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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
<KISTI의 과학향기> 제806호 2008년 09월 03일
“내가 저 나이에 달리기에 맛 들였으면 어쩔 뻔했나? 불쌍한 청년! 나보다 최소한 20년은 더 달리고 살아야 하다니. 어쩌자고 저리 젊은 나이에 달리기를 몸에 댔단 말인가!”
시인 황인숙은 남영동 대로에서 멋들어지게 조깅하는 외국인 청년을 보고 이렇게 안타까워한다. 그녀 자신도 헬스클럽 다니느라 인생을 탕진한다는 런닝머신 매니아다. 달리기는 중독이라는 게다. 담배도, 술도, 마약도 아니고 ‘지루한’ 달리기에 중독이라니? 모르는 소리, 달리기가 바로 마약이다. 좀 달려봤다는 사람들은 안다. 달리기에 왜 중독되는지.
30분 이상 달리면 몸의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혹은 ‘러닝 하이’(running high)라고 한다. 이때에는 오래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짧게는 4분, 길면 30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이때의 의식 상태는 헤로인이나 모르핀 혹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고, 때로 오르가즘에 비교된다. 주로 달리기를 예로 들지만 수영, 사이클, 야구, 럭비, 축구, 스키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에서든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운동 중에 러너스 하이는 왜 오는 걸까? 과학자들이 러너스 하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인 아놀드 J 맨델이 1979년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그 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운동 시간과 강도, 방법 등에 대한 연구와 행복감의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일부 학자는 운동시에 증가하는 베타 엔돌핀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베타 엔돌핀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신경물질로 구조와 기능이 마약과 유사하다. 베타 엔돌핀은 운동시에 5배 이상 증가하는데, 그 효과는 일반 진통제의 수십 배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운동을 할 때 생기는 젖산 등 체내 피로물질과 관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보상작용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추측해왔다. 그러나 러너스 하이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고, 학자들 사이의 의견차가 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근 러너스 하이와 엔돌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뮌헨공과대학(TUM) 핵의학 헤닝 뵈커(Henning Boecker) 교수팀은 운동 중 생성되는 엔돌핀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했다. 뵈커 교수팀은 10명의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2시간 장거리달리기 전후에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으로 뇌를 조사했다.
교수팀은 뇌 속에서 진통물질 수용체와 결합하는 엔돌핀과 억제하는 방사성물질 18F디프레노르핀(‘18F’FDPN)을 사용했다. 뵈커 교수는 뇌 속에서 엔돌핀 생산량이 많아지면 주입한 억제제와 뇌 속의 엔돌핀이 직접 길항하기 때문에 18F디프레노르핀과 진통물질 수용체의 결합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2시간 정도 달리기 전과 후의 영상을 비교하자 18F디프레노르핀과 진통물질 수용체의 결합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장거리를 달리면 체내 진통물질의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
또한 이때 영향을 받은 뇌의 영역이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두엽과 변연계에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달리기를 한 뒤 행복감과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 역시 엔돌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뇌는 신체가 고통을 잊고 오랫동안 달리게 하기 위해서 엔돌핀을 분비하게 되는데, 도를 지나치면 이 엔돌핀이 주는 쾌감을 못 잊어 몸이 피곤하더라도 달리기를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장거리 달리기가 우울증을 줄이는 증거를 찾는 과학자들도 있다. 대뇌에서 생성되는 모노아민 가운데 특히 노르에피네프린이 결핍되면 우울한 기분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운동을 일정시간 지속하면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우울증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통증과 우울증을 달리기로 날려버릴 수 있다니, 평소 이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러너스 하이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힘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달려야 한다. 심장 박동수는 1분에 120회 이상은 되어야 한다. 보통은 30분 정도 달리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보자가 러너스 하이를 겨냥해 처음부터 무리하게 달리는 것은 금물이다.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자칫 마약에 빠지는 것처럼 러너스 하이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러너스 하이를 느껴본 사람은 그 상태를 느끼고 싶어 자칫 운동 중독에 빠질 수 있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불안해하거나 짜증을 내게 되고 무리하게 달리다가 인대가 손상되거나 근육이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러너스 하이는 오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들도 올림픽이나 대회 등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때는 러너스 하이를 결코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달리기에 몸을 맡길 때 찾아오는 매혹의 순간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시인 황인숙은 남영동 대로에서 멋들어지게 조깅하는 외국인 청년을 보고 이렇게 안타까워한다. 그녀 자신도 헬스클럽 다니느라 인생을 탕진한다는 런닝머신 매니아다. 달리기는 중독이라는 게다. 담배도, 술도, 마약도 아니고 ‘지루한’ 달리기에 중독이라니? 모르는 소리, 달리기가 바로 마약이다. 좀 달려봤다는 사람들은 안다. 달리기에 왜 중독되는지.
30분 이상 달리면 몸의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혹은 ‘러닝 하이’(running high)라고 한다. 이때에는 오래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짧게는 4분, 길면 30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이때의 의식 상태는 헤로인이나 모르핀 혹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고, 때로 오르가즘에 비교된다. 주로 달리기를 예로 들지만 수영, 사이클, 야구, 럭비, 축구, 스키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에서든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운동 중에 러너스 하이는 왜 오는 걸까? 과학자들이 러너스 하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인 아놀드 J 맨델이 1979년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그 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운동 시간과 강도, 방법 등에 대한 연구와 행복감의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일부 학자는 운동시에 증가하는 베타 엔돌핀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베타 엔돌핀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신경물질로 구조와 기능이 마약과 유사하다. 베타 엔돌핀은 운동시에 5배 이상 증가하는데, 그 효과는 일반 진통제의 수십 배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운동을 할 때 생기는 젖산 등 체내 피로물질과 관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보상작용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추측해왔다. 그러나 러너스 하이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고, 학자들 사이의 의견차가 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근 러너스 하이와 엔돌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뮌헨공과대학(TUM) 핵의학 헤닝 뵈커(Henning Boecker) 교수팀은 운동 중 생성되는 엔돌핀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했다. 뵈커 교수팀은 10명의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2시간 장거리달리기 전후에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으로 뇌를 조사했다.
교수팀은 뇌 속에서 진통물질 수용체와 결합하는 엔돌핀과 억제하는 방사성물질 18F디프레노르핀(‘18F’FDPN)을 사용했다. 뵈커 교수는 뇌 속에서 엔돌핀 생산량이 많아지면 주입한 억제제와 뇌 속의 엔돌핀이 직접 길항하기 때문에 18F디프레노르핀과 진통물질 수용체의 결합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2시간 정도 달리기 전과 후의 영상을 비교하자 18F디프레노르핀과 진통물질 수용체의 결합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장거리를 달리면 체내 진통물질의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
또한 이때 영향을 받은 뇌의 영역이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두엽과 변연계에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달리기를 한 뒤 행복감과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 역시 엔돌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뇌는 신체가 고통을 잊고 오랫동안 달리게 하기 위해서 엔돌핀을 분비하게 되는데, 도를 지나치면 이 엔돌핀이 주는 쾌감을 못 잊어 몸이 피곤하더라도 달리기를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장거리 달리기가 우울증을 줄이는 증거를 찾는 과학자들도 있다. 대뇌에서 생성되는 모노아민 가운데 특히 노르에피네프린이 결핍되면 우울한 기분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운동을 일정시간 지속하면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우울증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통증과 우울증을 달리기로 날려버릴 수 있다니, 평소 이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러너스 하이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힘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달려야 한다. 심장 박동수는 1분에 120회 이상은 되어야 한다. 보통은 30분 정도 달리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보자가 러너스 하이를 겨냥해 처음부터 무리하게 달리는 것은 금물이다.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자칫 마약에 빠지는 것처럼 러너스 하이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러너스 하이를 느껴본 사람은 그 상태를 느끼고 싶어 자칫 운동 중독에 빠질 수 있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불안해하거나 짜증을 내게 되고 무리하게 달리다가 인대가 손상되거나 근육이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러너스 하이는 오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들도 올림픽이나 대회 등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때는 러너스 하이를 결코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달리기에 몸을 맡길 때 찾아오는 매혹의 순간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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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엔돌핀으로 우울증을 치료할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면 좋겠군요. 달리기만 해도 자연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천연 몰핀이 생긴다니 말입니다. 뭐든 적당한게 좋은거지요 ^^
2009-04-13
답글 0
저도 예전에 마라톤을 취미로 할 때 느껴봤습니다. 러너스하이라는 만화를 읽고나서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려고 시작했는데, 중독될 위험이 있더군요.
2009-04-06
답글 0
Learners high!!! ^^ 재밌군요
2008-11-21
답글 0
약간 알고있는정보지만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 50분정도 달리기를 하고난후엔 오히려 기분이 갑자기 안좋아지던데... 엔돌핀이 더이상 분비되지않아서 그런건가요?
2008-09-08
답글 0
좋은 내용이네요! 러너스 하이, 왜 걷기 30분 하는데 안 느껴지나 했더니...
2008-09-05
답글 0
저는 매일 45분씩 걷기를 하는데 이경우에는 러너스하이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은데.......
2008-09-03
답글 0
신기하다,,.ㅎ 난 그냥 걷기 해야지..ㅎ
2008-09-03
답글 0
걷는 것이랑은 기본적인 접근 방식이 다른것 같습니다.
뛸 때, 일정의 심장박동수가 30분 이상 지속되면,
힘들어 질때, 느껴집니다.
한 번 뛰어 보심이..
2008-09-03
답글 0
저는 매일 45분씩 걷기를 하는데 이경우에는 러너스하이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은데.......
2008-09-03
답글 0
러너스 하이 .... 수준높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오는 쾌감도 아닐까요?
2008-09-03
답글 0
예전에 운동삼아 러닝을 했었는데... 약간의 중독으로 무릎 인대가 손상된것이 생각나네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적절히 조절 했을텐데요..^^;
2008-09-03
답글 0
힘들정도로 하셔야 됩니다..;
2008-09-03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