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호수에 글씨를 쓴다 - 가능한거야?

<KISTI의 과학향기> 제496호   2006년 09월 11일
여기는 일산 호수공원. 호수 주변에 설치된 장치가 움직이면서 잔잔하던 수면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 만들어진 물결이 서서히 합쳐지면서 수면에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쓰인다. 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 신기한 장면에 탄성을 지른다. 과연 물 위에 글씨를 쓰는 것이 가능할까?

그동안 물을 마음대로 제어한다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상식을 깨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 오사카 대학의 시게루 나이토 교수와 미쓰이 조선의 아키시마 연구소 연구원들이 ‘아메바(AMOEBA, Advanced Multiple Organized Experimental Basin)’라는 장치로 수면에 글씨를 쓴 것이다. 아직은 조그만 풀에서 간단한 문자만 만드는 정도지만 곧 분수나 놀이공원 등에 활용될 예정이고 호수 위에서 여러 모양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메바는 직경 1.5m, 깊이 0.3m의 원형 물탱크에 50개의 파동 발생 장치가 달렸다. 비록 알파벳이나 간단한 한자를 15~20초 정도 잠시 나타내 보이는 정도지만 마술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다. 물 위에 글씨를 쓰는 이 놀라운 기계의 원리는 무엇일까?

기본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여러 개의 파동을 중첩시켜 합성파가 글자 모양이 되도록 조절한 것이다. 파동은 입자와 달리 한 위치에 여러 개의 파동이 동시에 존재하여 서로 보강되거나 상쇄된다. 아메바는 파동 발생기에서 만들어진 파동의 보강간섭과 상쇄간섭을 이용하여 글씨를 쓴다. 물론 정확한 글자 모양으로 파동을 만들려면 복잡한 수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파동을 적당히 합성시키면 문자 뿐 아니라 훨씬 복잡한 모양도 만들 수 있다. 푸리에 급수로 알려진 이 방법은 ‘아무리 복잡한 파동도 간단한 파동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푸리에 급수는 어떤 현상의 주기성을 밝혀내는데 상당히 강력한 도구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푸리에 급수는 매우 다양하게 이용된다. 먼저 간섭현상을 이용하면 소음도 없앨 수 있다. 예를 들어 여객기 밖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여객기 안은 소음을 크게 느낄 수 없다. 또 경비행기 조종사나 수동 굴착기 기사는 소음을 줄이는 특수한 헤드폰을 끼는 덕분에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능동소음제어(Active Noise Cantrol)라 불리는 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으로 비행기 엔진이나 굴착기에서 나는 소음과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위상이 반대인 소음을 발생시켜 소음을 없앤다. 즉 소음을 소음으로 없애는 것이다. 최근 출시되는 고급 차량에도 이러한 소음제거기가 부착되어 정숙한 주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푸리에 급수를 비주기 영역까지 확장시킨 ‘푸리에 변환’은 전파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고급 오디오 기기에 달린 LED 막대기는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주파수 별로 구분하여 세기를 보여 준 것이다. 이퀄라이저에서 보여주는 파동 모습은 주파수에 따라 파를 분리해 낸 것인데 이때 푸리에 수학이 사용된다. 주파수별로 파를 분리하면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음성인식에도 사용할 수 있다. 목소리는 지문과 같이 고유한 것이라 ‘성문’이라 부르는데 주파수 별로 나누어 비교하면 차이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 푸리에 변환을 좀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알고리즘인 ‘고속 푸리에 변환’이 없었다면 첨단 의료 장비인 CT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CT는 X선을 방출하는 스캐너를 환자 주변으로 360도 회전시키면서 신체 내부에 대한 단면 사진을 얻는다. X선 스캔에 의해 얻어지는 정보는 단지 신체 내부에 대한 밀도분포 함수인데, 이 함수에서 영상을 조합해 내는데 바로 푸리에 변환이 사용된다. 또한 현대 의학에 없어서는 안 될 자기공명영상(MRI)도 마찬가지로 푸리에 변환이 사용된다. 그리고 공학자들은 해안에 몰려오는 파도가 방파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바람이 건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푸리에 수학의 도움을 받는다. 기상학자들은 복잡한 기후의 변화를 연구할 때 푸리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푸리에 수학의 도움을 받는 분야가 너무 많다.

아메바는 푸리에 변환의 강력함을 보여준 한 예로 혹자는 푸리에 변환을 가장 아름다운 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푸리에 수학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세상이 파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푸리에 수학을 더 잘 이해하면 파도뿐만 아니라 모든 파동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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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
  • 평점   별 5점

수학이 이렇게 쓰이는 군요... 놀라워요 학교에선 이런건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계산하는 법만 알려주는데.. ㅠ.ㅠ

20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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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5점

푸리에 급수나 간섭현상 등의 용어는 어렵지만 조만간 일산호수공원 등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만들어 지는 것을 볼 수 있겠네요. 정말 대단한 과학입니다.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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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 평점   별 5점

아 역시 과학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네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200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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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자
  • 평점   별 5점

신기하네요. 물에 글씨를 쓰다니...
나중에는 공중에다가도 쓰려나?

200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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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숙사랑
  • 평점   별 5점

퓨리에 급수는 공학수학에서 나오지요... 주변 공대생 친구분들에게 살짝쿵 물어보시면 답변 해주실 겁니다. 세상이 파동으로 이루어졌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군요..

200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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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
  • 평점   별 5점

정말 대단한 쇼크..수학으로 파동의 글씨며 CT, MRI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초월...너무 잘 읽었습니다..근데 푸리에 수학이 대체 어떤 것인지 맛만 볼수 없을까요?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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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 평점   별 5점

와~ 정말 대단한 푸리에네요. ^.~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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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완
  • 평점   별 5점

기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과학향기 편집부로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네요.
꼭 연락부탁드립니다.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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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필금
  • 평점   별 5점

역시 과학의 향기야....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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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푸리에
  • 평점   별 5점

대단할 나름이군요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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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 평점   별 4점

어렵네요..푸리에 급수니 간섭현상이니..ㅋ말이 너무 어려워요~제가 이해하기에는...ㅋㅋ아무튼 신기했어요~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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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 평점   별 4점

매우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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