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문제 해결하는 시대가 온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46호   2017년 11월 22일
올해 5월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는 세계 최강 바둑기사인 중국의 커제 9단에게 완승을 거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당시 중국의 유명 프로기사 5명이 연합팀을 구성해 알파고와 대결을 펼친 것.
 
그들 역시 패한 후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알파고의 기보를 보며 새로운 전략을 배웠으며 그를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바둑의 경지에 오른 인간이 기계에게 배웠다니 과연 놀랄 만한 일이 아닌가. 이 사건은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AI가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알파고의 새로운 버전인 ‘알파고 제로’가 바로 그 주인공. 알파고 제로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세돌과 맞붙은 ‘알파고 리’나 커제를 꺾은 ‘알파고 마스터’와 달리 인간의 자료나 지식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파고 제로 기보
사진1. 알파고 제로가 인간의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고 독학을 통해 스스로 바둑 실력을 늘려가는 모습. 알파고 리와 대결한 결과 100전 100승을 거두었다. 출처: nature
 
알파고 리의 경우 약 16만 건에 이르는 프로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바탕으로 하여 바둑을 배웠다. 한 수를 둘 때 10만 번씩 시뮬레이션 하는 방식의 알파고 리는 이세돌과 대결하기 전까지 1년간이나 학습해야 했다. 커제와 대결한 알파고 마스터는 학습시간을 1/3 수준으로 줄였지만 인간의 기보를 통해 학습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똑같았다.
 
그러나 알파고 제로는 인간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았다. 알파고 제로에게 주어진 것은 바둑 게임의 규칙뿐이었다. 즉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바둑을 스스로 독학한 것이다. 연구자들이 지켜본 결과, 알파고 제로도 처음에는 바둑 초보자들처럼 돌을 포위하는 방법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바둑을 익혀가는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다. 알파고 제로가 바둑 한 수를 두는 데는 걸리는 시간은 0.4초. 그 속도로 72시간 동안 490만 판을 두면서 독학한 뒤 알파고 리와 대결한 결과 100전 100승을 거두었다. 40일 동안 2900만 판을 둔 후 벌인 알파고 마스터와의 대결에서는 100전 89승 11패라는 성적을 남겼다.
 
알파고 제로의 학습 비결
 
알파고 제로의 학습 비결은 지난 10월 1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인간 지식 없이 바둑 정복하기(Mastering the Game of Go without Human Knowledge)’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그에 의하면 알파고 제로는 오직 강화학습의 방법론에만 의존해 바둑을 익혔다.
 
즉 스스로와의 대국을 반복하면서 승리할 때는 보상을 제공 받는 식이다. 바둑 규칙 외에는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 기보 데이터를 전혀 참고하지 않은 채 이기는 방법에 관한 데이터를 스스로 생성하며 수준을 높인 것이다.
 
알파고 제로에 붙은 제로(0)는 인간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에 비해 알파고 리(Lee)는 이세돌을 이긴 버전, 그리고 알파고 마스터는 바둑을 마스터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76개의 GPU(그래픽 연산 전용 프로세서)와 4개의 TPU(데이터 분석 및 딥러닝 연산 칩)를 장착한 알파고 리와 달리 단지 4개의 TPU만으로 구동하는 알파고 제로가 이처럼 놀라운 실력을 쌓은 비결은 인간의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알파고 개발 책임자인 데이비드 실버 박사는 “인간 지식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알파고 제로가 이전 버전들보다 오히려 강하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선입견이 배제되면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한 수’의 탄생이 가능하다. 알파고 마스터에게 새로운 전략을 배웠다는 중국의 프로기사 연합팀이 알파고 제로와 바둑을 두게 되면 더 경이로운 수를 배울 수도 있다는 의미다.
 
AI 개발 패러다임이 바뀐다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인간의 데이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AI의 잠재력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의 지식 기반으로 풀지 못한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알파고 제로 같은 AI에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AI 개발의 패러다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는 데이터의 축적이나 컴퓨팅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앞으로는 알고리즘에 훨씬 더 치중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 데이터가 전혀 없이 알고리즘만으로 인간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파고 제로가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은 ‘자동화 머신러닝(AutoML)’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자동화 머신러닝이란 기존 머신러닝(기계학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컴퓨터가 직접 새로운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AI가 다른 AI를 개발하는 셈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알고리즘 개발 과정 전체를 자동화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AI가 AI를 직접 새롭게 설계하고 개발하는 수준에까지 이를 경우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선입견이나 지식이 배재된 전혀 새로운 개념의 AI가 탄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AI를 개발하는 AI 분야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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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많은 학자들은 인간과 기계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을 능가할지의 여부가 아니라 인간이 AI와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협력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Shutterstock
 
중요한 것은 인간과 AI의 협력 방법
 
UC 버클리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랜덤 포리스트’라는 기법도 머신러닝 분야에서 화제다. 랜덤 포리스트란 간단히 말해서 한 가지 결과를 위해 여러 알고리즘을 조합하는 기술이다. 인간 집단의 평균 IQ보다 다양성이 문제 해결에 더 큰 도움을 주는 것처럼 기계에도 다양성이 허용되면 하나의 알고리즘으로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언제 올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특이점을 걱정하기보다는 이제 다중성(Multiplicity)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과 기계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작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을 능가할지의 여부가 아니라 인간이 AI와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협력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글: 이성규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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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피
  • 평점   별 5점

인공지는이 점점 발전 함에 따라 기대도 커지지만 거기에 따른 불안감도 뒤따라 오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7-12-22

답글 0

이정현
  • 평점   별 4점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면 이미 인간을 뛰어넘는거 아닌가요? 인간이 창조할 수 없는것을 로봇이 만들어 내는것이니...두렵네요.

2017-11-29

답글 0

시골쥐
  • 평점   별 5점

기사는 매우 잘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두렵죠....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세상의 도래가...

2017-11-22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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