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AI 넘어설 수 있을까, 뇌세포로 만드는 바이오컴퓨팅

<KISTI의 과학향기> 제3853호   2023년 05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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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현제 전 세계 1위 슈퍼컴퓨터인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프론티어’. 프론티어는 인간의 뇌보다 백만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챗(Chat)GPT의 등장 이후 여전히 전 세계가 시끌시끌하다. 마치 인간이 답하는 것처럼, 심지어 어떤 질문에는 인간보다 더 훌륭한 답을 내놓아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자연스레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AI와 인간 지능의 차이는 명확하다. 인간은 AI보다 ‘지능(intelligence)’을 구현하는 데 드는 에너지와 데이터가 훨씬 적다. 그 차이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다. 
 
한 예로 2017년 이세돌 9단과 대결한 알파고(AlphaGo)는 기보(바둑 게임 기록) 16만 개를 학습했다. 사람이 하루에 5시간 동안 175년 이상 게임을 해야 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학습에 투입된 에너지는 4X1010J로, 건강한 성인이 10년 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맞먹는 수준이다. 
 
소위 인간의 뇌를 뛰어넘는다는 슈퍼컴퓨터도 에너지 면에서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 미국의 슈퍼컴퓨터 ‘프론티어(Frontier)’는 무게는 3,700kg에 달하며, 인간의 뇌보다 백만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세포를 연산에 활용하는 ‘바이오 컴퓨팅’이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 컴퓨팅은 50년 전에 등장한 용어지만, 당시에는 복잡도가 높은 신경세포도 배양하지 못할 때라 개념적으로만 존재했었다. 그러다 DNA나 단백질을 활용한 연산에 성공하면서 가능성이 열렸고, 최근 뇌 오가노이드 기술의 진보로 한 단계 도약했다. 
 
지난 2월, 토마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바이오 컴퓨팅의 구체적인 개발 구상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프론티어 인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인공지능에 이은 인간 지능

오가노이드는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물질이다.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할 수 있어 ‘미니 장기’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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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2주 동안 배양한 뇌 오가노이드. 분홍색으로 나타난 물질은 뉴런, 파란색은 세포의 핵이다. 출처: 미국 존스홉킨스대
 
하퉁 교수팀은 2012년부터 사람의 피부 세포를 재설계해서 개발한 줄기세포를 배양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왔다. 뇌 오가노이드는 기존 2차원 구조로 배양한 세포와 비교해 뇌세포 밀도가 1000배 가량 높다. 게다가 자발적인 전기생리학적 활성뿐만 아니라, 복잡한 뇌파 활동도 나타난다. 하퉁 교수는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학습 및 감각처리와 같은 인지 능력을 재현하는 ‘오가노이드 지능(OI, Orgarnoid Intelligence)’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학습 및 연산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연구팀인 호주의 바이오테크 기업 코티컬랩스는 작년 10월 뇌 오가노이드에 컴퓨터 아케이드 게임 ‘퐁(Pong)’을 학습시켰다. 인공지능은 게임 방법을 알아내는 데 90분이 걸린 반면, 뇌 오가노이드는 단 5분만에 습득했다. 
 
하지만 퐁은 탁구를 모방한 아주 단순한 게임으로, 오가노이드 지능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오가노이드 지능이 지금보다 똑똑해지려면 우선 오가노이드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 하퉁 교수는 현재 신경 세포  5만 개로 이뤄진 뇌 오가노이드의 규모를 1000만 개 이상까지 키울 계획이다. 오가노이드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하퉁 교수는 작년 8월 뇌 오가노이드의 신호를 수신하고 오가노이드에 신호를 전송하는 오가노이드용 EEG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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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뇌 오가노이드에서 발생한 신호를 기록하는 과정. 출처: 프론티어스 인 사이언스
 
하퉁 교수는 “작은 칩에 트랜지스터를 무한정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실리콘 기반의 컴퓨터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뇌는 1015개 지점을 통해 연결된 860~1,000억 개의 뉴런으로 2500T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 오가노이드 연구, 생명윤리 틀 마련해야 
 
뇌 오가노이드가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뇌 오가노이드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생명윤리적 논란이다. 뇌 오가노이드가 고통을 느낀다면 혹은 의식을 지니게 된다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연구가 가능할지 또는 뇌 오가노이드에 관한 소유권은 세포 기증자, 연구자 중 누구에게 있는 건지 등 수많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통 교수는 “우리 비전의 핵심은 오가노이드 지능을 윤리적이고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이라며 “개발 단계에서부터 윤리적 접근 방식을 확립하기 위해 처음부터 윤리학자와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오가노이드 지능이 인간의 의식이 아닌 학습과 인지, 컴퓨팅과 관련된 기능적 측면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 의식의 신경학적인 근거를 밝히는 연구가 오가노이드 지능에게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하통 교수팀은 앞으로 연구 진행 단계에 맞춰 마주하는 윤리적 문제들을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 윤리학자, 대중과 함께 토론하고 평가할 계획이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대에서 지적재산권을 연구하는 줄리안 킨들러러 교수는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 구조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고 있다”며 “윤리적 딜레마를 미리 해결하고, 실험들이 윤리적 경계 안에서 이뤄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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