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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노벨상이 탄생한다면?… 마이크로RNA
<KISTI의 과학향기> 제1119호 2010년 06월 14일
과학자들은 휴먼게놈 프로젝트에서 인류의 오랜 꿈인 무병장수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호르몬, 효소 등 각종 생명현상을 주관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단백질이고, 이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가 유전자인 만큼 인간DNA 염기서열만 밝히면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막상 2001년 2월 12일 인간게놈지도 초안이 공식 발표되자 생명과학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유전자수가 2만 4,000~4만 개에 불과하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꼬마선충(1만9,000개)이나 과실파리(1만 3,600개)보다 약간 많고, 쌀(3만 2,000~5만 6,000개)보다는 오히려 적은 숫자였다.
더 놀라운 것은 단백질을 만드는 DNA는 전체 게놈의 3%도 안 되고, 나머지 97~98%가 아무 기능이 없는 ‘쓰레기 DNA(junk DNA)’라는 사실이었다. 고등동물일수록 유전자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는 오랜 생물학적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생명현상에선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 못지않게 유전자가 ‘기능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능한다는 의미는 단백질을 만든다는 뜻이고, 이를 ‘발현’이라고 부른다.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면서 유전자와 단백질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유전자, 즉 RNA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중에서도 작은 RNA(small RNA) 분자의 일종인 ‘마이크로RNA(microRNA)’가 주목받는 연구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마이크로 RNA는 1993년 미국 하버드대 앰브로스 교수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에서 발생 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던 연구팀이 우연히 ‘작은 RNA’를 발견한 것. 하지만 당시만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01년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작은 RNA가 발견되자 학계에 작은 RNA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새로운 RNA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생명공학의 새로운 분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마이크로RNA가 생성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마이크로RNA는 커다란 전구체에서 필요 없는 뉴클레오
티드를 잘라낸 뒤 생성된다. 그림 출처 : 창의세상 홈페이지>
원래 RNA의 기능은 DNA와 단백질의 매개 역할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즉 세포 핵 안에서 mRNA(메신저 RNA)가 DNA를 그대로 찍어서 세포질에 있는 단백질 공장(리보솜)으로 가고, 이곳에서 단백질을 생산할 때 RNA를 거푸집 삼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로RNA는 기존 RNA와는 기능이 크게 다르다. 마이크로RNA는 mRNA 등과 결합해 유전자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변이 단백질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현상을 RNA 간섭(RNA interference)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RNA는 이를 통해 유전자들을 조절하고 세포의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이크로RNA가 말 그대로 크기가 매우 작은 유전자이지만 동식물 기관 형성, 생명체 탄생과 성장, 신호 전달, 면역, 신경계 발달, 사멸 등 생명 현상 전반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크로RNA의 간섭 기술을 이용하면 살아있는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킬 수 있다. 즉 사람과 동물의 RNA를 조작해 원치 않는 단백질이나 잘못된 단백질의 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기술은 배아 발생과 줄기세포 연구, 인슐린 조절 연구 등에 사용할 수 있어 새로운 난치병 치료법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도 마이크로RNA 연구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 김빛내리 교수가 이끌고 있는 마이크로RNA 창의연구단이 대표적이다. 2001년 ‘마이크로RNA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연구하던 김 교수는 한 가지 모델을 세워 이를 증명했다.
‘핵 속에서 DNA의 정보를 복사한 초기전사체가 마이크로 RNA의 초기 형태이고, 이것이 크기를 줄여 전구체(어떤 물질에 선행하는 물질)의 형태로 핵을 빠져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초기전사체가 전구체로 바뀌는데 관여하는 두 가지 효소(Drosha, DGCR8)를 밝혀내고 메커니즘도 규명했다.
이에 김 교수는 2001년부터 ‘네이처’와 ‘셀’ 등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저널에 잇달아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2007년부터 연구단을 꾸린 김 교수팀은 인간배아 줄기세포에 존재하는 마이크로RNA를 발견하고, 줄기세포에서 마이크로RNA 생성이 조절되는 메커니즘도 밝혀냈다.
이밖에도 김 교수팀은 문제가 생긴 세포에서 마이크로RNA가 세포를 죽게 만들어 암 세포가 되는 것을 막고, 위암 세포에서 발견된 많은 마이크로RNA는 암세포의 분열을 증가시킨다는 것도 알아냈다. 마이크로RNA가 암 발생과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밝히는 연구를 계속하는 김 교수팀은 앞으로 마이크로RNA를 사용해 발암 유전자를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트게놈 시대 세계 생명과학의 큰 흐름인 DNA와 단백질 연구에서는 선진국 연구를 따라가는 수준이었지만, 마이크로RNA이라는 새로운 물줄기에서만큼은 김 교수팀이 선전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러한 성과 때문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막상 2001년 2월 12일 인간게놈지도 초안이 공식 발표되자 생명과학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유전자수가 2만 4,000~4만 개에 불과하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꼬마선충(1만9,000개)이나 과실파리(1만 3,600개)보다 약간 많고, 쌀(3만 2,000~5만 6,000개)보다는 오히려 적은 숫자였다.
더 놀라운 것은 단백질을 만드는 DNA는 전체 게놈의 3%도 안 되고, 나머지 97~98%가 아무 기능이 없는 ‘쓰레기 DNA(junk DNA)’라는 사실이었다. 고등동물일수록 유전자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는 오랜 생물학적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생명현상에선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 못지않게 유전자가 ‘기능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능한다는 의미는 단백질을 만든다는 뜻이고, 이를 ‘발현’이라고 부른다.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면서 유전자와 단백질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유전자, 즉 RNA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중에서도 작은 RNA(small RNA) 분자의 일종인 ‘마이크로RNA(microRNA)’가 주목받는 연구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마이크로 RNA는 1993년 미국 하버드대 앰브로스 교수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에서 발생 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던 연구팀이 우연히 ‘작은 RNA’를 발견한 것. 하지만 당시만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01년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작은 RNA가 발견되자 학계에 작은 RNA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새로운 RNA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생명공학의 새로운 분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마이크로RNA가 생성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마이크로RNA는 커다란 전구체에서 필요 없는 뉴클레오
티드를 잘라낸 뒤 생성된다. 그림 출처 : 창의세상 홈페이지>
원래 RNA의 기능은 DNA와 단백질의 매개 역할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즉 세포 핵 안에서 mRNA(메신저 RNA)가 DNA를 그대로 찍어서 세포질에 있는 단백질 공장(리보솜)으로 가고, 이곳에서 단백질을 생산할 때 RNA를 거푸집 삼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로RNA는 기존 RNA와는 기능이 크게 다르다. 마이크로RNA는 mRNA 등과 결합해 유전자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변이 단백질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현상을 RNA 간섭(RNA interference)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RNA는 이를 통해 유전자들을 조절하고 세포의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이크로RNA가 말 그대로 크기가 매우 작은 유전자이지만 동식물 기관 형성, 생명체 탄생과 성장, 신호 전달, 면역, 신경계 발달, 사멸 등 생명 현상 전반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크로RNA의 간섭 기술을 이용하면 살아있는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킬 수 있다. 즉 사람과 동물의 RNA를 조작해 원치 않는 단백질이나 잘못된 단백질의 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기술은 배아 발생과 줄기세포 연구, 인슐린 조절 연구 등에 사용할 수 있어 새로운 난치병 치료법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도 마이크로RNA 연구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 김빛내리 교수가 이끌고 있는 마이크로RNA 창의연구단이 대표적이다. 2001년 ‘마이크로RNA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연구하던 김 교수는 한 가지 모델을 세워 이를 증명했다.
‘핵 속에서 DNA의 정보를 복사한 초기전사체가 마이크로 RNA의 초기 형태이고, 이것이 크기를 줄여 전구체(어떤 물질에 선행하는 물질)의 형태로 핵을 빠져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초기전사체가 전구체로 바뀌는데 관여하는 두 가지 효소(Drosha, DGCR8)를 밝혀내고 메커니즘도 규명했다.
이에 김 교수는 2001년부터 ‘네이처’와 ‘셀’ 등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저널에 잇달아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2007년부터 연구단을 꾸린 김 교수팀은 인간배아 줄기세포에 존재하는 마이크로RNA를 발견하고, 줄기세포에서 마이크로RNA 생성이 조절되는 메커니즘도 밝혀냈다.
이밖에도 김 교수팀은 문제가 생긴 세포에서 마이크로RNA가 세포를 죽게 만들어 암 세포가 되는 것을 막고, 위암 세포에서 발견된 많은 마이크로RNA는 암세포의 분열을 증가시킨다는 것도 알아냈다. 마이크로RNA가 암 발생과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밝히는 연구를 계속하는 김 교수팀은 앞으로 마이크로RNA를 사용해 발암 유전자를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트게놈 시대 세계 생명과학의 큰 흐름인 DNA와 단백질 연구에서는 선진국 연구를 따라가는 수준이었지만, 마이크로RNA이라는 새로운 물줄기에서만큼은 김 교수팀이 선전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러한 성과 때문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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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내리 교수... 저도 매체에서 본적이 있네요. 이러한 성과들이 얼른 결실을 맺어 한국과학의 발전은 물론 인류의 생활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줄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11-04-14
답글 0
항상 수고수고 하세요...~~!!! 좋은 소식 바라요..
2011-02-28
답글 0
마이크로 RNA를 잘 연구하면 세계적인 암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겠네요.
2011-02-23
답글 0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가 꼭 탄생하기를 기원합니다....퐈이팅 !!!!
2010-06-17
답글 0
허울뿐인 유전자들의 공백을 대체하는 마이크로 RNA... 정말 연구할 영역이 무궁 무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_<>
2010-06-15
답글 0
김빛내리 교수님은 얼마 전에 국가과학자에도 선정되셨던데, 정말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성과 많이 내셨으면 좋겠어요. 어디 인터뷰 보니까 RNA를 한글 키로 잘못 놓고 치면 꿈이 된다더군요. 멋진 꿈을 위해 주욱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2010-06-15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