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열대야 속 의문의 사망사고, 범인은 선풍기?

<KISTI의 과학향기> 제786호   2008년 07월 18일
폭염주의보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낮 기온이 35도를 우습게 넘고, 해가 져도 대지는 뜨거운 열기를 품어댔다. 박 형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의사인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더운 날씨에도 여전히 활기찬 얼굴의 친구가 나타났다.

“자네, 얼굴색이 좋지 않군. 더워서 잠을 못 잤나?”
“이런 열대야에 잠을 제대로 자는 사람이 있겠나. 하지만 내 고민은 그게 아니라네. 최근 원인 모를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어. 방문과 창문이 모두 닫혀 있고 침입한 흔적도 없는데 아침이면 죽은 사람들이 연일 발견되고 있지.”
“자연사 아닌가?”
“전날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으니 수긍하기 어렵다네.”
“그렇다면 살인이라고 보는 건가?”
“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현장에 있던 건 선풍기뿐이라네.”
“아니 그럼, 선풍기가 사람을 죽였다는 건가?”

사실 경찰 내부에서는 선풍기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선풍기 주의보를 내려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늘고 있었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면 산소 부족, 호흡곤란, 저체온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선풍기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지. 회전 기능이나 타이머를 사용하지 않고, 신체의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장시간 바람을 쐴 경우에 그 위험이 커진다는 걸세.”

박 형사는 의사인 친구의 견해가 궁금했다.

“글쎄,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된 장소라면 선풍기 때문이 아니라도 산소 부족이 생기겠지만, 선풍기가 산소부족을 유발할 만큼 공기 압력을 바꾸진 못할 걸세. 난로를 오래 켜둔다면 공기 중의 화학성분이 바꾸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선풍기 날개는 그저 바람을 일으키지 공기의 화학성분을 바꾸지는 못하지. 방문이나 창문이 닫혀서 공기의 흐름이 차단된다고 해도 방안의 산소량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질식하긴 어려워. 첫 번째 원인은 제외해도 좋을 것 같네.”

“그럼 호흡 곤란은 어떤가? 얼굴에 집중적으로 강력한 바람을 쐬면 산소가 희박해지고 의식이 점차 흐려지게 되고 결국 죽을 수도 있지 않겠나?”

사실 박 형사 본인도 잘 때는 선풍기를 절대 얼굴 쪽으로 두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선풍기 바람을 얼굴 쪽으로 고정해두고 자다가 가위에 눌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풍기를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신이 몽롱하고 숨을 내쉬는 것마저 곤란해 한참 뒤에야 쿨럭 기침을 하며 간신히 일어났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 뒤로는 선풍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선풍기 바람 때문에 호흡기 근처의 압력이 낮아져 공기를 들이쉬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로군. 하지만 이 논리가 성립되려면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사람들은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지. 달리는 자동차에서 얼굴을 내미는 경우도 마찬가지야. 선풍기 때문에 호흡곤란이 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셨다거나 몸에 병이 있고 허약한 사람이라면 그런 증상을 겪을 수도 있긴 있겠네.”

박 형사는 선풍기 때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저체온증에 대해 물어봤다.

“선풍기 바람이 저체온증을 유발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체온증이라. 우선 저체온증이 뭔지 설명해주지. 저체온증은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는 걸 말하는데, 사망에 이르려면 체온이 27~28도까지 내려가야 하지. 2~3도 정도 체온이 떨어지는 걸로는 죽지 않아. 8도에서 10도는 떨어져야 사망에 이르게 된다네. 사실 저체온증은 추운 겨울에도 잘 일어나지 않는 증상이네.”

하지만 박 형사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선풍기를 틀고 바람을 쐬면 몸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걸 좁고 밀폐된 방에서 밤새도록 틀어둔다면 체온이 많이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밤에는 신체 대사가 더뎌지고, 술을 마신 상태라면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

“물론 방이 밀폐되어 있고, 술을 많이 마신 상태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저체온증을 유발할 환경이 조성되니까. 하지만 창문과 방문을 닫았다고 방이 밀폐되었다고 보긴 어렵고, 밀폐되는 방은 실제로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야.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더운 방에서 자다가 사망했다면 폐색전증이나, 뇌혈관성 사고, 또는 부정맥 등 여러 가지 다른 원인이 작용했을 수 있어. 그것을 선풍기의 탓으로 돌리긴 어렵지 않겠나.”

의사는 박 형사에게 선풍기가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실내 온도를 측정해보자는 것이었다. 선풍기 바람이 실내 온도를 떨어뜨리는지 확인해보자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는 의사의 견해에 힘을 실어주었다. 선풍기는 시원하다는 느낌은 줘도 온도 자체를 낮추지는 못했다. 박 형사도 실험 결과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더운 날 선풍기를 틀면 더운 바람만 나오지. 선풍기가 자체적으로 차가운 바람을 내뿜지 못하니까 오래 틀어둔다고 체온을 많이 낮추기는 어렵겠군.”

“그래, 이제야 얘기가 좀 되는군. 오히려 좁은 방에서 선풍기를 오래 틀어두면, 선풍기가 과열되면서 실내 온도를 높이는 역할도 하게 될걸. 선풍기가 과열될 정도로 오래 틀어둔다면 저체온증보다는 선풍기 과열에 의한 화재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

박 형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제로 최근 1~2년간 선풍기 과열에 의한 사망사고도 몇 건 보고된 바 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네. 선풍기 바람이 닿는 피부 표면은 혈관이 수축해 체온이 조금 내려갈 수 있지만, 인체의 심부는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풍기 바람으로 심혈관계에 영향을 줄 정도로 체온이 떨어지기는 어려워. 인체는 놀라운 자기 체온 조절 기능을 갖고 있다네.”

박 형사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꾸 죽고, 유일하게 방에 있던 선풍기가 범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들은 왜 죽은 걸까?”

의사는 조용히 답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고, 선풍기는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었던 거네. 돌아보게나, 이런 날씨에 선풍기를 켜지 않고 자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간밤에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누구나 선풍기를 켜고 잤을 걸세, 죽은 사람 중 선풍기를 켜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않겠나.”

하지만 박 형사는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밤 사망한 사람의 방에 혼자 돌아가던 선풍기가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더울 때 밤새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나?”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하진 않는다네. 선풍기에는 타이머 기능이 있지 않나. 사람은 깊은 잠에 빠지기 전인 수면 유도기에 체온이 올라가는데 이 시간은 30분~1시간 사이라네. 그 시간 동안은 선풍기가 참 유용하지. 아까도 몇 번 말했지만 술을 마셨거나 병이 있는 허약한 사람이라면 선풍기는 독이 될 수 있어. 자네도 몸에 자신이 없다면 선풍기를 밤새 틀어놓지는 말게.”

형사는 선풍기 타이머를 맞추는 의사를 상상하며 속으로 빙긋이 웃었다.

‘문을 닫은 채로 선풍기를 밤새 틀어 놓고 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몸에 좋을 리는 없어. 감기라도 걸릴 수 있으니까. 저 친구 말대로 타이머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군. 참, 창문도 꼭 열어둬야지.’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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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지키는사람
  • 평점   별 5점

저는 선풍기를 발 쪽으로 하고 자고 시간을맞추는 장치가 있어 시간을 맞추고 자요......... ^^

200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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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 평점   별 5점

난.. 매일 켜놓고 자는데... 창문은 당연히 닫아놓고.. 아무런 문제 없음.. 왜냐하면, 자다가 알아서 돌아 누워 버리게 되더라구요. ㅡㅡ; 선풍기 안 켜놓고 자다가 깨면 오히려 더 한참 못자게 되어서 그냥 켜놓고 잡니다. (원체 엎드려 자 버릇해서리. ㅋ)

200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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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5점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속설을 과학적으로 풀어본 이야기군요. 하지만 여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자는 것은 무서워요.

20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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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zz
  • 평점   별 5점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을 오래 틀어놓어면 습기가 없어져 목과 코부분이 마르게 됩니다 마르게되면 피부끼리 닥게데면

200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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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zz
  • 평점   별 5점

선풍기가 실내공기를 건조하게하여 (팬현상)목 속이말라 피부끼리 붙게되어 호흡곤란이 옵니다 가습기을 틀어놓고 자면 괜찬습니다

200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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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   별 5점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오래틀어 놓어면 습기가 없어져 목과 코부분이 건조해져 목부분이 말라붙게 됩니다

200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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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호
  • 평점   별 3점

제가 당직근무 중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분을 보았는 데, 그 분은 나이도 젊고 평소 건강해 보이는 지인입니다.

200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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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jerry
  • 평점   별 5점

국내외 전문가들도 선풍기로 인한 직접 사망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대세입니다... 국내 학자중 어떤 분은 국내 주거환경이나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많이 활용하는 특수성 등을 얘기하시는 분도 있지만 신빙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저체온증도 에어컨이 훨씬 더 강력한데 이로 인한 사망사고도 술취하거나 어린이 노약자가 아니라면 없지요...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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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 평점   별 3점

자고 있더라도 무의식중에 자기 조절을 하게 되지 않나요? 에어콘 틀어놓고 잤다가도 추워서 깨어 끄고 자는 것도 그렇구요... 다만, 술에 만취한 상태처럼 몸이 스스로 자기 조절이 안되는 상황이 문제일 것 같은데요... ^^;;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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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수
  • 평점   별 5점

위험이 전혀 없다고는 할수 없을거 같네요. 저희 고장에 잘때 선풍기 틀어놓고 자서 얼굴 에 풍을 맞았다고 해야하나 하여튼 선풍기 바람 쐬는 쪽 얼굴면 하고 안쐬는쪽 얼굴면 의 온도차 같은것 때문인지 얼굴근육이 튀틀렸는지 입 돌아가고 얼굴표정도 좀 이상하게 됬었던 사람이 있는데 치료받으면서 정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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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jerry
  • 평점   별 5점

체온이 조금 떨어지는 것으로 자기 방어기전을 넘어서 쇼크가 되는게 가능한가요? 아, 물론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있거나 만취된 상태 등이 아닌 경우에 말이지요...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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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yblus2
  • 평점   별 3점

오토바이타고가는사람은 자기가 숨을 조절하겠지만 자고있는사람은 자기가 숨을 잘 쉬고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못하니까 대처를 못하지않아서 죽을수두있는거 아닌가요. 그둘은 확연히 다른부분이 있는데 비교하는건좀 무리인듯....?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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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 평점   별 5점

그러니까 여름철 선풍기 관련 사망원인을 요약해 보자면...1. 산소 부족 등 호흡 곤란 / 2. 저체온증 / 3. 지병(심장병, 심장마비 등)으로 인한 사망 - 이 중에서 가장 유력한 원인이 3번째 지병으로 인한 사망(선풍기와는 무관)이라는 말인거죠...

200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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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황혼
  • 평점   별 5점

선풍기 바이러스 때문..... 청소 좀 하고 삽시다.

200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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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hge
  • 평점   별 5점

외국에선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사례이며, 한국에서 만의 미신 이라는 말이 확실히 입증되었네요.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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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다
  • 평점   별 1점

선풍기 코방향으로 틀어놓고 잠을 자면 몸속의 이산화탄소 누적으로 인한 질식사망!!!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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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   별 5점

이런 건 어떤가요. ... 음주상태+밀폐된 공간+열대야+선풍기모터 열로 인한 지속적 온도 상승 = 탈수에 의한 사망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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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넘
  • 평점   별 5점

그렇네요... 차근차근 따져보면 답이 나오네요!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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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herr
  • 평점   별 5점

밀폐된 방안은 열역학적인 고립계이고, 외부로부터 (전기)에너지는 밤새 공급되어, fan의 공기 교란에 의한 공기 분자의 운동에너지 증가 즉 온도의 증가와 모터의 줄열 발생및 마찰열이 합쳐져서 방안 온도는 계속 고온으로 상승하고 허파는 그 더워지는 공기를 계속 호흡합니다. 그런데 fan의 바람은 계속 바람이 직접 쏘여지는 피부의 증발열을 빼앗아감으로써 피부체온을 정상보다 다소 떨어뜨립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인체는 자기 방어 기전을 넘어 쇼크에 빠지기 쉽습니다. 특히 노약자나 과음자 등은 신진대사가 원할하지 못하므로 더욱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자칫 생명을 잃기 쉬우니 창문이나 방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거나 타이머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은 열역학 제 1, 2법칙을 알면 모두 이해가능한 현상이지요.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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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민
  • 평점   별 5점

선풍기 사망사고에 대한 이론이 분분하군요. 위의 이야기도 일리는 있는것 같은데... 혼란스럽군요...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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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새
  • 평점   별 5점

밀폐공간이 되려면 락랜락통에 들어가지 않는 한, 일반적인 집의 방이 밀폐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문 꼭 닫는다고 공기 순환이 안되면, 한방에 여럿이 잠들면 다 산소 부족이 되겠죠. 문풍지라도 붙여 놓는 날엔...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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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다
  • 평점   별 5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네...선풍기를 얼굴방향으로 틀어놓고 잠을자면 폐속의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어려워져서 사망할수도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는데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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