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황당 지구특공대 회의 : 대체에너지

<KISTI의 과학향기> 제681호   2007년 11월 16일
어두운 방이었다.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 창호지가 발린 작은 창문, 허리를 굽혀야 겨우 지나다닐만한 철문, 그리고 조그마한 원탁 하나. 방을 밝히는 조명은 원탁 한가운데 세워진 작은 촛불 하나뿐이었다. 촛불이 가늘게 일렁이며 원탁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그림자를 벽에 드리웠다. 유령처럼 너울대는 그림자는 총 네 개였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는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소.”
그림자1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중저음이 어울리는 풍만한 체구의 남자였다. 다른 그림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1은 만족하는 듯 웃으며 원탁을 세 번 두드렸다.

“지금부터 ‘대체에너지를 찾으라’는 주제로 제42회 지구특공대 회의를 시작하겠소. 이번 의장은 미천하지만 이 몸, ‘대’가 맡겠소. ‘공’은 불의의 사고로 참석하지 못 했으니 여러분의 너른 양해 바라오. 그럼, 지구를 구하기 위한 지구특공대 여러분의 고언을 들려주시기 바라오.”

묵직한 저음이 사라지자마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대’가 원탁을 한 번 두드리자 그게 신호인 듯 그림자2가 말을 쏟아냈다. 높고 빠른 목소리였다.

“‘공’이 무슨 사고를 당한 거죠?”
“미국에서 조력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한 부표 형태의 발전기를 개발했다는 소식은 들어봤을 거요. ‘공’은 실험 현장에 갔다가 그만 바다에 빠졌소. 수영을 못해서 허우적대다 부표에 머리를 부딪힌 게 치명상이라고 하오. 큰 상처는 아니지만 1주일간 입원해야 한다는군.”
“제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오늘 회의의 주제와 관계없는 말은 그만해요, ‘구’. 그렇게 말을 하고 싶으면 발표나 해보시죠.”

쉰 목소리의 남자가 속삭이듯 ‘구’의 말을 끊었다. ‘구’는 헛기침을 하며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내용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머쓱해진 구는 서류를 집어넣으며 목소리에 애써 힘을 실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동지들이 제출한 결과물인데요. 바닷물을 태우면 에너지가 발생한다는군요!
“호오? 그건 또 듣다듣다 처음 듣는 소리군요.”
“조사하다 만난 K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 말로는 자신들이 만든 무선주파 발생기로 바닷물을 태워서 소금을 빼내는 방법을 찾고 있었대요. 그런데 전파 때문에 바닷물의 산소와 수소 결합이 약해져서 수소가 계속 밖으로 나온다고 하는군요. 이 수소를 연료로 이용한다는 거죠!”
“어쩐지 거짓말 같은데….”
“아니에요. 20년 전만 해도 수소전지 자체가 거짓말 같은 얘기였지만 이젠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걸요. 수소를 이용하는 연료전지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개발 중이죠.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무인비행기용 초소형 수소액체연료 전지가 개발되기도 했죠. 또 2004년 일본 삿포로맥주와 히로시마대 연구팀은 미생물로 빵을 분해해 수소와 메탄을 만들어내는 공법을 개발했어요. 일반적인 메탄 발생용 발효통에 수소 공정도 함께 첨가해 실험한 결과 폐기용 빵 1kg으로 수소 100L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해요. 이 연구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즉 K 박사의 연구결과도 활용만 잘 한다면 실용화할 수 있다는 얘기에요.”

‘구’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끝맺은 뒤 좌중을 돌아봤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의장을 맡은 ‘대’ 뿐, 다른 이들은 자기 연구결과 발표 준비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구’는 “이 모임이 늘 이렇지 뭐”라고 중얼대며 어깨를 으쓱했다. 혀를 한 번 찬 ‘대’가 다시 원탁을 두드렸다.
“다들 집중해주시기 바라오. 이번엔 ‘특’의 발표를 들어보겠소.”

“별건 아니구요…. 그냥 발소리를 이용하는, 그 뭐시기냐.”
‘특’이 더듬대며 말을 꺼냈다. 쉰 목소리의 남자 ‘지’가 “말 좀 똑바로 해라”고 빈정대기 시작했다. 더욱 기어들어가는 ‘특’의 목소리에 ‘구’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의장이 원탁을 4번쯤 더 두드린 후에야 상황이 진정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미국 MIT 건축학과 대학원생들이 고안한 신선한 내용이에요. 그…사람들이 다니는 바닥에 압전체를 이용한 발전용 기기를 설치해서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1번 걸을 때마다 60W 전구 2개를 밝힐 정도의 전력이 생산된다고 하네요. 물론 1사람 분으로는 겨우 눈을 한 번 깜빡거릴 정도의 짧은 시간만 버틸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설치하면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전력량도 늘어나겠죠. 한꺼번에 2만8527보를 딛으면 1초 동안 기차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래요.”
“실현 가능한 얘기요?”
“이탈리아의 토리노 기차역에서 의자에 실리는 몸무게를 이용해 비슷한 실험을 했다고 해요. 2007년 한 재단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건설 부문’에 입상했다는 소식도 있어요. 대도시 좋다고 모인 인구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다른 에너지원을 투자하거나 오염이 발생하지 않으니 ‘꿩 먹고 알 먹기’ 아니겠어요.”

말을 더듬다가도 가끔 쓸데없이 심각해지는 ‘특’의 버릇이 또 나왔다. ‘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를 가리켰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탓에 또 아무도 보지 못했다. ‘대’는 “원탁 두드리는 힘도 어떻게 에너지로 못 바꾸나”라고 투덜대며 원탁을 세게 내리쳤다.

“다음은 ‘지’의 차례요. 발표하시오.”
미국의 한 엔지니어가 집 수영장에 인공태풍을 만들어 에너지를 생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인공태풍의 원심력으로 웬만한 발전소 1개분의 전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쉽게도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정보입니다.”
“그렇다면 소용없는 거 아닌가요? 제가 만난 한 박사님이 태풍을 연구하시는데….”
“잠깐, ‘구’.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요. 사실 태풍에너지는 제대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아주 괜찮은 대체에너지로 쓸 수 있습니다. 풍속이 초속 30m인 태풍 1개의 에너지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만개 분이죠. 이를 풍력에너지로 바꾼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피해를 최소화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죠.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태풍을 포함한 미개척에너지 분야 연구에 대한 지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의 발표가 끝나자 ‘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원탁을 3번 내리쳤다.
“알겠소. 인공태풍 얘기가 부족한 건 아쉽지만, 자료가 부족하다니 어쩔 수 없지요. 이로서 오늘 회의를 마치겠소. 각각 문서를 제출해주시오. 의견은 내가 정리해서 수정·보완할 부분을 지시하도록 하지요. 이번에 나온 대체에너지가 만약 상용화된다면 그 때 다시 문서를 제출해주시면 감사하겠소. 다들 수고 많았소.”

그저 의견만 모인 채 회의가 끝났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 발소리 시스템을 갖추면 얼마나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까’는 주제로 ‘구’와 개별 토론을 벌이던 ‘특’이 문득 손을 들었다.
“저…저어 의장님, 의장님은 의견을 아직 말씀하시지 아니한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오늘 나온 얘기를 다 정리해서 게시판에 올리는 것만 해도 벅차오. 알면서 뭘 그러는게요.”

‘대’는 한숨을 쉬며 원탁을 다시 두드렸다. 그 소리가 신호인 듯 촛불이 마지막 빛을 깜박이다 꺼졌다. 창문 새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지구특-대’는 몸을 일으켰다. 회의에 나온 정보들이 정말 상용화가 될 수 있을 지, 4명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인간과 지구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대책 없어 보이는 얘기가 정말로 새로운 대체에너지로 이어질 수도 모른다. 무엇보다 ‘뛰어난 실천방법’을 찾느라 백날 고민하느니, 황당한 일이라도 한 번 저지르는 게 백번 낫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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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5점

정말 기발한 생각들인데요. 바닷물을 태우거나 빵을 발효시켜 에너지를 만들고, 바닥의 압전체로 밟기만 해도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니, 집안에 인공태풍을 만들어 에너지를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200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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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정말 대체 에너지가 개발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로 가는 자동차나 보일러 등등...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의 환경도 좋아질테고 금전적인 부분도 많은 고민이 해결되겠지요?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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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
  • 평점   별 5점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올때 브레이크를 잡아서 멈추는데요 그러지 말고요

항공모함 보면 비행기 내릴때 끈으로 잡아서 미끄러지는 거리를 짧게 하잖아요 그런식으로 지하철 맨 뒤칸에 고리를 달고 바닥에 끈을 달아 놓고 그 끈 끝에 터빈을 달아서 회전시키면 발전이 되지 않을까요? 좀 위험한가요?

20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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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 평점   별 5점

우와~정말 기발한 생각인것 같아요.ㅋㅋ
대체에너지는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거 밖에 없는줄 알았는데.ㅋ
신기하네요.ㅋ

20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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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재석교
  • 평점   별 5점

무한도전이군요

20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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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 평점   별 5점

우리 주위에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들을 생각해볼수 있겠군요.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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