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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구멍 뚫었더니 아파트 값 치솟은 이유는?
<KISTI의 과학향기> 제711호 2008년 01월 25일
지난해는 60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로 떠들썩했다.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에 음양과 오행을 더했더니 무려 600년 만에 한 번 찾아오는 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속학자, 한국학연구가, 역술가들 모두 지난해를 재물운이 특히 좋다는 황금돼지해로 볼 수 있는 근거나 문헌이 없다고 말한다. 역법을 이용한 상술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즉 민간속설인 미신이다.
2년 전 불었던 쌍춘년의 결혼 열풍도 마찬가지다. 쌍춘년이 몇십, 몇백년 만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2~3년이 주기라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결혼 열풍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져도 결혼하기 좋은 해라는 거짓 믿음을 이기진 못했다. 왜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내용에 끌리는 것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 얽힌 역사를 보면 참고가 될지 모른다.
역법과 달력은 정확한 시간과 날짜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지구 공전주기인 1년을 기준으로 농사나 어업, 축산업 등 자연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인간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처음 달력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력과 음력 모두 1년의 길이를 365일 또는 366일로 정해 지구 공전주기인 365.2422일과 매우 근사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각 월의 날짜가 28일에서 31일까지 일정한 규칙이 없다. 또 월일과 요일이 해마다 바뀌어 월일로 정한 기념일의 요일이 매년 바뀐다. 요일이 바뀌는 이유는 365일을 7일로 나눴을 때 52주하고 1일이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년에는 1일이 더 추가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레고리력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발했다. 이때 나온 변경안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 ‘국제고정력’과 ‘세계력’이다.
국제고정력은 1년을 7로 나눴을 때 남는 1일을 요일이 없는 ‘공일’(空日)로 해 매년 요일을 고정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1년을 13개월로 나누고 모든 달의 날짜는 4주인 28일로 정하며, 매달은 일요일로 시작해 토요일로 끝난다. 또 매년말일 즉 13월 29일은 공일로 하며, 윤년은 6월 29일을 공일로 둔다. 이렇게 하면 그레고리력의 단점이 보완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3개월이 되면 약수가 없어 분기별 통계 같이 1년을 적당하게 나눠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단점이 발생한다.
이에 반해 세계력은 1년을 사계절로 나누고, 각 계절은 31일, 30일, 30일 3개월로 나눠 일요일에 시작해 토요일로 끝난다. 1년의 마지막 날을 요일이 없는 공일로 하고, 윤년에 6월 마지막 날에 공일을 한 번 더 두는 것은 국제고정력과 같다. 그레고리력과 국제고정력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세계력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국제기구인 국제연맹과 이후 국제연합(UN)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미국 등 강대국과 일부 종교 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공일을 받아들이면 7일마다 생기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이유다.
이처럼 합리적인 규칙보다는 숫자가 주는 믿음과 감성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달력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이벤트와 의미를 부여한 상태다. 이성적으로 볼 때 1년을 구성하는 날짜와 월일은 숫자의 조합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좋다. 하지만 세계력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날짜와 월일에 문화와 믿음을 넣어 생각했다.
반면 비과학적인 믿음을 잘 이용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홍콩의 ‘리펄스 베이’에 있는 고급 아파트는 설계도중 아파트 뒤쪽에 용이 산다는 풍수지리학자의 말을 들어 건물에 가로세로 6층씩 총 36호실에 해당하는 칸을 뚫어 놓았다. 이유는 용이 지나다니는 길이 있어야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것.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36호실만큼의 아파트가 없어 해당 건설사 등은 금전적 손실이 막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은 가운데가 텅빈 공간 덕에 오히려 용이 사는 곳에 지어진 좋은 건물이라는 인정을 받게 됐다. 현재 대부호만 산다는 최고급 아파트로 이름나 있고, 월세도 수천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감성이 때로 이성보다 높은 수익을 만들기도 한다.
‘미신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쓴 스튜어트 바이즈 박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가 미신”이라며 “어떤 물건이나 행위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열심히 한다면 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서양에서 7, 중국에서는 8이라는 숫자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 미국 학생의 39%가 중요한 시험 때마다 자기가 믿는 어떤 물건을 지니거나 특정한 행동을 한다는 것 모두는 자기 암시의 사례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과거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것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익숙함과 기억이 더 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는 것에 오류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성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보다 얼마나 익숙하고 감성적으로 긍정적인지를 더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 같다.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2년 전 불었던 쌍춘년의 결혼 열풍도 마찬가지다. 쌍춘년이 몇십, 몇백년 만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2~3년이 주기라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결혼 열풍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져도 결혼하기 좋은 해라는 거짓 믿음을 이기진 못했다. 왜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내용에 끌리는 것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 얽힌 역사를 보면 참고가 될지 모른다.
역법과 달력은 정확한 시간과 날짜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지구 공전주기인 1년을 기준으로 농사나 어업, 축산업 등 자연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인간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처음 달력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력과 음력 모두 1년의 길이를 365일 또는 366일로 정해 지구 공전주기인 365.2422일과 매우 근사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각 월의 날짜가 28일에서 31일까지 일정한 규칙이 없다. 또 월일과 요일이 해마다 바뀌어 월일로 정한 기념일의 요일이 매년 바뀐다. 요일이 바뀌는 이유는 365일을 7일로 나눴을 때 52주하고 1일이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년에는 1일이 더 추가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레고리력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발했다. 이때 나온 변경안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 ‘국제고정력’과 ‘세계력’이다.
국제고정력은 1년을 7로 나눴을 때 남는 1일을 요일이 없는 ‘공일’(空日)로 해 매년 요일을 고정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1년을 13개월로 나누고 모든 달의 날짜는 4주인 28일로 정하며, 매달은 일요일로 시작해 토요일로 끝난다. 또 매년말일 즉 13월 29일은 공일로 하며, 윤년은 6월 29일을 공일로 둔다. 이렇게 하면 그레고리력의 단점이 보완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3개월이 되면 약수가 없어 분기별 통계 같이 1년을 적당하게 나눠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단점이 발생한다.
이에 반해 세계력은 1년을 사계절로 나누고, 각 계절은 31일, 30일, 30일 3개월로 나눠 일요일에 시작해 토요일로 끝난다. 1년의 마지막 날을 요일이 없는 공일로 하고, 윤년에 6월 마지막 날에 공일을 한 번 더 두는 것은 국제고정력과 같다. 그레고리력과 국제고정력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세계력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국제기구인 국제연맹과 이후 국제연합(UN)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미국 등 강대국과 일부 종교 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공일을 받아들이면 7일마다 생기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이유다.
이처럼 합리적인 규칙보다는 숫자가 주는 믿음과 감성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달력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이벤트와 의미를 부여한 상태다. 이성적으로 볼 때 1년을 구성하는 날짜와 월일은 숫자의 조합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좋다. 하지만 세계력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날짜와 월일에 문화와 믿음을 넣어 생각했다.
반면 비과학적인 믿음을 잘 이용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홍콩의 ‘리펄스 베이’에 있는 고급 아파트는 설계도중 아파트 뒤쪽에 용이 산다는 풍수지리학자의 말을 들어 건물에 가로세로 6층씩 총 36호실에 해당하는 칸을 뚫어 놓았다. 이유는 용이 지나다니는 길이 있어야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것.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36호실만큼의 아파트가 없어 해당 건설사 등은 금전적 손실이 막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은 가운데가 텅빈 공간 덕에 오히려 용이 사는 곳에 지어진 좋은 건물이라는 인정을 받게 됐다. 현재 대부호만 산다는 최고급 아파트로 이름나 있고, 월세도 수천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감성이 때로 이성보다 높은 수익을 만들기도 한다.
‘미신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쓴 스튜어트 바이즈 박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가 미신”이라며 “어떤 물건이나 행위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열심히 한다면 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서양에서 7, 중국에서는 8이라는 숫자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 미국 학생의 39%가 중요한 시험 때마다 자기가 믿는 어떤 물건을 지니거나 특정한 행동을 한다는 것 모두는 자기 암시의 사례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과거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것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익숙함과 기억이 더 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는 것에 오류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성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보다 얼마나 익숙하고 감성적으로 긍정적인지를 더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 같다.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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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언제나 인간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군요. 때로는 용이 지나가는 길목처럼 감성적인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자극하는 군요. 그레고리력과 세계력, 국제고정력은 조금 생소하네요.
2009-04-13
답글 0
그런것 같아요. 우리는 항상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미신도 믿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렇구요.그나저나 용이 산다는 홍콩의 대부호만이 산다는 아파트 구경은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
2009-04-07
답글 0
사람에게 이성(理性)보다는 감성이 더강하죠.. ㅋㅋ
특히, 어떤 이성(異性)은 자신을 통제불능상태로 만들기도 하죠.
2008-01-26
답글 0
보면 볼 수록 새로워요.. 추천 꽈꽈과앙~~!!
2008-01-25
답글 0
오늘도 재미있는 지식 감사합니다....!!!
홍콩의 아파트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군요...ㅎㅎ
2008-01-25
답글 0
재밌게 잘 보고갑니다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08-01-25
답글 0
과학의 향기를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 너무 아쉽군요.
2008-01-25
답글 0
우리나라사람들이 저런거 더 많이믿는 것 같아요;; ㅋㅋ
2008-01-25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