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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에서 육각형 벌집구조를 찾아봐~
<KISTI의 과학향기> 제1357호 2011년 05월 30일
봄이 한껏 무르익었다. 노랑나비들이 들판을 수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벌들이 날개를 붕붕거리며 이꽃 저꽃을 넘나든다. 꽃이 피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빙글빙글 돌다 꽃가루와 꿀을 물물교환한 후 달콤한 꿀이 가득한 벌집으로 찾아든다.
생명체에게 안식처는 중요하다.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제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집짓기를 한다. 이 중 육각기둥의 독특한 구조를 지닌 벌집 구조는 건축물은 물론 노트북, F1에 이르기까지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벌집의 육각형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다. 동시에 가장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하는 안정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정육각형 모양의 구조물은 평면에 서로 붙여놓았을 때 변이 맞닿아 있어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삼각형, 정사각형도 틈이 생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삼각형의 경우 벽면을 이루는 재료가 많이 필요하고 공간도 좁다. 또 정사각형은 외부의 힘이나 충격이 분산되지 않아 쉽게 비틀리거나 찌그러져 변형되기 쉽다. 그러나 속이 빈 정육각형은 외부의 힘이 쉽게 분산되는 구조여서 견고할 뿐 아니라 안정적이다.
수학적으로 둘레의 길이가 일정할 때 넓이가 최대가 되는 도형은 원이다. 물론 한 개당 넓이는 원이 가장 넓겠지만 원을 여러 개 이어붙이면 사이사이에 못 쓰는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없다. 육각형의 벌집은 벌집 무게의 무려 30배나 되는 양의 꿀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 활용도가 높다.

[그림1] 건물 뼈대가 육각형 벌집 구조로 만들어진 ‘어반하이브’ 건물.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이러한 독특한 장점 때문에 벌집의 육각형 구조는 오랫동안 건축가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실제로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 때 그 내부를 육각형 구조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벌집 구조물이자 대명사처럼 쓰이는 건물은 ‘어반하이브(UrbanHive)’로, ‘도심 속 벌집’을 의미한다. 70m 높이(17층)의 콘크리트 외벽에 지름 1m 가량의 둥근 구멍 3,371개가 규칙적으로 숭숭 뚫려 있어 건물의 이름처럼 벌집을 연상케 한다.
사실 콘크리트는 그 자체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노출콘크리트 벽 구조가 70m 높이에 달하는 건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어반하이브라는 높은 콘크리트 건물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벌집 구조다. 건물의 뼈대는 철근을 육각형으로 정밀하게 엮어 만들었다. 철근을 넣어 콘크리트의 하중을 받는 외벽에는 구멍을 뚫어 창으로 활용함으로써 콘크리트 양을 줄여 건물의 하중을 버티게 했다. 외벽에 뚫은 구멍이 건물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셈이다.
한편 벌집 구조는 고속열차의 충격흡수장치를 비롯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하는 제트기와 인공위성 등의 기체 구조를 만드는 데도 응용된다. 자동차에 범퍼가 있듯이 KTX 운전실 앞부분에 위치한 동력차에는 고성능 충격흡수장치가 있다. ‘허니콤(Honeycomb)’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로 만들어졌다. 만약 KTX가 달리다가 벽에 정면으로 충돌하면 벌집처럼 생긴 이 에너지 흡수장치가 그때 받는 충격에너지를 80%까지 흡수한다. 벌집 구조가 뛰어난 완충작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속 300km 이상으로 질주하는 포뮬러원((Formula-1) 경주용 자동차에도 벌집 구조가 사용돼 드라이버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경주 중 불가피하게 사고가 나는 경우 균형을 잃고 미끄러진 차가 벽을 들이받고 산산조각 나기도 하지만 드라이버는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 그 비밀은 운전석에 있다.
F1 자동차의 차체는 두 장의 탄소섬유판 사이에 충격에 강한 육각형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판을 샌드위치처럼 끼워 만든다. 이 특수 합성 물질의 두께는 3.5mm에 불과하지만 철판보다 수 배 이상 견고하다. 윗면은 7.5톤, 측면은 3톤의 충격에도 끄떡없는 강한 운전석 덕분에 차가 산산조각이 나도 드라이버는 안전할 수 있다.
6.5m 대형망원경을 제작할 수 있는 비법도 벌집 구조에 있다. 지름 6.5m짜리 대형거울은 두께가 1m는 돼야 중력 때문에 휘고 뒤틀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거울의 무게는 약 165톤이나 된다. 망원경의 거울은 순간순간 빠르게 움직여 천체를 추적해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무게는 걸림돌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울의 뒷면을 벌집처럼 파내어 구조의 견고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울 전체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기술을 채택했다. 또 거울은 열을 받으면 팽창하고 식으면 수축하는데, 벌집 구조 속으로 일정한 온도의 공기가 드나들게 만들어 이런 현상을 막는다.
벌집 구조의 위력은 노트북의 내구성에도 도움을 준다. HP가 내놓은 엘리트북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내구성’이다. 엘리트북은 마그네슘 합금으로 된 소재와 소재 사이에 벌집 구조물을 넣었다. 때문에 자칫 실수로 노트북을 떨어뜨려도 벌집 구조물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해 고장 위험을 줄였다. 또한 나노크기의 수많은 벌집 구멍은 반도체 소자가 차지하는 공간인 50nm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많은 양의 반도체 소자를 심을 수 있어 집적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벌집 구조는 금속이 아닌 목재 가구에도 접목돼 있다. 세계적으로 ‘이태리 가구’는 명성이 높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은 명품 가구의 대명사인 몰테니의 제품이다. 몰테니는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이 회사는 건축 재료인 초경량 시멘트나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을 처음으로 가구 재료로 써 나무 형태가 변형되는 걸 막음으로써 내구성을 높였다. 벌집 구조는 외부의 힘을 전체에 고르게 분산시키며 빈 공간을 활용하는 탄력성으로 외부 압력을 견뎌낸다.
이렇듯 구조 공학적으로 봤을 때 육각형이라는 빼곡한 방들의 벌집 배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자연의 빼어난 솜씨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생명체에게 안식처는 중요하다.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제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집짓기를 한다. 이 중 육각기둥의 독특한 구조를 지닌 벌집 구조는 건축물은 물론 노트북, F1에 이르기까지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벌집의 육각형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다. 동시에 가장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하는 안정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정육각형 모양의 구조물은 평면에 서로 붙여놓았을 때 변이 맞닿아 있어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삼각형, 정사각형도 틈이 생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삼각형의 경우 벽면을 이루는 재료가 많이 필요하고 공간도 좁다. 또 정사각형은 외부의 힘이나 충격이 분산되지 않아 쉽게 비틀리거나 찌그러져 변형되기 쉽다. 그러나 속이 빈 정육각형은 외부의 힘이 쉽게 분산되는 구조여서 견고할 뿐 아니라 안정적이다.
수학적으로 둘레의 길이가 일정할 때 넓이가 최대가 되는 도형은 원이다. 물론 한 개당 넓이는 원이 가장 넓겠지만 원을 여러 개 이어붙이면 사이사이에 못 쓰는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없다. 육각형의 벌집은 벌집 무게의 무려 30배나 되는 양의 꿀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 활용도가 높다.

[그림1] 건물 뼈대가 육각형 벌집 구조로 만들어진 ‘어반하이브’ 건물.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사실 콘크리트는 그 자체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노출콘크리트 벽 구조가 70m 높이에 달하는 건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어반하이브라는 높은 콘크리트 건물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벌집 구조다. 건물의 뼈대는 철근을 육각형으로 정밀하게 엮어 만들었다. 철근을 넣어 콘크리트의 하중을 받는 외벽에는 구멍을 뚫어 창으로 활용함으로써 콘크리트 양을 줄여 건물의 하중을 버티게 했다. 외벽에 뚫은 구멍이 건물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셈이다.
한편 벌집 구조는 고속열차의 충격흡수장치를 비롯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하는 제트기와 인공위성 등의 기체 구조를 만드는 데도 응용된다. 자동차에 범퍼가 있듯이 KTX 운전실 앞부분에 위치한 동력차에는 고성능 충격흡수장치가 있다. ‘허니콤(Honeycomb)’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로 만들어졌다. 만약 KTX가 달리다가 벽에 정면으로 충돌하면 벌집처럼 생긴 이 에너지 흡수장치가 그때 받는 충격에너지를 80%까지 흡수한다. 벌집 구조가 뛰어난 완충작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속 300km 이상으로 질주하는 포뮬러원((Formula-1) 경주용 자동차에도 벌집 구조가 사용돼 드라이버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경주 중 불가피하게 사고가 나는 경우 균형을 잃고 미끄러진 차가 벽을 들이받고 산산조각 나기도 하지만 드라이버는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 그 비밀은 운전석에 있다.
F1 자동차의 차체는 두 장의 탄소섬유판 사이에 충격에 강한 육각형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판을 샌드위치처럼 끼워 만든다. 이 특수 합성 물질의 두께는 3.5mm에 불과하지만 철판보다 수 배 이상 견고하다. 윗면은 7.5톤, 측면은 3톤의 충격에도 끄떡없는 강한 운전석 덕분에 차가 산산조각이 나도 드라이버는 안전할 수 있다.
6.5m 대형망원경을 제작할 수 있는 비법도 벌집 구조에 있다. 지름 6.5m짜리 대형거울은 두께가 1m는 돼야 중력 때문에 휘고 뒤틀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거울의 무게는 약 165톤이나 된다. 망원경의 거울은 순간순간 빠르게 움직여 천체를 추적해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무게는 걸림돌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울의 뒷면을 벌집처럼 파내어 구조의 견고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울 전체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기술을 채택했다. 또 거울은 열을 받으면 팽창하고 식으면 수축하는데, 벌집 구조 속으로 일정한 온도의 공기가 드나들게 만들어 이런 현상을 막는다.
벌집 구조의 위력은 노트북의 내구성에도 도움을 준다. HP가 내놓은 엘리트북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내구성’이다. 엘리트북은 마그네슘 합금으로 된 소재와 소재 사이에 벌집 구조물을 넣었다. 때문에 자칫 실수로 노트북을 떨어뜨려도 벌집 구조물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해 고장 위험을 줄였다. 또한 나노크기의 수많은 벌집 구멍은 반도체 소자가 차지하는 공간인 50nm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많은 양의 반도체 소자를 심을 수 있어 집적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벌집 구조는 금속이 아닌 목재 가구에도 접목돼 있다. 세계적으로 ‘이태리 가구’는 명성이 높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은 명품 가구의 대명사인 몰테니의 제품이다. 몰테니는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이 회사는 건축 재료인 초경량 시멘트나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을 처음으로 가구 재료로 써 나무 형태가 변형되는 걸 막음으로써 내구성을 높였다. 벌집 구조는 외부의 힘을 전체에 고르게 분산시키며 빈 공간을 활용하는 탄력성으로 외부 압력을 견뎌낸다.
이렇듯 구조 공학적으로 봤을 때 육각형이라는 빼곡한 방들의 벌집 배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자연의 빼어난 솜씨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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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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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태풍 곤파스가 왔을때 아파트가 날아가는줄 알았는데, 이런 벌집구조기술이 아파트를 견고하게 짓는데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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