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동해에 다시 나타난 신라의 용?
<KISTI의 과학향기> 제80호 2004년 01월 14일
삼국유사의 기이편에 나오는 기록이다. 신라의 제 31대 신문대왕은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라는 절을 세웠다. 하루는 동해에 작은 산 하나가 떠서 감은사를 향해 떠 내려왔다. 그 산에는 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왕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임금의 공복(公服)에 두르던 옥으로 장식한 띠-를 받들어 왕에게 바쳤다. 왕이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해지기도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용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비유해 말씀 드리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쳐야만 소리가 나게 되므로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왕은 기뻐하며 오색 비단과 금과 옥을 용에게 주고, 대나무를 베어 바다에서 나왔다. 그 때 산과 용은 문득 없어지더니 보이지 않았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았으며, 가물 때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개이고 바람이 가라앉았으며, 거친 파도는 평온해졌다. 왕은 그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옛 기록에는 이밖에도 용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문무대왕은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었으며, 처용가로 잘 알려진 처용은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 중 하나이다. 수로부인이 용에게 납치되었을 때 백성들은 ‘해가(海歌)’라는 노래를 함께 불러 수로부인을 구해 냈다.
용에 관한 기록이 이처럼 많은 것은 우리나라가 오래 전부터 농경 문화권에 속해 왔다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용은 바다나 강, 연못, 늪 같은 물 속에 살며 비와 바람 같은 여러 가지 기상 현상을 관장한다는 신격화된 상상의 동물이다. 한 해의 풍흉이 기상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니 비와 구름을 관장하는 주체로서 용 신앙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신라 이래 2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이 같은 용의 출현에 관한 기록들은 신화나 전설처럼 그저 신비스럽게 꾸며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용의 발생설 중 하나인 ‘용권설(龍券說)’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용권이란 바다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바람을 말한다. 그 모습이 승천하는 용과 같다고 해서 ‘용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용권은 적란운에 의해 나타난다. 높이 십여 킬로미터의 거대한 탑처럼 보이는 구름인 적란운 속에서는 잠열(숨은열)에 의해 데워진 공기 때문에 강한 상승 기류가 일어난다. 이 때 적란운의 하층부에는 주변의 습한 공기를 빨아들이며 급격하게 소용돌이치는 용오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용오름 현상을 신격화하여 용을 상상하게 되었다는 것이 용권설의 요체이다.
천 년 전, 신라 사람들은 동해에서 솟구쳐 오르는 용오름을 호국용으로 다시 태어난 문무대왕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10월 3일, 동해의 울릉도에서 용오름이 관측되었다. 높이 600미터, 지름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용오름은 신령스런 몸을 뒤틀며 남동쪽으로 200미터를 이동한 뒤 사라졌다. 다사다난했던 2003년이 지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온갖 세파를 잠재울 만파식적의 은은한 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기대해 본다.(정창훈/ 과학칼럼니스트)
왕은 기뻐하며 오색 비단과 금과 옥을 용에게 주고, 대나무를 베어 바다에서 나왔다. 그 때 산과 용은 문득 없어지더니 보이지 않았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았으며, 가물 때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개이고 바람이 가라앉았으며, 거친 파도는 평온해졌다. 왕은 그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옛 기록에는 이밖에도 용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문무대왕은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었으며, 처용가로 잘 알려진 처용은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 중 하나이다. 수로부인이 용에게 납치되었을 때 백성들은 ‘해가(海歌)’라는 노래를 함께 불러 수로부인을 구해 냈다.
용에 관한 기록이 이처럼 많은 것은 우리나라가 오래 전부터 농경 문화권에 속해 왔다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용은 바다나 강, 연못, 늪 같은 물 속에 살며 비와 바람 같은 여러 가지 기상 현상을 관장한다는 신격화된 상상의 동물이다. 한 해의 풍흉이 기상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니 비와 구름을 관장하는 주체로서 용 신앙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신라 이래 2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이 같은 용의 출현에 관한 기록들은 신화나 전설처럼 그저 신비스럽게 꾸며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용의 발생설 중 하나인 ‘용권설(龍券說)’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용권이란 바다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바람을 말한다. 그 모습이 승천하는 용과 같다고 해서 ‘용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용권은 적란운에 의해 나타난다. 높이 십여 킬로미터의 거대한 탑처럼 보이는 구름인 적란운 속에서는 잠열(숨은열)에 의해 데워진 공기 때문에 강한 상승 기류가 일어난다. 이 때 적란운의 하층부에는 주변의 습한 공기를 빨아들이며 급격하게 소용돌이치는 용오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용오름 현상을 신격화하여 용을 상상하게 되었다는 것이 용권설의 요체이다.
천 년 전, 신라 사람들은 동해에서 솟구쳐 오르는 용오름을 호국용으로 다시 태어난 문무대왕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10월 3일, 동해의 울릉도에서 용오름이 관측되었다. 높이 600미터, 지름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용오름은 신령스런 몸을 뒤틀며 남동쪽으로 200미터를 이동한 뒤 사라졌다. 다사다난했던 2003년이 지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온갖 세파를 잠재울 만파식적의 은은한 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기대해 본다.(정창훈/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연구데이터
-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 맞춤형 인터넷 검색 결과, 유튜브에서 추천해주는 음악과 동영상 알고리즘부터 신약 개발이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까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은 모두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발전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연구데이터다. 연구데이터의 중요성 연구데이터는 말 그대로 과학기술 ...
-
-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파란만장한 인생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핵분열 연쇄반응’이 발견됐다. 원자의 핵이 분열하면서 강력한 애너지를 내기에, 당시 물리학자들은 이를 활용하면 지금까지 없던 위력의 (新)무기,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누가 먼저 이 무기를 손에 넣느냐에 따라 인류 역사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
- [과학향기 Story] 더 많은 공유로 더 나은 과학을, 오픈 사이언스
- 국제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지 약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전 세계는 경제 침체의 시기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실제 세계가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신재생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지체되는 한편, 온라인 공간은 챗GPT로 대표되는 초거대 인공지능(AI) 언어 모델 서비스가 빠르게 점유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중요한 기술...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여러분, 저 아직 살아있어요!” 보이저 1호의 편지
- [과학향기 for Kids] 영국에서 미국까지 ‘똥’으로 여행할 수 있을까?
- [과학향기 Story] 공전주기 동기화된 ‘완벽한 태양계’ 발견
- [과학향기 for Kids] 아름다운 천왕성의 고리, 모습을 드러내다!
- [과학향기 for Kids]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커튼 ‘오로라’
- [과학향기 for Kids] 일본에서 지진이 났다고? 우리도 조심해야 할까?
- 2024년은 청룡의 해, 신화와 과학으로 용의 기원 찾아 삼만 리
- ‘누나’가 만들어낸 희소성 만점 핑크 다이아몬드, 비결은 초대륙 충돌
- 북한이 쏘아올린 작은 ‘만리경-1호’ 궤도 진입 성공, 성능과 목적은?
- 닷새 천하로 끝난 ChatGPT 아버지 샘 올트먼의 해고 사태, 그 이유와 의의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것 처럼 재미있네요. 용오름을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요 ^^
2009-04-03
답글 0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
2009-04-01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