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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톤을 2초 만에 띄워볼까??
<KISTI의 과학향기> 제745호 2008년 04월 14일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충분한 양력을 만들 수 있는 활주로가 필요하다. 엔진이 내는 추진력으로 중력을 이기기 위한 거리다. 그런데 아무리 힘 센 엔진을 달아도 땅을 박차고 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비교적 소형 전투기인 F-16이 이륙할 때에도 400m가 넘는 활주로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웬일인지 덩치가 비슷한 F-18은 항공모함 위에서 불과 수십 미터만 달리면 날아오른다. 무엇 때문일까.
바로 ‘캐터펄트’라고 불리는 사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장치는 항공모함 위의 비행기, 즉 함재기를 ‘초고속 썰매’에 태워 이륙할 때까지 가속한다.활주 거리가 짧아도 함재기가 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최근 미군이 사출기의 대표적 모델이던 증기 추진식 사출기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증기 사출기는 지난 반세기 동안 최첨단 군사과학의 결정체인 항공모함을 지켜온 기술이다.
항공모함이 처음 등장했을 때 함재기는 상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륙했다. 엔진 출력을 최대한 높인 함재기의 뒷덜미를 붙잡았다가 순간적으로 놓는 방식이었다. 항공모함이 항해하는 속도와 이 때 생기는 맞바람이 함재기의 이륙을 도와주는 힘의 전부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좀 더 효과적으로 함재기를 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함재기의 이륙을 보조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덩치와 무장 탑재력을 한층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출기가 등장한 건 이 같은 요구가 폭발적으로 제기된 제2차 세계대전이 계기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해군을 중심으로 본격 보급된 사출기는 주로 화약이나 압축공기를 뒤로 뿜었다. 함재기의 엔진 외에 다른 보조 동력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항공모함 운용의 폭을 넓힌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출기의 힘을 빌린 함재기는 사력을 다해 이륙해야 했던 기존 함재기보다 연료소모도 줄이고 더 안전한 환경에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종전 뒤 공중전의 주력이 폭격기에서 소형 전투기로 바뀌면서 사출기의 역할은 더욱 늘어났다. 함재기에 탑재하는 폭탄의 수와 종류가 많아졌고 공중전의 중심이 기관총에서 미사일로 바뀌면서 이런 중무장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항공모함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함재기는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이륙 도우미’의 역할이 절실해졌다.
증기 추진식 사출기는 이륙 도우미의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지난 반 세기 동안 온갖 첨단 기술이 들어온 항공모함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실제로 미군 주력 항공모함에 설치된 ‘C-13’이라는 증기 추진식 사출기 모델은 무게 35톤의 함재기를 76m 밀어내는 동안 시속 256㎞까지 가속한다. 2톤짜리 고급 승용차를 2400m 날려 보낼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힘이다. 이 같이 놀라운 성능 탓에 낮에는 37초, 밤에는 1분 간격으로 함재기를 발진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함재기를 밀어내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미군은 차세대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에 ‘레일건 사출 방식’이라고 불리는 전자기식 사출기를 적용키로 했다. 증기를 통해 물리적인 작용-반작용 원리를 이용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전자기력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전자기식 사출기의 원리는 이렇다. 이륙용 갑판 위에 전자석을 깐 다음 전류를 흘린다. 이 때 발생하는 전자기력은 함재기를 공중에 살짝 띄우는 동력이다.자기부상열차에서 실용화된 기술이다. 사출기는 전진하는 데에서도 전자기 원리를 활용한다. 같은 극끼리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 끌어당기는 힘이 그것이다. 증기식 사출기가 공기가 꽉 찬 풍선을 놓았을 때 풍선이 앞으로 날아가는 원리를 이용한다면 전자기식은 이보다 진보된 기술적 개념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자기식 사출기를 쓰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아지는 걸까. 우선 전자기식 사출기는 증기를 내뿜지 않기 때문에 거대한 보일러가 필요 없다. 좀 더 가벼운 선체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C-13 증기식 사출기의 무게는 무려 1500톤에 달한다. 미국의 주력 항공모함인 니미츠에는 C-13이 4기나 달려 있다. 엄청난 무게다. 배수량이 9만 톤 정도인 니미츠에서 단 4기의 단일 장비가 이만한 무게를 차지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 때문에 전자기식 사출기를 도입한 항공모함은 기존보다 훨씬 가뿐한 상태로 항해할 수 있을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더 많은 함재기와 무기를 적재해 전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자기식 사출기는 기존 방식보다 좀 더 부드러운 이륙을 실현한다. 조종사가 좀더 안정적인 자세에서 항공모함을 떠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소음과 진동도 줄고 에너지 효율도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전자기식으로의 패러다임 이동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격도 증기식은 330억, 전자기식은 250억 정도여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군사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정치적 긴장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1980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별들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소련이 쏜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미국 과학기술 예산 증액 분 상당수가 군사기술 개발에 쏠린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곰곰이 되짚어 볼 때다.
(글 : 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바로 ‘캐터펄트’라고 불리는 사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장치는 항공모함 위의 비행기, 즉 함재기를 ‘초고속 썰매’에 태워 이륙할 때까지 가속한다.활주 거리가 짧아도 함재기가 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최근 미군이 사출기의 대표적 모델이던 증기 추진식 사출기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증기 사출기는 지난 반세기 동안 최첨단 군사과학의 결정체인 항공모함을 지켜온 기술이다.
항공모함이 처음 등장했을 때 함재기는 상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륙했다. 엔진 출력을 최대한 높인 함재기의 뒷덜미를 붙잡았다가 순간적으로 놓는 방식이었다. 항공모함이 항해하는 속도와 이 때 생기는 맞바람이 함재기의 이륙을 도와주는 힘의 전부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좀 더 효과적으로 함재기를 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함재기의 이륙을 보조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덩치와 무장 탑재력을 한층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출기가 등장한 건 이 같은 요구가 폭발적으로 제기된 제2차 세계대전이 계기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해군을 중심으로 본격 보급된 사출기는 주로 화약이나 압축공기를 뒤로 뿜었다. 함재기의 엔진 외에 다른 보조 동력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항공모함 운용의 폭을 넓힌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출기의 힘을 빌린 함재기는 사력을 다해 이륙해야 했던 기존 함재기보다 연료소모도 줄이고 더 안전한 환경에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종전 뒤 공중전의 주력이 폭격기에서 소형 전투기로 바뀌면서 사출기의 역할은 더욱 늘어났다. 함재기에 탑재하는 폭탄의 수와 종류가 많아졌고 공중전의 중심이 기관총에서 미사일로 바뀌면서 이런 중무장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항공모함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함재기는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이륙 도우미’의 역할이 절실해졌다.
증기 추진식 사출기는 이륙 도우미의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지난 반 세기 동안 온갖 첨단 기술이 들어온 항공모함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실제로 미군 주력 항공모함에 설치된 ‘C-13’이라는 증기 추진식 사출기 모델은 무게 35톤의 함재기를 76m 밀어내는 동안 시속 256㎞까지 가속한다. 2톤짜리 고급 승용차를 2400m 날려 보낼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힘이다. 이 같이 놀라운 성능 탓에 낮에는 37초, 밤에는 1분 간격으로 함재기를 발진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함재기를 밀어내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미군은 차세대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에 ‘레일건 사출 방식’이라고 불리는 전자기식 사출기를 적용키로 했다. 증기를 통해 물리적인 작용-반작용 원리를 이용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전자기력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전자기식 사출기의 원리는 이렇다. 이륙용 갑판 위에 전자석을 깐 다음 전류를 흘린다. 이 때 발생하는 전자기력은 함재기를 공중에 살짝 띄우는 동력이다.자기부상열차에서 실용화된 기술이다. 사출기는 전진하는 데에서도 전자기 원리를 활용한다. 같은 극끼리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 끌어당기는 힘이 그것이다. 증기식 사출기가 공기가 꽉 찬 풍선을 놓았을 때 풍선이 앞으로 날아가는 원리를 이용한다면 전자기식은 이보다 진보된 기술적 개념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자기식 사출기를 쓰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아지는 걸까. 우선 전자기식 사출기는 증기를 내뿜지 않기 때문에 거대한 보일러가 필요 없다. 좀 더 가벼운 선체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C-13 증기식 사출기의 무게는 무려 1500톤에 달한다. 미국의 주력 항공모함인 니미츠에는 C-13이 4기나 달려 있다. 엄청난 무게다. 배수량이 9만 톤 정도인 니미츠에서 단 4기의 단일 장비가 이만한 무게를 차지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 때문에 전자기식 사출기를 도입한 항공모함은 기존보다 훨씬 가뿐한 상태로 항해할 수 있을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더 많은 함재기와 무기를 적재해 전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자기식 사출기는 기존 방식보다 좀 더 부드러운 이륙을 실현한다. 조종사가 좀더 안정적인 자세에서 항공모함을 떠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소음과 진동도 줄고 에너지 효율도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전자기식으로의 패러다임 이동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격도 증기식은 330억, 전자기식은 250억 정도여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군사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정치적 긴장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1980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별들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소련이 쏜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미국 과학기술 예산 증액 분 상당수가 군사기술 개발에 쏠린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곰곰이 되짚어 볼 때다.
(글 : 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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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군요 ! 항공모함에서 전자식 새총이라.. 정말 재미있네요.
2008-04-15
답글 0
레일건이 빨랑 나왔으면 하는 군요~
방어장에 대해서 써주셨으면 하는군요
이미 있다는 것 같은데~
2008-04-15
답글 0
비행기가 항공모함에서 출발할때마다 의문이 많았는데 명쾌하게 설명을하여
주시어대단히 감사합니다
2008-04-14
답글 0
지금 SF소설 쓰는데 도움이 많이 되네요. 감사해요^^
2008-04-14
답글 0
영화에서 보면 어떻게 항공모함에서 함재기가 이륙을 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명쾌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과학에서는 쏠쏠한 향기가 나오는군요...
2008-04-14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