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지리여행] 중국 대륙의 절경중 단연 돋보이는 타이항 대협곡 지리여행

<KISTI의 과학향기> 제3014호   2017년 09월 27일
중국은 참으로 넓은 나라다. 비좁은 한반도, 그 중에서도 남쪽에 몰려 사는 입장에서는 간혹 시샘이 나기도 할 정도다. 그 규모답게 온갖 기후대를 반영한 다양한 암석들이 장엄한 경관을 빚고 있다. 한반도보다도 더 큰 땅덩어리인 신장이나 내몽골 자치구까지 갈 것도 없이, 태산, 황산, 장가계, 계림, 칠채산과 같은 명산들에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륙의 절경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라면 타이항(太行) 대협곡이다. 면적이 225㎢에 이르러서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고도 불린다. 그야말로 ‘대륙의 스케일’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는 압도적인 규모다. 타이항 대협곡은 중국의 동부 저지, 즉 중국순상지(shield)와 서부 산지의 경계부를 이루는 길이 600km의 타이항산맥 남부에 위치한다.(그림 1) 순상지와 만나는 타이항산맥 전면에는 단층이 지나가며 양자 간을 확실하게 구분 짓고 있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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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울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타이항산맥 남단의 타이항 대협곡(지도의 붉은 점). 타이항산맥(Taihang mountains)은 산시성과 허난성, 허베이성을 구분하는 산맥이다. 출처: 구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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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허난성 린저우의 서부에 위치한 타이항 산맥 전면부의 단층선 모습. 출처: 구글어스

타이항 대협곡은 융기 지형이다. 25억 년 전의 선캄브리아기 변성암으로 구성된 기반암 위에 덮인 8억 년 전의 사암층이 솟아오르면서 깎여나가 깊이 100m가 넘는 대협곡을 만들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다른 점은 협곡 한복판에 콜로라도강과 같은 대하천이 없다는 것. 그 대신 이곳에는 옛 방식을 이어가며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인적이 없는 황무지인 그랜드캐년과 달리 사람 냄새가 난다. 천계산과 구련산, 그리고 도화곡과 왕상암을 중심으로 타이항 대협곡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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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허난성에 위치한 구련산과 천계산, 도화곡과 왕상암. 출처: Baidu 지도
 
홍암 대협곡에서 보는 타이항 협곡의 과거사, 천계산과 구련산(허난성 신샹현 후이셴시 소재)
 
허난성 신샹현 지역 타이항 대협곡의 주인공은 천계산과 구련산이다. 하늘과 땅의 경계(天界山)라는 이름답게 입구에서 바라보는 산 모습부터 범상치 않다. 산을 둘러싼 운해가 내리는 비의 물안개와 함께 사뭇 선계(仙界)의 입구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지형적으로는 천계산 인근 계곡의 잘 발달된 하안단구가 눈에 띈다. 그만큼 다량의 토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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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천계산 입구(위)에 소개해 놓은 천계산의 명소(아래)

천계산에 오르려면 버스를 타고 길이 1,250m에 이르는 ‘괘벽공로’를 지나야 한다. 절벽 위 곤산 마을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지내던 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만으로 21년에 절벽을 걸쳐 뚫었다는 길이다. 태항산에 있는 9개의 절벽길 중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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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천계산의 괘벽공로. 1,250m의 길이를 지역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만으로 21년에 걸쳐 뚫었다고 한다.(위). 이 길을 낸 13명의 마을 청년들을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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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천계산 정상의 노두. 붉은 사암(red sandstone)은 지붕과 벽 등의 건축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아찔한 터널길을 지나 천계산 정상에 이르니 온통 붉은 사암이 반겨준다. 천계산을 일컬어 ‘홍암(紅岩) 대협곡’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이 선명하게 붉은 사암 때문이다. 사암 절벽 곳곳에서는 천계산의 역사가 기록된 단층이 여기저기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 위가 과거에는 수심이 얕은 잔잔한 퇴적 환경이었음을 암시하는 연흔(漣痕)과 사층리(斜層理)도 보인다. 진흙과 모래가 뚜렷이 구분된 퇴적층의 두께와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주차장 한편에서 암석들이 그대로 노출된 지형인 노두(露頭)만 바라보고 있어도 타이항 협곡의 과거사가 눈에 들어온다.
 
사암 절벽을 뒤로 하고 ‘빵차(面包車)’에 올라탄다. 빵차는 네모진 식빵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반쯤 우스개로 운행 중에 하도 빵빵거려서 빵차로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빵차는 곧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절벽길을 내달린다. 빵차가 향하는 곳은 해발 1,570m 천계산의 산허리 길인 운봉화랑(雲峰畵廊)이다. 구름과 봉우리가 빚어낸 그림이라는 이름답게, 7곳의 뷰포인트에서 수려한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게 풍경을 즐기며 도착한 천계산의 백미가 바로 100m가 넘는 수직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드는 천 길 낭떠러지다. 이렇게 험한 곳을 어떻게 관광지로 개발할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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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천계산 운봉화랑의 수직벽

천계산 다음에 들러본 곳은 구련산(九連山)이다. 아홉 개의 산봉우리가 연꽃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구련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선지협(仙脂峽) 절벽에 걸린 천호폭포(天壺瀑布)와 도교사원인 서련사(西蓮寺)가 있는 서련촌이다.
 
천호폭포로 가는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절벽에서 떨어진 집채만 한 낙석이 즐비하다. 험로를 지나고 빵차에서 내려 다시 200여m를 걸어가면 장대한 천호폭포를 만날 수 있다. 하늘의 주전자라는 이름답게 120m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이 인상적이다. 천호폭포는 선지협 끝자락에 걸려 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흐른 물이 폭포 윗부분을 V자 모양으로 깎아냈다. 어느 폭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식(水蝕)의 모습이지만 선 굵은 물줄기와 겹쳐 유독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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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구련산 천호폭포 하부에 쌓인 낙석들(위)과 낙차 130m의 천호폭포(아래)

선지협을 오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중국인들은 이런 절경에도 굳이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놓았다. 따지고 보면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라서 우리나라 같았으면 엘리베이터 설치를 두고 말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생뚱맞아 보이는 엘리베이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바로 절벽 위의 서련촌이다. 서련촌의 사람들은 험한 절벽에 막혀 다른 곳으로 갈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소금을 구하려 1년에 고작 한 두 번 아랫마을에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생긴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왕래도 편해지고 이전보다 부쩍 활기를 띄었다. 관광객에게는 마뜩찮을 수도 있는 엘리베이터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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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선지협과 서련촌을 잇는 엘리베이터(위)와 서련촌 입구의 모습(아래)

서련촌은 상상했던 것보다 크다. 잘 정비된 마을 모습에서 살짝 부촌의 기운마저 느껴질 뿐 아니라, 험한 지형 가운데 자리잡은 마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구련산 아홉 봉우리의 기가 모인다는 곳에 있는 서련사 때문이다. 서련사 중정에 깔린 정사각형 돌은 이곳이 중국의 사찰이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독특한 모습이다.

모래의 비밀, 도화곡과 왕상암(허난성 안양현 린저우시 소재)
 
천계산과 구련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달리면 도화곡(桃花谷)과 왕상암(王相岩)에 이른다. 이곳은 ‘린저우타이항대협곡’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엄동설한에도 복숭아 꽃이 피는 계곡이란 뜻을 지닌 도화곡은 2.5km 길이의 계곡 트래킹 코스다. 접근성이 좋고 걷기 편해 태항산 일대의 계곡 중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명성대로 경사가 완만해서 산책하기에는 딱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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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사암에 새겨진 ‘중국임주태항대협곡’이란 붉은 글씨가 인상적이다.

도화곡 주변에서는 두께 2cm 정도의 수평 퇴적층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사층리가 새겨진 절벽면을 볼 수 있다(사진 8). 층리면과 비스듬하게 지층이 나타나는 지형으로, 과거에 제법 강한 물의 흐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사층리를 이루고 있는 모래가 제법 곱다. 이런 곳을 보면 지질학자로서는 궁금증이 들기 마련이다. 모래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물의 흐름이 모래를 움직이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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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도화곡 비룡협의 사암층. 오른쪽 사진에서 호층을 이루고 있는 사층리를 볼 수 있다.
 
도화곡을 거슬러 올라 마을 입구에서 빵차를 타고 왕상암으로 향한다. 협곡 모양을 따라 굽이치며 왕상암으로 이어진 굽이굽이 절벽길인 환산선의 굴곡이 대단하다. 멀리 보이는 절벽 위로는 고산지대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옥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척박해 보이기만 한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냈다. 고산지대의 주민들은 사암을 잘게 잘라 지붕과 벽을 만들어 냈다(사진 9). 나선형 계단으로 낙차를 극복한 왕상암 산정부에서 내려오는 절벽길에서도 주민들의 지혜가 엿보인다(사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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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왕상암으로 이어지는 태항천로에 놓인 환산선(위)과 절벽 위 고산지대 가옥의 모습(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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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절리면을 따라 절벽길이 이어지고 있는 왕상암 경관.
 
퇴적경관의 진정한 가치
 
수많은 절경이 펼쳐진 타이항 대협곡은 한반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형이다. 한반도의 퇴적지형은 주로 석회암과 무연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안과 해남, 고흥 등지에 백악기 퇴적암층이 있긴 하나 타이항 대협곡처럼 거대한 퇴적지형은 볼 수 없다. 사실 타이항 대협곡은 워낙에 커서 비슷한 경관이 계속 펼쳐지는 모습에 감흥이 무뎌질 정도다. 이처럼 거대한 위용은 수억 년에 걸친 3단계의 융기와 하식작용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퇴적경관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땅의 솟구침, 지구의 거대한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힘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여행지가 어떤 암석으로 이뤄졌는지 꼭 살펴보고 가는 것이 좋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기에 여행의 가치가 배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 알아보는 김에 근처의 유적지도 찾아볼 것을 권한다. 타이항 대협곡이라면 은허 유적지를 찾아볼만 하다. 자연의 거대한 변화에 인간이 어떻게 적응했는지, 자연이 얼마나 장엄한지, 그리고 그런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또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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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 평점   별 4점

사진이 다소 흐려 실제보다 반감된 듯 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로 절경이겠네요....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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