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남성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 암도 결정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79호   2023년 07월 31일
사람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그중 22쌍은 서로가 같은 상염색체, 나머지 한 쌍인 X염색체와 Y염색체는 크기와 모양은 달라도 함께 조합해서 성을 결정하는 성염색체다. 이중 X염색체는 전체 염색체 가운데 여덟 번째로 클 정도로 존재감이 엄청나다. X염색체가 세포 전체 DNA의 약 5%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 크기부터 왜소한 Y염색체는 약 2%에 그친다. 과학자들은 Y염색체가 대략 70~200개의 유전자를 암호화할 것으로 추정한다. X염색체에 900~1,400개의 유전자가 포함되고, 인간 유전체 안에 있는 유전자의 수가 적게는 2만 5,000개, 많게는 4만 개로 예측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적은 양이다.
shutterstock457985443
그림 1. Y염색체는 DNA를 극소량으로 갖고 있으며 염색체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출처: Shutterstock
 
Y염색체의 DNA가 소량이라서 그럴까? 인간은 생존을 위해 X염색체는 꼭 필요하지만, Y염색체는 없어도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 Y염색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다면, SRY(sex-determining region Y)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 개체의 남성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SRY 유전자는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배아가 수컷으로 발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성염색체 비분리로 인해 XXY의 핵형을 가진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SRY 유전자를 가지므로 남성의 외형을 지닌다.
 
 
연약한 Y염색체,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Y염색체의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Y염색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한 개체에서뿐 아니라 장구한 시간에 걸친 진화의 맥락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먼저 인간의 Y염색체가 어떻게 소실되는지 살펴보자.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평균적으로 약 50~60회의 세포 분열을 거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일부 세포에서 Y염색체가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 70세 남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15%의 Y염색체가 소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다 담배를 피우면 Y염색체의 소실률은 더 높아진다. 
 
과학자들은 진화적인 맥락에서 Y염색체가 갈수록 퇴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X염색체와 Y염색체는 약 3억 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X염색체와 비교하여 Y염색체는 지난 3억 년 동안 1,000개 이상의 유전자를 잃었으며, 이는 백만 년당 약 4.6개꼴로 유전자가 손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추세로 가정하면, Y염색체는 향후 1천만 년 이내에 완전히 기능을 잃게 될지 모른다.
shutterstock1202760703
그림 2. Y염색체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소멸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출처: Shutterstock
 
Y염색체, 암으로 존재감 드러내다
크기가 작고, 손실도 잘 되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소멸할지도 모르는 Y염색체는 염색체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존재다. 같은 성염색체이자 주요 유전자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X염색체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몇 가지가 다른 염색체로 옮겨가면 Y염색체의 존재 이유는 사라질 것이라며 극단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Y염색체는 남성성을 결정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역할도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Y염색체가 남성들의 암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곳곳에 발표됐기 때문이다. <네이처>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는 Y염색체와 대장암 사이의 관계를 규명했다.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Y염색체의 특정 유전자가 대장암을 더욱 치명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서 수컷 쥐는 암컷 쥐에 비해 암이 더 자주 전이되었으며 생존율이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암세포 사이의 연결을 풀어, 암세포가 더 쉽게 분리되고 신체의 다른 부위로 퍼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버지니아 의대의 케네스 월시 교수와 스웨덴 웁살라대의 라르스 포스버그 교수 연구진이 Y염색체 소실률이 높을수록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Y염색체의 유무가 심부전 발생 여부에 영향을 준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혀낸 것이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생쥐의 골수세포에서 Y염색체를 3분의 2를 제거하고 이를 생쥐에게 이식했다. 그 결과 Y염색체가 없는 골수를 이식받은 생쥐는 심장에 반흔(흉터)이 생기면서 심장 질환이 발생한 반면, 일반 골수를 이식한 생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정상 골수를 이식받은 생쥐는 2년 뒤 60%가 생존했지만, Y염색체가 없는 골수를 이식받은 생쥐는 40%만 살아남았다.
 
scienceabn3100 f1

그림 3. Y염색체가 결핍된 생쥐(LOY)는 대조군 쥐보다 생존률과 심초음파(FS)가 더 낮게 나타났다(붉은색 표시). 출처: Science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시나이 암센터 연구팀은 Y염색체와 면역 체계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방광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던 중, Y염색체 소실률이 높을수록 암이 훨씬 더 빠르게 자란다는 것을 발견했다. Y염색체가 결핍되었을 때 암세포가 더 잘 살아남았고 정상 세포의 면역 반응이 약해지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연구팀은 Y염색체가 없는 세포의 경우 T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T세포 고갈’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또한 T세포가 암세포와 싸우지 못하면 종양이 공격적으로 자라게 된다고 부연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Y염색체가 단지 SRY 유전자를 통해 성별을 결정한 뒤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러 중요한 단백질들과 연관되어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Y염색체는 성별 결정이나 감수분열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영역에서 단 몇 가지의 유전자로 환원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비롯한 연구 방법론이 발전하면서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Y염색체의 다른 역할과 기능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으며, 기존의 시각이 지나친 단순화였음이 드러나는 중이다. Y염색체 연구는 앞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암, 심혈관질환 등의 질병에 더 취약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류는 질병을 더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평가하기
윤승환
  • 평점   별 5점

감사합니다.

2023-07-31

답글 0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링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