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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전통놀이 백전백승의 비법을 알려주마
<KISTI의 과학향기> 제1527호 2012년 01월 23일
태연과 사촌은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집에서 만났다. 이들은 결의에 가득찬 표정으로 뒷동산에 오른다. 일명 대머리 언덕으로 불리는 널찍한 산등성이는 누가 봐도 연날리기 최적의 장소다.
“자, 오늘은 반드시 지존을 가리기로 하자. 우리가 어찌어찌하다 동갑으로 태어났으나, 서열 없이 마구 이름을 부르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는 법! 그리하여 오늘 이 대머리 언덕에서 역사적인 서열정하기를 하고자 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태연과 사촌의 연이 동시에 하늘을 나른다. 이때 태연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제 밤늦도록 아빠에게 배운 과학적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촌, 난 과학적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너한테 도저히 질 수가 없네. 연실을 잡아당기면 왜 연이 높이 뜨는 줄 알아?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 때문일세. 유체의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반대로 속도가 감소하면 압력이 커진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
“잘난 척 하시기는. 그거랑 연날리기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무식한 인생 같으니라고~! 잘 보게. 연줄을 잡아당기면 연의 앞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네. 그렇게 되면 유체(공기)가 지나가는 단면적 길이가 연의 윗부분은 길고 연의 아랫부분은 짧아지게 되지. 당연히 길이가 긴 윗부분을 지나는 공기가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고, 속도가 빨라진 만큼 압력은 떨어지게 된다네. 이때 압력이 높은 아래쪽에서 낮은 위쪽으로 공기가 움직이면서 물체가 비행하도록 해주는 힘, 즉 ‘양력’이 생기는 것이지. 이러한 연유로 연줄을 앞으로 잡아당기면 연이 위로 쑥 올라가게 된다는 말씀이네.”
태연은 사촌 앞에서 얼레를 돌려 연실을 감는다. 아빠의 말처럼 연이 쑥~ 하고 솟아오른다. 완전 의기양양해진 태연은 이번엔 항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을 따라 연은 뒤로 밀려나는 힘, 즉 항력을 받게 되지. 그리고 항력을 받으면 연은 밑으로 내려간다네. 다시 말해 연을 당기면 양력에 의해 올라가고 연실을 풀면 항력에 의해 밑으로 내려간단 말씀이지. 연싸움에서 상대방의 연 실을 끊을 때도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네. 상대방의 연이 공중에 정지해 있을 때 내 연실을 그 위에 올려 건 다음, 실을 재빨리 풀어주면 내 연이 밑으로 쑥 내려가면서 상대방 연실을 끊게 되는 거… 악!!!”
태연이 연싸움의 승리비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순간, 태연의 연이 똑 끊어지면서 하늘로 훌훌 날아가 버린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이미 일격을 당한 것! 사촌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태연아, 과학도 좋지만 실전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이래봬도 난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과학자인 아빠한테 들은 대로 달달 외워서 원리를 설명한 건 참으로 가상하지만, 솔직히 공부도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하고. 이쯤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태연은 분노와 오기로 두 눈이 이글이글 탄다.
“흥! 원리도 모른 채 운 좋게 이긴 주제에 감히 나에게 오빠로 불리기 원하다니 가당치 않구나! 그럼 이번에는 수학적 원리로 가득한 윷놀이로 승부를 겨뤄보자꾸나!”
사촌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윷판과 윷을 꺼낸다. 태연은 머릿속으로 어젯밤 아빠가 해 준 얘기를 급히 떠올린다.
‘태연아, 윷짝의 윗면과 아랫면이 나올 확률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도가 나올 확률은 1/4, 개는 3/8, 걸은 1/4, 윷과 모는 1/16이야. 즉 ‘개-도·걸-윷·모’ 순으로 나온다는 거지. 그런데 윷짝은 정확한 반원 형태가 아니라 반원을 넘어 아래가 약간 잘려진 불룩한 모양이거든. 이런 형태적 특징을 고려하면 ‘걸-개-윷-도-모’ 순으로 윷짝이 많이 나온단다. 그러니까 윷판을 쓸 때 이런 확률을 생각해뒀다가 지름길로 가는 순간을 잘 포착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윷놀이를 할 수 있어. 전통놀이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과학에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니?’
태연은 마구 머리를 굴려 윷판을 써본다. 그런데 이 무슨 확률을 거스르는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오늘따라 나오기 힘들다는 도만 계속해서 나오고, 윷이나 모는 나와 줄 생각을 않는다. 결국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 돼 태연은 패배할 위기에 처한다. 바로 이때, 아빠가 태연과 사촌의 경합을 구경하기 위해 대머리 동산에 나타난다.
“어떻게 돼 가고 있냐? 오빠의 탄생이냐, 혹은 누나의 탄생이냐?”
“아빠! 내가 아빠 말만 믿고 전통놀이 결투를 신청한 게 잘못이었어요. 과학보다 실전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전통놀이 말고 몸무게나 얼굴너비 같은 걸로 서열을 정하는 게 낫다고 했잖아요. 몸무게로 치면 내가 그냥 누나도 아니고 큰누나인데 저렇게 비쩍 마른 녀석한테 오빠라고 해야 하다니, 이건 정말 악몽이야~ 설날의 악몽!!”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자, 오늘은 반드시 지존을 가리기로 하자. 우리가 어찌어찌하다 동갑으로 태어났으나, 서열 없이 마구 이름을 부르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는 법! 그리하여 오늘 이 대머리 언덕에서 역사적인 서열정하기를 하고자 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태연과 사촌의 연이 동시에 하늘을 나른다. 이때 태연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제 밤늦도록 아빠에게 배운 과학적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촌, 난 과학적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너한테 도저히 질 수가 없네. 연실을 잡아당기면 왜 연이 높이 뜨는 줄 알아?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 때문일세. 유체의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반대로 속도가 감소하면 압력이 커진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
“잘난 척 하시기는. 그거랑 연날리기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무식한 인생 같으니라고~! 잘 보게. 연줄을 잡아당기면 연의 앞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네. 그렇게 되면 유체(공기)가 지나가는 단면적 길이가 연의 윗부분은 길고 연의 아랫부분은 짧아지게 되지. 당연히 길이가 긴 윗부분을 지나는 공기가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고, 속도가 빨라진 만큼 압력은 떨어지게 된다네. 이때 압력이 높은 아래쪽에서 낮은 위쪽으로 공기가 움직이면서 물체가 비행하도록 해주는 힘, 즉 ‘양력’이 생기는 것이지. 이러한 연유로 연줄을 앞으로 잡아당기면 연이 위로 쑥 올라가게 된다는 말씀이네.”
태연은 사촌 앞에서 얼레를 돌려 연실을 감는다. 아빠의 말처럼 연이 쑥~ 하고 솟아오른다. 완전 의기양양해진 태연은 이번엔 항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을 따라 연은 뒤로 밀려나는 힘, 즉 항력을 받게 되지. 그리고 항력을 받으면 연은 밑으로 내려간다네. 다시 말해 연을 당기면 양력에 의해 올라가고 연실을 풀면 항력에 의해 밑으로 내려간단 말씀이지. 연싸움에서 상대방의 연 실을 끊을 때도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네. 상대방의 연이 공중에 정지해 있을 때 내 연실을 그 위에 올려 건 다음, 실을 재빨리 풀어주면 내 연이 밑으로 쑥 내려가면서 상대방 연실을 끊게 되는 거… 악!!!”
태연이 연싸움의 승리비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순간, 태연의 연이 똑 끊어지면서 하늘로 훌훌 날아가 버린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이미 일격을 당한 것! 사촌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태연아, 과학도 좋지만 실전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이래봬도 난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과학자인 아빠한테 들은 대로 달달 외워서 원리를 설명한 건 참으로 가상하지만, 솔직히 공부도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하고. 이쯤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태연은 분노와 오기로 두 눈이 이글이글 탄다.
“흥! 원리도 모른 채 운 좋게 이긴 주제에 감히 나에게 오빠로 불리기 원하다니 가당치 않구나! 그럼 이번에는 수학적 원리로 가득한 윷놀이로 승부를 겨뤄보자꾸나!”
사촌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윷판과 윷을 꺼낸다. 태연은 머릿속으로 어젯밤 아빠가 해 준 얘기를 급히 떠올린다.
‘태연아, 윷짝의 윗면과 아랫면이 나올 확률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도가 나올 확률은 1/4, 개는 3/8, 걸은 1/4, 윷과 모는 1/16이야. 즉 ‘개-도·걸-윷·모’ 순으로 나온다는 거지. 그런데 윷짝은 정확한 반원 형태가 아니라 반원을 넘어 아래가 약간 잘려진 불룩한 모양이거든. 이런 형태적 특징을 고려하면 ‘걸-개-윷-도-모’ 순으로 윷짝이 많이 나온단다. 그러니까 윷판을 쓸 때 이런 확률을 생각해뒀다가 지름길로 가는 순간을 잘 포착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윷놀이를 할 수 있어. 전통놀이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과학에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니?’
태연은 마구 머리를 굴려 윷판을 써본다. 그런데 이 무슨 확률을 거스르는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오늘따라 나오기 힘들다는 도만 계속해서 나오고, 윷이나 모는 나와 줄 생각을 않는다. 결국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 돼 태연은 패배할 위기에 처한다. 바로 이때, 아빠가 태연과 사촌의 경합을 구경하기 위해 대머리 동산에 나타난다.
“어떻게 돼 가고 있냐? 오빠의 탄생이냐, 혹은 누나의 탄생이냐?”
“아빠! 내가 아빠 말만 믿고 전통놀이 결투를 신청한 게 잘못이었어요. 과학보다 실전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전통놀이 말고 몸무게나 얼굴너비 같은 걸로 서열을 정하는 게 낫다고 했잖아요. 몸무게로 치면 내가 그냥 누나도 아니고 큰누나인데 저렇게 비쩍 마른 녀석한테 오빠라고 해야 하다니, 이건 정말 악몽이야~ 설날의 악몽!!”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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