되었다. 이때 ‘K’는 백악기(1억 4500만 년 전 ~ 6500만 년 전)를 ‘T’는 제3기(6500만 년 전부터 200만 년 전)를 뜻한다. 지금까지는 공룡 화석이 KT 경계층이 아닌 적어도 3m 아래 지층에서만 발견되었다. 이 ‘3m 문제’는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고, 공룡의 시대가 소행성 충돌 이전, 즉 3m의 지층에 해당하는 시간 전부터 이미 저물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고생물학자도 다수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6600만 년 전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대규모 화석 매장지가 미국 노스다코타 주에서 발굴되어 고생물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화석 매장지에서는 나무 기둥, 호박이 잔뜩 엉겨 붙어있는 나무줄기와 바닷물고기인 철갑상어와 주철갑상어, 암모나이트, 그리고 육상 동물인 세라톱시아과의 공룡 뼈 일부가 다른 동물의 뼈, 이빨, 껍데기, 알이 함께 발견되었다.
화석 매장지는 노스다코다, 사우스다코다, 몬타나, 그리고 와이오밍을 가로질러 드러나는 ‘헬크리크 지층(Hell Creek Geological Formation)’에 위치한다. 미국 캔자스대학교 연구팀은 헬크리크 지층의 화석 매장지 발굴을 통해 지구 종말의 순간을 재구성했다.
소행성 충돌이 만든 재앙의 시간
칙술루브를 강타한 소행성은 그 충격으로 곧바로 증발해 땅의 성분과 뒤섞여 지구에서 달 사이 거리의 절반 정도 되는 높이로 솟구쳤다. 충돌지점에서부터 시작된 지진은 지금까지 관측된 그 어떤 지진보다도 강력했다. 또한 쓰나미보다 더 큰 세이시(seiche)가 일어났다.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 6분, 10분, 13분 후, 세이시가 미국 노스다코다 타니스 지역에 도착해 그 땅을 뒤흔들었고, 곧바로 하늘에서 마이크로텍타이트(microtektite)가 소나기처럼 내렸다.
작은 유리구슬처럼 생긴 마이크로텍타이트는 소행성 충돌로 갑자기 상승한 온도와 어마어마한 충격에 녹아버린 바위가 대기로 증발했다가 다시 천연유리의 형태로 식어 비처럼 내려 생긴다. 동위원소 연대 측정 결과 마이크로텍타이트의 나이는 6600만 년이었다.
세이시와 쓰나미가 지구 표면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 지구 생물은 거의 종말을 맞닥뜨렸다. 세상의 풍경은 훨씬 단순해졌다. 바닷물은 모조리 증발해버렸고 땅은 재로 뒤덮여 처참했다. 불타버린 숲은 까만 숯 기둥 밭으로 변했다.
먼지와 그을음이 하늘을 뒤덮어 태양 빛을 막으면서 광합성이 불가능해지자 대부분의 식생과 바다 플랑크톤이 소멸했다. 생명체가 사라진 지구의 산소 농도는 급격히 증가했고, 불길이 잦아들자 지구는 급격한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소행성 충돌과 함께 석회암이 증발하자 1조 톤의 이산화탄소와 100억 톤의 메탄, 그리고 10억 톤의 일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대기를 뒤덮은 화산재가 걷히자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지구 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생물은 조류와 곰팡이류, 그리고 쥐와 같이 크기가 작은 포유류였고 이후 급격히 번식해 포유류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금까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설과 캔자스대학교 연구팀이 새롭게 공개한 근거들을 종합해 만든 6600만 년 전 지구 생물 최후의 날의 모습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선명했다. 지구에 새겨진 크고 작은 흔적의 의미를 오랜 기간에 걸쳐 역추적해온 연구자들의 고충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발견이 우리를 새로운 사실로 이끌게 될지 기대된다.
글: 김희원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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