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한국 과학의 선구자 장영실

<KISTI의 과학향기> 제122호   2004년 04월 21일
1400년 여름 조선의 어느 영남지방, 큰 가뭄으로 고을 백성들과 동래 현감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관청에 소속된 한 노비가 강에서 물을 끌어 올려 논에 물을 대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장치로 가뭄을 이겨낸 현감은 이 관노에게 상을 내렸다. 그 이후 세종대왕이 전국에 인재를 모으자 동래 현감은 이 관노를 추천해 궁으로 올려 보냈다. 궁에 입궐한 이 관노는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인정 받아 노비의 신분을 벗고 종3품의 벼슬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선시대 과학의 황금기라 불리는 세종대왕의 재위기간 동안 눈부신 업적을 남긴 관노가 바로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중국의 선진 문명을 보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맞는 독창적인 발명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발명품으로는 천체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혼천의, 자동 시보 장치인 자격루, 세계 최초로 강우 측정을 가능하게 했던 측우기,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한 수표, 그리고 기존 동활자의 단점을 보완한 금속활자인 갑인자 등이 있다.

이는 우리 고유의 과학 기술을 통해 제작한 독자적인 발명품으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영실이 발명한 측우기는 세계 최초로 발명된 것으로 우리나라 과학사상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벼농사를 국가 기반 산업으로 삼고 있던 조선에서는 측우기가 발명 되기 전에도 효과적인 벼농사를 위해 강우량 측정을 했다. 그 방법은 비가 내린 후 땅 속 몇 치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는지 조사를 해 강우량을 유추한 것인데, 이 방법은 토양의 성질에 따라 스며드는 양이 다르고 지역마다 측정하는 토양이 달라 정확한 조사가 어려웠다. 하지만 측우기의 발명으로 체계적인 강우량 측정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과학적인 벼농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1639년 이탈리아의 B. 가스텔리가 처음으로 측우기를 통해 강우량을 측정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프랑스가 1658년, 영국은 이보다 19년 늦은 1677년부터 본격적인 측정을 시작했으니 1442년 측우기를 통해 강우량을 측정한 우리나라는 이탈리아보다 200여년 앞서 과학적인 강우량을 측정한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장영실의 업적을 기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는 1991년부터 과학기술의 독창성, 기술적 중요성이 인정되는 제품에 매 주마다 ‘IR52 장영실상’을 수여 해 과학자들의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또한 과학 대중화 및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향후 제작될 10만원 지폐의 초상화에 장영실의 초상을 넣자라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어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인 장영실의 업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고 있다.



오늘 과학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를 빛낸 과학자들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과학향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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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 평점   별 2점

측우기를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ㅋㅋㅋ

2018-07-10

답글 0

이미란
  • 평점   별 5점

장영실 대단한 과학자죠 ^^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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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 평점   별 5점

제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가 바로 장영실입니다.
어렸을때 장영실 위인전은 수도 없이 읽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까지 책읽고 독후감 내라고 하면
이 책일고 냈으니깐 말이예여..^^

2004-04-28

답글 0

유창준
  • 평점   별 5점

과학의 날, 과학의 달에 장영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글의 말미에 10만원 지폐의 인물 초상을 장열실로 하는 것에 대하여 과학계, 발명계가 앞장서서 반드시 관철시겨야 하겠습니다.

200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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