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무음은 소리 ‘없을 무(無)’? 뇌에게는 ‘있을 유(有)’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887호   2023년 08월 28일
20세기 미국 최고의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무음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전설적 팝송이다. 감미로운 선율도 아름답지만, ‘무음의 소리’라는 역설적 표현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아 더 사랑받은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무음의 소리’라는 표현이 역설(paradox)이 아닌 정설(orthodoxy)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의 연구진에 의해 발표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상황도 바로 소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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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트 가펑클과 폴 사이먼(왼쪽부터). 대표곡 ‘무음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은 1960년대 영미 대중음악계에 포크 록의 전설 곡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출처: Wikipedia
 
 
무음도 소리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뇌
미국 존스홉킨스대 심리학과 채즈 파이어스톤(Chaz Firestone) 교수와 철학과 이안 필립스(Ian Phillips)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사람들이 무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무음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소리가 나지 않는 무음의 상태가 사람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참가자 1,000명을 대상으로 ‘청각의 착각(sound illusion)’과 ‘괴상한 착각(oddball illusion)’이라는 2가지의 소리 관련 실험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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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연구진의 실험 설계 및 설정. One Silence는 1번의 긴 무음, Two Silcences는 짧은 무음 2번을 이어 붙인 소리를 뜻한다. 실험 1-3까지는 무음만 들려준 청각의 착각 실험, 실험 4-6까지는 중간에 소음((C)에 기재된 소리들)을 넣은 청각의 착각 실험, 7번째 실험은 괴상한 착각 실험이다. 출처: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청각의 착각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1번의 길게 들리는 무음과 짧은 무음 2번을 이어 붙인 소리를 들려준 뒤, 어떤 소리가 더 오래 재생됐는지를 판단하는 실험이다. 두 소리의 재생 시간은 같았지만, 참가자의 대부분은 짧게 2번 들리는 소리보다 길게 1번 들리는 소리가 더 오래 재생된 것 같다고 답변했다. 조사 결과를 받은 연구진은 이번에는 거꾸로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무음을 ‘소리의 부재’라고 인식한다면, 무음 길이의 차이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앞서 진행한 실험처럼 연구진은 길이가 긴 무음 1개와 짧은 무음 2개를 이어 붙인 소리를 참가자들에게 다시 들려줬다. 단, 무음 중간에는 기차 경적이나 시장에서 상인들이 떠들썩하게 외치는 소리, 공원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웃는 소리 등 다양한 소음을 삽입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앞의 실험에서와 같은 1번의 긴 무음 시간이 2번의 짧은 무음 시간보다 더 길다”며 먼젓번 실험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실험 결과를 통해 연구진은 소리가 들리지 않은 시간이 같더라도 참가자들은 끊기지 않는 무음이 자주 끊기는 무음보다 더 길게 인식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소리가 들리는 실험과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실험 모두 사람의 뇌가 같은 방식으로 인지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청각을 넘어 오감을 대상으로 뇌의 착각 실험 추진한다
청각의 착각 실험을 통해 소리에 대한 뇌의 인지 시스템을 파악한 연구진은 색다른 실험에 착수했다. ‘괴상한 착각’이라고 불린 이 실험은 오르간에서 나는 소리와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를 함께 들려주다가 도중에 하나의 소리를 멈추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괴상한 착각 실험은 총 5번 진행됐는데, 4번은 오르간에서 나는 소리를 실험 도중에, 마지막 1번은 기계에서 나는 소리를 멈췄다.  오르간 소리와 기계 소리가 멈춘 시간은 5번 모두 같았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기계 소리가 멈춘 마지막 시간 때 무음 시간이 가장 길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사람의 뇌는 반복되는 자극보다 반복되지 않는 자극을 더 오랫동안 지속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하여 파이어스톤 교수는 “사람의 뇌가 무음도 소리를 처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증거”라고 밝히며 “다시 말해 무음도 소리의 일종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함께 실험에 참여한 필립스 교수 역시 “사람이 뇌를 통해 착각하는 감각 중에는 소리가 아닌 것들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소리가 없는 무음의 상태”라며 “청각이 착각을 일으키는 대상은 소리도 있지만, 소리가 없는 무음도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검토한 미국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철학과 ‘니코 올란디(Nico Orlandi)’ 교수는 이번 연구의 성과에 대해 “무음도 소리와 같은 방식으로 청각 시스템에서 처리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첫 번째 연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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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뇌는 무음도 소리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 기회가 된다면 침묵 속에서 무음을 새롭게 느껴보는 건 어떨까? 출처: pexels
 
한편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앞으로 사람의 뇌가 착각하는 시스템이 시각, 촉각 같은 오감(五感)에도 유사하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사람의 청각이 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갑자기 The Sound of Silences의 가사인 ‘무음의 소리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네(in my brain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가 떠오른다. 이 노래가 발표된 해는 1964년이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60여 년 전에 무음도 소리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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