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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술의 달인을 찾아라
<KISTI의 과학향기> 제747호 2008년 04월 18일
장구애비는 적에게 발견되면 몸을 뒤집어 죽은 체한다. 그러다 적이 사라지면 재빨리 일어나 도망친다. 사냥을 하는 동물들이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동물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존 비법을 갖고 있다.
적과 마주쳤을 때 동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그러나 도망이 쉬운 게 아니다. 모든 동물이 잽싼 것도 아니고,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애벌레는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고 약한 동물들이 살아남으려고 선택한 최상의 방법은 적의 눈에 띄지 않는 것. 자신의 모습이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 색깔이나 무늬를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는 위장술, 바로 보호색이다.
보호색 위장술의 대가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사는 장소에 따라 몸의 색깔을 그때그때 바꾼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녹색을 띠며 나뭇가지에 천연덕스럽게 매달려 있다. 천적인 새들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변신한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갈색을 띤다. 모래 배경과 서로 어울리는 변장이다.
카멜레온이 이렇듯 색깔 위장을 잘할 수 있는 것은 피부 안에 있는 특별한 색소 세포 때문이다. 이 색소 세포를 넓히거나 오므리며 세포의 크기를 변화시키면 색깔 위장이 가능해진다. 색소 세포가 작은 구슬 모양의 크기로 한쪽에 모이면 전체는 밝은 색이 되고, 나뭇가지 모양으로 넓어지면 전체가 어두운 색으로 바뀐다. 세포의 크기는 빛의 강약, 온도, 공포나 승리감 같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먹을 수 없는 나뭇가지나 새똥처럼 보이게 변하는 동물들의 ‘의태’ 위장술도 훌륭한 피신법이다. 자연계에는 기상천외할 정도의 의태를 하는 동물이 많다. 가짜 눈을 이용하는 의태 동물도 있다. 동물 대부분은 먹잇감을 잡을 때 머리 쪽을 공격한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먹잇감이 도망가기 어려울 뿐더러, 단번에 공격해서 숨통을 끊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고자 곤충 중에는 큰 눈동자 모양을 몸 뒷부분에 만들어 꼬리를 머리처럼 보이게 한다. 공격을 당해 꼬리가 좀 뜯겨나가더라도 목숨은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곤충이 올빼미나비다. 나무줄기에 앉아 있을 때, 올빼미나비의 날개의 무늬는 꼭 올빼미의 눈과 닮았다. 뒷부분의 날개를 눈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올빼미 눈과 얼마나 똑같은지 가짜 눈을 본 천적의 새들이 올빼미로 알고 그냥 지나친다. 눈은 동물의 몸 가운데에서도 가장 잘 띄는 부분이므로 날개의 눈을 감추면 유리하겠지만, 날개의 눈으로 오히려 적을 속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호랑나비의 위장술도 만만찮다. 호랑나비는 성장 단계에서 두 가지 위장술을 사용한다. 초기 단계의 애벌레는 교묘하게도 새똥인 척 위장함으로써 새의 눈을 피한다. 애벌레일 때나 다 자라서나 곤충들의 가장 큰 적은 새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마치 돌기가 난 것처럼 오톨도톨한 애벌레가 나뭇잎에 붙어 있는 모양은 영락없이 새똥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자기 똥을 먹는 새는 없을 테니 나름대로 현명한 방법이다. 애벌레를 탈피하여 번데기가 될 때까지는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의 색에 따라 색을 바꾼다. 나뭇잎 위에 있을 때에는 초록색을 띠지만, 낙엽이나 갈색의 나뭇가지 위에 있을 때는 갈색이 된다.
호랑나비가 나이에 따라 다른 위장술은 펼칠 수 있는 것은 호르몬이 변하기 때문이다. 가량 나이가 2령 3령 4령이 되면 검은색을 조절하던 호르몬이 초록색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바뀌거나, 돌기 구조를 촉진하던 호르몬이 다른 형태를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바뀌는 등 분비 호르몬이 변한다.
바다 생명체의 위장술도 육지 못지않다. 이 중 문어는 보호색과 의태를 모두 활용할 줄 아는 위장술의 달인이다. 문어는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통한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껍질의 색소 세포가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꾼다.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해안에 서식하는 ‘인도네시아 문어’(Octopus marginatus)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평상시 모습과 달리, 천적이 나타나면 바다 밑에 널려 있는 야자나무 열매인 코코넛처럼 위장해 걸어다닌다. 온몸이 흐물흐물한 무척추동물이 두 다리로 밑바닥을 걸으면서 여섯 개의 다리로는 공처럼 몸을 말아 마치 코코넛처럼 보이게 한다. 흐느적거리며 움직이지만, 도망치는 속도가 다리를 모두 사용하여 이동할 때보다 훨씬 빠르다. 문어의 ‘두 다리로 걷기’ 위장은 ‘무척추동물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상식을 깬 셈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기본 법칙과 달리 오히려 화려하거나 선명한 색을 과시하며 튀는 전략을 취하는 동물이 있다. 동물 대부분은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 반면 건드리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광대노린재처럼 녹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로 화려한 색을 띠는 동물이 있다. 이처럼 화려한 색의 동물들은 대부분 지독한 냄새를 풍기거나 독을 뿜는 종류여서 맛이 고약하다. 한번이라도 이런 동물을 먹어 본 적들은 다시는 이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화려한 색은 곧 독을 가졌음을 알리는 경고색인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위장술이 판치고 있는지 모른다. 살아남으려는 동물들의 위장술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적과 마주쳤을 때 동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그러나 도망이 쉬운 게 아니다. 모든 동물이 잽싼 것도 아니고,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애벌레는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고 약한 동물들이 살아남으려고 선택한 최상의 방법은 적의 눈에 띄지 않는 것. 자신의 모습이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 색깔이나 무늬를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는 위장술, 바로 보호색이다.
보호색 위장술의 대가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사는 장소에 따라 몸의 색깔을 그때그때 바꾼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녹색을 띠며 나뭇가지에 천연덕스럽게 매달려 있다. 천적인 새들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변신한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갈색을 띤다. 모래 배경과 서로 어울리는 변장이다.
카멜레온이 이렇듯 색깔 위장을 잘할 수 있는 것은 피부 안에 있는 특별한 색소 세포 때문이다. 이 색소 세포를 넓히거나 오므리며 세포의 크기를 변화시키면 색깔 위장이 가능해진다. 색소 세포가 작은 구슬 모양의 크기로 한쪽에 모이면 전체는 밝은 색이 되고, 나뭇가지 모양으로 넓어지면 전체가 어두운 색으로 바뀐다. 세포의 크기는 빛의 강약, 온도, 공포나 승리감 같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먹을 수 없는 나뭇가지나 새똥처럼 보이게 변하는 동물들의 ‘의태’ 위장술도 훌륭한 피신법이다. 자연계에는 기상천외할 정도의 의태를 하는 동물이 많다. 가짜 눈을 이용하는 의태 동물도 있다. 동물 대부분은 먹잇감을 잡을 때 머리 쪽을 공격한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먹잇감이 도망가기 어려울 뿐더러, 단번에 공격해서 숨통을 끊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고자 곤충 중에는 큰 눈동자 모양을 몸 뒷부분에 만들어 꼬리를 머리처럼 보이게 한다. 공격을 당해 꼬리가 좀 뜯겨나가더라도 목숨은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곤충이 올빼미나비다. 나무줄기에 앉아 있을 때, 올빼미나비의 날개의 무늬는 꼭 올빼미의 눈과 닮았다. 뒷부분의 날개를 눈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올빼미 눈과 얼마나 똑같은지 가짜 눈을 본 천적의 새들이 올빼미로 알고 그냥 지나친다. 눈은 동물의 몸 가운데에서도 가장 잘 띄는 부분이므로 날개의 눈을 감추면 유리하겠지만, 날개의 눈으로 오히려 적을 속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호랑나비의 위장술도 만만찮다. 호랑나비는 성장 단계에서 두 가지 위장술을 사용한다. 초기 단계의 애벌레는 교묘하게도 새똥인 척 위장함으로써 새의 눈을 피한다. 애벌레일 때나 다 자라서나 곤충들의 가장 큰 적은 새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마치 돌기가 난 것처럼 오톨도톨한 애벌레가 나뭇잎에 붙어 있는 모양은 영락없이 새똥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자기 똥을 먹는 새는 없을 테니 나름대로 현명한 방법이다. 애벌레를 탈피하여 번데기가 될 때까지는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의 색에 따라 색을 바꾼다. 나뭇잎 위에 있을 때에는 초록색을 띠지만, 낙엽이나 갈색의 나뭇가지 위에 있을 때는 갈색이 된다.
호랑나비가 나이에 따라 다른 위장술은 펼칠 수 있는 것은 호르몬이 변하기 때문이다. 가량 나이가 2령 3령 4령이 되면 검은색을 조절하던 호르몬이 초록색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바뀌거나, 돌기 구조를 촉진하던 호르몬이 다른 형태를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바뀌는 등 분비 호르몬이 변한다.
바다 생명체의 위장술도 육지 못지않다. 이 중 문어는 보호색과 의태를 모두 활용할 줄 아는 위장술의 달인이다. 문어는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통한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껍질의 색소 세포가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꾼다.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해안에 서식하는 ‘인도네시아 문어’(Octopus marginatus)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평상시 모습과 달리, 천적이 나타나면 바다 밑에 널려 있는 야자나무 열매인 코코넛처럼 위장해 걸어다닌다. 온몸이 흐물흐물한 무척추동물이 두 다리로 밑바닥을 걸으면서 여섯 개의 다리로는 공처럼 몸을 말아 마치 코코넛처럼 보이게 한다. 흐느적거리며 움직이지만, 도망치는 속도가 다리를 모두 사용하여 이동할 때보다 훨씬 빠르다. 문어의 ‘두 다리로 걷기’ 위장은 ‘무척추동물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상식을 깬 셈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기본 법칙과 달리 오히려 화려하거나 선명한 색을 과시하며 튀는 전략을 취하는 동물이 있다. 동물 대부분은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 반면 건드리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광대노린재처럼 녹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로 화려한 색을 띠는 동물이 있다. 이처럼 화려한 색의 동물들은 대부분 지독한 냄새를 풍기거나 독을 뿜는 종류여서 맛이 고약하다. 한번이라도 이런 동물을 먹어 본 적들은 다시는 이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화려한 색은 곧 독을 가졌음을 알리는 경고색인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위장술이 판치고 있는지 모른다. 살아남으려는 동물들의 위장술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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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색의 세계. 재미있네요. 인도네시아 문어의 위장술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는데 놀랍더군요. 호랑나비나 올빼미나비이야기는 새로운 내용이네요. 재미있습니다. 사진이 첨부되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2009-04-10
답글 0
가끔 텔레비젼에서도 이렇게 보호색으로 변하는 동물들을 보는데 정말 감쪽같더군요. 어떤게 나무이고 동물인지 구별할수 없을 정도더군요. 이게 전부 생존의 방식이겠지요.
2009-04-06
답글 0
맞아요. 맞아. 정말 재치 만점이셔...
2008-04-23
답글 0
제발 과학 얘기 하는 곳에선 쓸데없는 정치 얘기 꺼내지 맙시다... 그런건 정치 토론장 가서 하시던가.
2008-04-22
답글 0
이모씨라고 얼마전에 위장술로 대통령까지 된 분 계십니다.
그 분의 위장술은 하늘도 땅도 놀랐다죠
2008-04-19
답글 0
그냥 평범한 위장술이지만 등에 큰 반점이 찍힌 이유가 가짜눈으로 위장하여 피해를 덜보기 위한 것임은 처음알았습니다. 하긴 그걸보고 새들이 놀랄 이유가 없을텐데 말이죠. 좋은 정보 감사해요!
2008-04-18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