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소리를 내는 유성의 정체는?

<KISTI의 과학향기> 제95호   2004년 02월 18일
조선 10대 임금인 연산군은 본래 영명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생모 윤씨가 모함을 받아 폐비가 되고 사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수많은 선비들이 희생되는 ‘갑자사화(연산 10년)’를 일으킨다. 연산군은 연산 4년에도 무오사화를 일으켰는데, 한번 피를 보게 된 연산군은 이후로 임금의 신분을 잊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에 보다 못한 대사헌 성현 등이 연산 7년에 장문의 상소문을 올렸다.

“근일에 전지를 보니, 금년 정월 18일에 천변(天變)이 있어 구언을 하교하사 중외에 영을 내려 주문토록 하셨습니다. 삼가 『문헌통고』를 상고 하옵건대, ‘천구성(天狗星)이 땅에 떨어지면, 그 소리가 천둥과 같고 꿩들이 다 울게 되는데, 이는 천도가 편안하지 못한 까닭이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로부터 임금이 정치를 못하면 하늘에 큰 변괴가 일어난다는 것이 우리의 자연관이었다. 하늘이 임금의 잘못을 꾸짖고 올바른 정치를 펴도록 경고한다는 것이다. 해와 달이 사라지거나, 꼬리 달린 별이 나타나기도 하며, 별이 떨어지는 등의 현상은 옛 문헌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지구과학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천문 현상이지만, 옛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하늘의 변괴, 즉 천변이었던 것이다.



상소문에 나오는 ‘천구성(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이란 다름 아닌 별똥별, 즉 유성의 일종이다. 옛 사람들도 이것을 유성이라고 불렀는데, 천구성은 좀 더 특이한 유성 중 하나였다.『삼국유사』 혜공왕 2년(766년)의 기록에 따르면 천구성의 머리는 항아리처럼 생겼고, 꼬리는 3척 가량 되었으며, 빛은 활활 타는 불과 같았고, 천지가 또한 진동했다고 한다.



지구 주변의 우주 공간에는 지름 수 mm에서 수 km에 이르는 작은 천체들이 무수히 날아다니고 있는데, 이 작은 천체들이 지구의 인력에 끌려 떨어지면서 대기권에 불타는 것이 바로 유성이다. 시골 밤하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성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늘고 기다란 빛의 줄기이다. 그렇다면 항아리처럼 생겼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너무 과장된 표현이란 말인가? 또 천지가 진동했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유성 중에는 사라지기 전에 폭발하면서 급격히 밝아지는 것들이 있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는 금성보다 더 밝아지기도 하는 이런 유성을 특히 화구(火球)라고 한다. 화구는 보통의 유성과 달리 머리 쪽이 불룩한 몽둥이 모양의 빛 줄기로 보인다. 배가 불뚝한 항아리는 아니지만 꽃병에 비유할 정도는 되니, 천구성이란 다름 아닌 화구인 셈이다.



한편 천지가 진동했다는 것은 화구가 소리를 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화구는 어떻게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어떻게 소리를 들은 것일까?



17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화구가 내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의 경험 사례들을 수집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화구가 떨어지는 동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쉬익’ 하는 금속성의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화구에서 나온 빛과 소리가 거의 동시에 관측자에게 도달한 셈이다. 수십 km 상공의 화구에서 나온 빛은 수 천분의 1초이면 지상에 도달한다. 하지만 소리는 빛보다 느리므로 그 후 몇 분은 지나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 번개가 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천둥 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핼리는 화구의 소리는 단순한 ‘환청’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최근에 화구의 소리가 ‘전자음 효과(electrophonic effect)’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캐슬 대학의 물리학자 콜린 키이쓰에 따르면 유성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궤적에서는 가시 광선 뿐 아니라 주파수가 아주 낮은 전파, 즉 극저주파도 발생하는데 이 전파는 빛의 속도로 달려와 지표 근처의 물체(가는 철사나 솔잎, 가늘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가는 금속테 안경 등)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실제 키이쓰는 2001년 11월에 사자자리의 유성이 비처럼 쏟아져 내릴 때 금속테 안경을 쓰고 풀밭에 누워 화구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소리가 유성이 밤하늘을 가로 지름과 동시에 들렸음은 물론이다.



지난 1월 4일 하늘의 사분의 자리에 이어 8월 12일 페르세우스 자리, 12월 14일 쌍둥이 자리 등, 올해엔 유성이 1시간에 수천 개 내지 수만 개나 쏟아져 내린다는 유성우(雨)를 어느 해 보다 자주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예부터 유성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올해엔 가슴 속에 간직한 소원을 빌며 지상 최대의 우주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글: 정창훈/ 과학칼럼니스트, ‘과학 오디세이’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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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재미있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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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 평점   별 5점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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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경
  • 평점   별 5점

우와~ 그렇군요~ ^0^ 유성이 떨어 질때 소리가 전자음 효과 때문에 생긴다니.. 나중에 유성이 떨어 질땐 제 안경을 꼭 쓰고 보러 가야 겠군요..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원츄~♡

200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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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 평점   별 5점

안녕하세요^^
과학향기 운영자입니다.
글에 오류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무오사화(사림세력 탄압)는 연산 4년, 갑자사화(윤씨 폐비로 인한 사화)는 연산 10년에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생모 윤씨가 모함을 받아 폐비가 되고 사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수많은 선비들이 희생되는 ‘무오사화'->'갑자사화'(수정)를 일으킨다."로 바로 잡습니다.

이 같은 오류가 있어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과학향기가 되겠습니다.

2004-02-19

답글 0

김민정
  • 평점   별 5점

예전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렇게 옛 문헌에 나온 내용과 결부시킨 글은 처음 읽어보네요^^ 한결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이 되어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20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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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희
  • 평점   별 5점

"소리를 내는 유성의 정체는?"이란 제목부터 이글에 흥미를 느낄만했다..^^
그리고 내용도 체계적이고 이야기도 잘 이어지는것 같다
글구 옛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재 조명 한것같아서 더욱 괜찬았다..
그리고 이글의 끝을 장식하는 "올해엔 가슴 속에 간직한 소원을 빌며 지상 최대의 우주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글이 가장 좋은것 같다.. ^^

20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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