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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달은 몇 시?” 달 표준시 만들기 나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39호 2023년 03월 13일여행이나 출장으로 다른 나라에 가면 우리는 그 나라의 표준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현재 전 세계 공식 표준시는 1967년 정식 채택된 ‘협정 세계시(Universal Time Coordinated, UTC)’로, 국제 도량형 총회나 국제천문연맹 등이 모두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표준시 덕분에 우리는 해외여행을 가서도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락해도 괜찮은 시간인지를 판단할 수 있고, 다른 국가의 사업 동료와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성층권 바깥의 장소에 또 다른 표준시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달 표준시 이야기다. 지난해 과학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달 탐사였다. 미국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중국 ‘창어(嫦娥) 프로젝트’ 같은 국가 주도의 프로그램은 물론, 미국‧유럽 등 전통적인 우주 강국에서는 민간 기업까지 달 탐사에 뛰어들고 있다. 달 탐사 최신 동향과 함께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 우주국(ESA)이 달 표준시 제정을 위해 제시한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인류, 50년 만에 다시 달로
1969년, 미국은 세계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냈다. 소련과의 계속된 우주 전쟁에서 승기를 거머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화성 탐사에 집중하던 미국은 2017년 말 다시 달에 눈을 돌린다. 아폴로 계획의 제1 목적이 단순히 우주비행사를 달로 보내는 데 있었다면,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인류를 지속적으로 달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5년 말에 성별과 인종이 다른 우주비행사들을 달에 보내기 위한 아르테미스 3단계의 선행 작업으로 미국은 작년 말 무인 탐사선 ‘오리온’을 달 궤도로 쏘아 올렸다.
‘오리온’이 달에서 돌아온 날(2023년 12월 11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일본 민간 기업 ‘아이스페이스’가 개발한 달 착륙선 ‘하쿠토-R’가 발사됐다. 오는 4월 말 달 착륙선이 무사히 도착하면 일본은 러시아, 미국,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하게 된다. 민간 기업으로서는 최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12월 27일 첫 우주 탐사선 ‘다누리’가 달 임무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서 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우주 탐사 역량을 증명했다. 달 궤도선은 고해상도의 달 표면 영상과 자기장‧방사선 등을 관측하며, 10년 뒤로 예정된 한국형 달 착륙선의 착륙 후보지를 선정하는 데 쓰인다.
달 표준시로 탐사선 충돌 피하자
이처럼 향후 10년 동안 국가와 민간 단위에서 수십 개의 달 탐사 임무가 예정되어 있다. 전 세계 우주 기관 및 학술 단체 대표들은 2022년 11월 네덜란드에 있는 유럽우주국(ESA) 유럽우주연구기술센터에 모여 달의 현재 시각을 정의할 방법에 관한 권고안의 초안을 작성했다.
달은 지구보다 중력이 6분의 1가량 약하기 때문에, 지구의 관측자가 본 달의 시간은 지구의 것보다 빠르다. NASA는 24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달의 고유 시간이 지구보다 56마이크로초 빠를 것으로 추정하는데, 지구와의 차이는 달의 위치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달 탐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일까? 기존 프로젝트들은 기체에 탑재된 양방향 통신형 크로노미터(Chronometer)와 지구에 있는 대형 심우주 안테나를 통해 확보한 신호를 협정 세계시에 동기화하는 방법을 썼다. 달 고유의 시간보다 지구의 표준시를 빌려 자체적인 시간 척도를 운영한 것이다.
이 방법은 소수의 기체가 독립적으로 임무를 할 때는 효과적이지만 달에 있는 기체끼리는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 혼선이 생기기 쉽다. 달의 표면적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면적을 합친 것보다도 크지만 기지를 만들기에 좋은 ‘명당’은 한정되기 때문에, 이 구역에서 충돌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드는 달 표준시
달의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달 전용 위성 항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마치 지구에서 특정 물체의 정확한 위치를 추정할 때 미국의 GPS, 유럽의 갈릴레오 같은 위성 항법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ESA는 2022년 11월에 ‘문라이트’라는 이름의 달 위성 항법 프로젝트를, NASA는 지난 1월에 통신 중계 항법 시스템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다.
이러한 달 위성 항법 시스템은 위성 항법 신호를 수집해 달에서 위치를 찾는 실험을 먼저 거친다. 다음으로 원자시계를 탑재한 위성을 최소 3개 이상 달 주위로 쏜다. 셋 이상의 위성 신호가 달 표면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사용하면 정확한 위치를 삼각 측량할 수 있다. 도량형 학자들은 원자시계에서 나온 신호들을 합산해 달의 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본다. 혹은 이 출력값들을 지구의 협정 세계시와 맞추어 조정할 수도 있다. 전자가 달에서 독립적으로 설정된 시간이라면 후자는 지구와 동기화한 시간이다.
기존 달 탐사 프로그램이 독자적으로 쓴 시간 기준이나 지금 국제 천문 기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하려는 달 표준시 ‘초안’처럼, 시간을 표준화하는 일은 자연적인 조건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표준화의 여정은 달 탐사에 관련된 사람들이 공식화될 표준시를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관련 있다. 38만 km 떨어진 곳에서 기체를 제어할 과학자들에게 최적화된 형태와, 몇 년 뒤 반세기의 세월을 넘어 달에 도착할 우주비행사들이 현장 임무를 수행하기에 좋은 형태가 같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하는 여러 사람의 예측처럼, 달 표준시의 완성은 도량형의 문제라기보다 관습에 달린 것일지 모른다.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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