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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직전에도 의식이 있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549호 2020년 08월 24일죽음에 임박했을 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모든 감각이 꺼져 어둠만 가득한 무가 되는 걸까? 간혹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구름 위에서 신적인 존재를 만났다고 하는 사람, 꽃과 나무가 가득한 길에서 산책을 했다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포옹하고 이야기를 했다는 사람 등 그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체험을 실제로 검증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회의적인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일어난다는 임사체험은 단지 약물이나 이산화탄소 과다, 산소 부족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뇌의 환각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실험 결과가 하나 발표됐다. 사망 직전에 의식불명 상태에서도 청각이 작동한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의식불명 환자도 들을 수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실제 의식 불명 환자를 대상으로 사망 직전에도 의식이 있는지, 감각이 있는지 실험했다. 실험에 참가한 열세 명의 환자들은 암환자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모두 가족들의 동의를 받았다. 연구진들은 암 말기 환자들이 의식이 있을 때와 의식 불명에 빠졌을 때 뇌파를 측정했다. 의식 불명에 빠졌을 때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은 이미 숨지거나 호전된 환자를 뺀 5명만 측정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렇게 측정한 데이터를 건강한 사람의 뇌파와 비교했다.
뇌파를 측정할 때는 환자에게 여러 가지 소리를 들려줬다. 일상에서 나는 각종 소음, 평소에 듣기 어려운 소리 등 총 5가지 패턴이었다. 그 결과 의식불명 환자가 소리를 들을 때 나타내는 뇌파는 건강한 사람이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뇌파와 비슷했다. 보통 소리의 높낮이에 변화가 생기거나 갑자기 소리의 패턴이 바꾸면 뇌 부위도 활성화되어 뇌파가 변하는 데, 의식불명인 환자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림 1. 위쪽 그래프가 의식 있는 사람이 소리를 들었을 때의 뇌 활동, 아래쪽 그래프가 의식불명 환자의 뇌활동이다. 출처: 사이언티픽 리포츠
죽기 직전에 의식 활동이 활발해진다?
보고에 따르면 심장정지 뒤 소생한 환자들의 약 20%가 빛을 보거나 영적 존재를 만나는 등 이른바 임사체험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뇌과학, 임상의학에서는 임사체험이 왜 발생하는지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니지만 과거 쥐를 이용한 연구에서 죽음의 과정 동안 뇌의 의식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2013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에서는 실험용 쥐 9마리의 뇌 여러 부위에 전극을 꽂고서 조금씩 약물을 투여해 심장정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후에 나타나는 쥐의 뇌 활동을 기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뇌파가 완전 소멸하기 20~30초 전에 뇌의 전 영역에서 감마파가 아주 강하게 검출된 것이다. 감마파는 인간의 경우에는 명상을 할 때나 의식적으로 집중할 때 발생하는 뇌파로 알려져 있다.
해당 연구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심장박동이 멈춘 후 뇌전도가 완전히 멈추는 상태까지의 과정을 4단계로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Cardiac arrest stage 1, CAS1, 약 4초 동안)에서 심장박동이 멈추고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중단된다. 두 번째 단계(Cardiac arrest stage 2, CAS2, 약 6초 동안)는 뇌전도 파형 크기가 감소하면서 ‘델타 블리프(delta blip)’라고 이름 붙인 4헤르츠(Hz) 정도의 큰 저주파 피크 파형이 나타난다.
세 번째 단계(Cardiac arrest stage 3, CAS3)는 20~30초가량 지속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아주 강한 감마파가 뇌의 전 영역에서 관찰된다. 네 번째 단계(Cardiac arrest stage 4)는 뇌파의 움직임이 완전 소멸한 상태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죽음을 맞는 뇌가 마지막 순간에 매우 높은 활성을 띠며 의식 활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림 2. 왼쪽에서 네 번째, CAS3이 감마 뇌파의 급격한 활성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PNAS
물론 소개한 두 가지 연구가 죽음의 과정에도 감각과 의식활동이 살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 처음에 소개한 연구는 피험자가 너무 적고 청각과 관련된 뇌파의 변화가 정말로 의식불명의 사람이 소리를 듣는다고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두 번째로 논의한 연구도 인간이 아니라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라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연구는 적어도 죽음 직전에는 곧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준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안타까운 순간에도,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고마웠는지, 평생 잊지 않겠다고 거듭거듭 말하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글: 이병호 과학 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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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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