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동물판 ‘부부의 세계’
<KISTI의 과학향기> 제3557호 2020년 07월 13일만약 우리가 바다표범과 인간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고, 바다표범의 결혼생활을 물어본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바다표범 씨,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바다표범 : 저로 말하자면 키는 2.2미터, 몸무게는 300kg의 참 볼만한 체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당당한 체구로 다른 수컷들과의 싸움에서 이겨 가장 모래가 곱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제 구역을 차지할 수 있었지요.
좋은 위치에 자기 구역을 만드는 게 아내를 많이 두는데 도움이 되나요?
바다표범 : 그거야 두말할 나위가 없죠. 인간들도 좋은 집, 좋은 차가 있으면 결혼상대로 인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바다표범도 마찬가지죠. 좋은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끼리 피 흘리며 싸우는 이유는 다 암컷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랍니다. 저는 그 싸움의 승자였지요.
부인이 8명이나 되는데, 다 어떻게 만나셨는지? 부인이 많다 보면 문제도 많을 것 같습니다. 부부싸움도 남들 8배로 하게 되나요? 싫다고 떠난 부인이라든가…?
바다표범 : 험, 듣기 곤란한 소리군요. 전 암컷들 꽁무니를 쫓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할 필요가 없었지요. 해변에 구역을 정하고 나면 암컷들이 저한테 반해서 자발적으로 제 하렘에 들어오는 겁니다. 간혹 건방지게 말을 듣지 않거나 도망치려는 암컷도 있지요. 그러나 제 육중한 지느러미로 곤장을 맞거나 거대한 몸통에 눌리면 딴 생각을 못하지요. 이곳은 100% 저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인간들은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고 있어 바다표범 씨의 결혼생활에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저희 인간들은 키나 몸무게는 바다표범들에 한참 왜소하지만, 몇 가지 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유전자감식을 통해 친자여부를 확인하는 건데요. 저희 인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친자 여부 확인을 의뢰한 열 건 중 셋은 실제로 친자가 아니더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완전해 보이는 결혼 관계도 속사정은 알 수 없다는….
바다표범 : 아니 그럼, 내 자식들이 다른 수컷들의 자식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 아니 이거야 원. 별 소리를 다 듣겠군!
연구에 따르면 아기 바다표범의 3분의 1이 하렘의 왕인 수컷 바다표범의 자손이 아니었다. 암컷들은 어두운 밤, 안개가 짙은 밤, 그리고 때로는 낮에 물속에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나눠왔던 것이다. 자신의 왕국이 완전무결하다는 건 수컷의 착각에 불과했다.
사진. 바다표범은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하렘을 이루는데 연구에 따르면 하렘의 왕 수컷의 자식 중에 다른 수컷의 자식도 섞여 있다. 출처: shutterstock
정자전쟁을 벌이는 동물들
체구가 크고 힘이 좋은 능력 있는 수컷들이 꼭 자손을 많이 퍼트리는 것은 아니다. 바다표범뿐 아니라 다른 동물과 곤충들 사이에서도 힘없고 작은 수컷들이 자기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갖은 방법과 노력을 기울인다.
몸집이 작은 연어 수컷들은 큰 수컷들이 교미를 할 때 주위를 빙빙 돌다 순식간에 사정을 하고 도망간다. 힘으로는 당할 방법이 없으니 도둑장가를 가는 것이다.
수컷 빈대들은 좀 더 엽기적인 일을 벌인다. 아프리카 빈대인 자일로카리스는 다른 수컷에게 정자를 사정한다. 일종의 동성 강간으로 보이는 이 행위의 목적 역시 번식에 있다. 다른 수컷에게 사정된 정자는 상대의 수정관 혹은 정관 속으로 이동해 살아 있다가, 이 수컷이 암컷과 교미할 때 본인의 정자와 함께 암컷에게 전달된다. 다른 수컷들을 자신의 정자를 전달하는 배달부로 사용하는 것이다. 암컷과 직접 교미하지 않아도 자신의 자손이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혼외성교를 막기 위한 동물들의 몸부림 역시 처절하다. 검은날개물잠자리와 난쟁이문어 그리고 일부 상어는 암컷과 교미하기 전 특수한 음경이나 촉수를 사용해 다른 수컷이 남긴 정액을 제거한 후 사정한다. 암컷이 여러 수컷과 교미할 경우, 맨 마지막에 교미한 수컷의 정자가 수정에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다.
그래서 자신의 정자가 수정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잦은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들도 있다. 일부 수컷들은 교미 후 분비물을 이용해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는 정조대 역할을 하는 교미마개를 만들기도 한다. 암컷들이 다른 수컷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노력들이다.
불륜, 패륜, 강간, 강제 낙태 등 어이없는 설정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들. 사실 알고 보면 동물세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인간도 동물이니 당연하다고 웃어 넘기기란 껄끄럽지만 말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연구데이터
-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 맞춤형 인터넷 검색 결과, 유튜브에서 추천해주는 음악과 동영상 알고리즘부터 신약 개발이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까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은 모두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발전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연구데이터다. 연구데이터의 중요성 연구데이터는 말 그대로 과학기술 ...
-
-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파란만장한 인생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핵분열 연쇄반응’이 발견됐다. 원자의 핵이 분열하면서 강력한 애너지를 내기에, 당시 물리학자들은 이를 활용하면 지금까지 없던 위력의 (新)무기,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누가 먼저 이 무기를 손에 넣느냐에 따라 인류 역사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
- [과학향기 Story] 더 많은 공유로 더 나은 과학을, 오픈 사이언스
- 국제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지 약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전 세계는 경제 침체의 시기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실제 세계가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신재생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지체되는 한편, 온라인 공간은 챗GPT로 대표되는 초거대 인공지능(AI) 언어 모델 서비스가 빠르게 점유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중요한 기술...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아침에 빵 먹으면 못생겨 보인다?
- [과학향기 Story] 블루베리는 원래 ‘파란색’이 아니다?!
- [과학향기 Story] 스트레스는 어떻게 ‘급똥’을 유발할까
- [과학향기 for Kids] 봄꽃, 점점 더 빨리 핀다?
- [과학향기 Story] 고주파 초음파로 살아난 정자, 난임 문제 해결할까
- [과학향기 for Kids] “오늘은 무슨 말썽을 부릴까” 동물의 왕국 속, 장난꾸러기를 찾아라!
- [과학향기 for Kids] “내 솜씨 어때” 125년 만에 밝혀진 소변 색의 비밀은?
- [과학향기 Story] 돌고래도 졸리면 바닷속에서 하품한다? 하품의 과학
- [과학향기 Story] 세균의 변신은 무죄? 미래 헬스케어 이끄는 ‘합성생물학’
- [과학향기 Story] 사람 세포로 만든 생체로봇 등장, 난치병 치료 새 길 열까
ScienceON 관련논문
공민왕과 자제위 홍륜
2021-02-13
답글 0
인간이 동물이듯이 모든동물의 세계는 일정 한계내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가졌다는걸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잘 봤습니다.
2020-07-13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