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난 과학자 있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752호   2008년 04월 30일
최근 주말 저녁에 드라마 ‘대왕 세종’이 방영 중이다. 흔히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왕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세종 시대 조선의 과학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당시 장영실과 같은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사학자들은 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났던 과학기술자가 있다고 한다. 누굴까?

과학사학자들에 따르면 장영실이 노비출신 등 극적인 개인사 때문에 일반인에게 최고 인기 과학자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세종 시대 최고 과학자로 ‘이순지, 이천, 정인지’를,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이순지와 이천’을 꼽았다. 이 중 이천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 과학기술자다.

특이하게도 이천은 원래 학자가 아닌 ‘무인’ 출신이다. 그는 고려말 1376년에 태어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시절에 무과 급제해 10대 후반에 무인의 길에 들어섰다. 무인이던 그가 태종, 정종 때까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떻게 과학기술자로 나서게 됐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세종 때의 기록은 잘 남아 있다. 1418년 세종이 왕위에 등극하던 해에 이천은 공조 참판으로 재직하면서 왕실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만들었다. 당시 왕실에서 사용하던 제사 그릇인 제기는 쇠로 만들었는데, 이천이 만든 제기는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했다. 이 제기를 눈여겨본 세종은 곧바로 이천을 불렀다.

세종은 이천이 쇠를 다루는 천재적인 기술을 가진 것을 알아보고 기존의 활자를 개량하는 일을 맡겼다. ‘쇠를 떡 주무르듯’ 다루는 이천이었지만 활자 제작 기술은 처음이었고, 전혀 알지 못했다. 이에 이천은 김돈, 김빈, 장영실, 이세형, 정척, 이순지 등 당시 과학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공역을 관장하며 새 활자 개발을 위해 온갖 연구를 거듭했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조선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조선 태종 때 주자소를 세우고 청동으로 만든 금속활자 ‘계미자’(癸未字)를 제작했다. 하지만, 모양이 크고, 가지런하지 못하며, 주조가 거친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특히 활자를 고정하는 밀랍이 녹으면서 글자가 쏠리고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활자 개량에 나선지 2년 만인 1420년 새로운 활자 ‘경자자’(庚子字)가 만들어졌다. 이천은 밀랍 대신 녹지 않는 대나무를 끼워 넣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해 인쇄할 때 활자가 밀리지 않도록 했다. 그는 이를 개량하고 발전시켜 더 완벽해진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냈다.

당시 하루에 인쇄할 수 있는 최대 장수가 4장이던 활자 기술을 갑인자는 하루에 40장을 찍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갑인자는 경자자보다 모양이 좀 크고, 글자체가 바르고 깨끗한 필서체로 능률이 경자자보다 2배나 높아졌다. 현재 ‘갑인자’로 찍어 낸 ‘대학연의’와 같은 책은 15세기에 전 세계에서 제작된 인쇄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세종은 책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백성에게 전파하고자 금속활자에 관심을 뒀다.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 천문의기 제작의 총책임을 맡았던 과학기술자도 바로 이천이다. 그는 장영실과 함께 혼천의와 간의를 비롯한 일성정시의 등의 해시계를 제작했다. 간의와 앙부일구 등의 기기를 정인지와 정초가 설계하면 이를 최종적으로 만드는 일을 이천이 담당해 훌륭한 결과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세종이 궁에 설치한 천문대인 간의대는 당시 세계 최고의 천문대로 학계에서 평가받는데, 이 간의대를 건축한 이도 이천이다. 천문 관측 기기 제작에 대한 이천의 업적은 금속활자 업적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세종 시대 과학기술의 밑바탕이 된 도량형의 표준화도 그가 이룩한 중요 성과다. 그는 저울을 개량해 전국 관청에 나눠줬다. 이 저울은 전국 관청에서 세금을 부과할 때 등 다양하게 사용돼 저울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줄였다.

이천은 도성을 쌓는 건축술, 군선이나 화포 개량 같은 군사 분야, 하물며 악기 제조에까지 그의 기술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대마도를 정벌할 때에 사용하고자 선체가 크면서도 빨리 달릴 수 있는 쾌속선을, 물에 잠기는 부분이 썩지 않도록 판자와 판자를 이중으로 붙이는 방법인 갑조법을 개발했다. 평안도 절제사로 지내면서는 조선식 대형포인 조립식 총통완구를 독창적으로 개발했다. 또한, 박연과 더불어 금, 솔, 대쟁, 아쟁, 생, 우회 등 많은 악기를 만들고, 무희와 악공들의 관복을 제도화하는데도 앞장섰다.

이렇게 이천은 수많은 발명품 뒤에서 뛰어난 기술로 공을 세웠다. 그는 문종 1년인 1451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무인이면서 놀라운 기술력을 지녔던 천재적인 과학기술자 이천, 그는 ‘갑옷 입은 과학기술자’였다.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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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영
    • 평점   별 5점

    조선 세종대에 어진 임금님 모시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나라에 헌신해서 국운이 융성 발전하였고 당시의 조선왕조실록 세종년대를 상고하면 장영실보다 이 천께서 과학발전에 공헌하신점이 훨신 많은데 후세에서 장영실을 보다 앞세움은 사학자들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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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진
    • 평점   별 5점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그런데 이런 훌륭한 과학기술을 아낌없이 발휘할 기회와 지원을 해준 세종대왕님이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과학기술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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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란
    • 평점   별 5점

    조선시대 과학자하면 장영실이 떠오를정도로 대중적인데 그보다 더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은 분이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무인이면서 놀라운 기술력을 지녔던 천재적인 과학기술자 이천, 그는 ‘갑옷 입은 과학기술자’였다. ^^ 좋은 기사감사드립니다.

    20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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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헌
    • 평점   별 5점

    세종대왕 님 께서 그런 과학자 님들과 함께 했으므로 대단한 왕이 되어나 싶지 않네요.

    20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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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대
    • 평점   별 5점

    감춰진 인물, 아니 범인으로선 알수 없었던 인물을 매체를 통해 알게되 여러분들의 노고와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

    2008-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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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학성
    • 평점   별 5점

    옛 조상들이 과학이 발전해 있는데... 세월이 가면서 상대를 비하와 네거티브를
    지금까지 이어가면서 쇠퇴하여 중국과 일본에 국운이 좌우되어오다 미국의 승리로
    국가 다시 찾았으나 그 버릇이 현재에 이르러 앞으로의 국가가 대대로 이어가기 힘들것 같아보이는데 위정자들 제정신이 언제 돌아올지... 2차대전이 일본 승리로 끝났다면 지금 말과 글이 존재 했을까? 정객들 언제 제밥그릇 챙기기 그만둘까?

    200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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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덕
    • 평점   별 5점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는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유교가 들어오면서 글만을 중시하고 농-상-공 분야를 너무 천시하여 개발분야가 고사했는데, 그 영향은 지금도 큽니다, 기술분야를 더욱 계발하여야 하겠습니다,

    20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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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석
    • 평점   별 5점

    이런 내용은 드라마에서 다뤄 줘야 합니다. 흔히 사극은 옛날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만 다루고, 이야기의 흐름이 왕실 중심으로만 흘러 옛날 사람들은 권력 다툼만 한 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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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범식
    • 평점   별 5점

    우와 감탄밖에 안나오네요. 장영실말고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군요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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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영
    • 평점   별 5점

    저도 전적으로 김한석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드라마에서 시청율 위주로만 다룰게 아니라 이러한 부분까지도 다뤄서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릴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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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영진
    • 평점   별 5점

    저런 과학 기구들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사용되는 지도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여태껏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한 작동원리들은 한 번도 못 본것 같아요. 암튼,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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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 평점   별 4점

    오...멋진데요 저런분이 있으면 좀 널리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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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구
    • 평점   별 5점

    아.. 세종때 가장 뛰어난 과학자가 장영실인줄만 알았는데..그 말고도 나라에 공헌한 위대한 분들이 더 많았군요. 이순지,이천,정인지..외워야겠습니다.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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