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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적인 후각수용체, S-51의 일생
<KISTI의 과학향기> 제657호 2007년 09월 21일
후각수용체 ‘S-51’은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숙명을 가졌다. 암모니아 분자와 유독 잘 결합하는 자신의 특성 때문에 그는 자기 주인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어떤 후각수용체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주인은 그의 골칫거리였다. 사실 그는 몰랐지만 주인은 악성 변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엄지손톱만한 넓이의 후각상피였다. 이곳에서 1000개가 넘는 수용체가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었다. 수다쟁이 뇌 신경세포들은 시신경세포의 신호를 인용해 “유전자 풀의 3%를 차지하는 후각 유전자들이 각각 발현한 결과”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는 그저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여기 있을 뿐이었다.
각각의 후각수용체는 자신과 잘 결합하는 냄새 분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후각수용체는 자신의 짝을 좋아했다. S-51은 그 짝들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지만, 단 한 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자신과 붙는 짝이 지독히도 싫다는 사실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각수용체계의 ‘반항아’였다.
주인이 무언가 먹을 때, 샤워를 할 때, 화장실에 갈 때마다 후각수용체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주인은 호흡을 멈추지 않았고 냄새는 끊임없이 날아왔다. 후각수용체는 짝을 받아들인 뒤 재회를 기뻐할 새도 없이 바로 ‘후각망울’로 전기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는 뇌로 전달돼 주인의 기억으로 바뀌는 듯했다. 그런데 같은 전기신호를 계속 보내면 뇌 신경세포는 간혹 “그만!”이라고 외쳤다. 지쳐서 더 이상 신호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가끔 후각수용체들이 쉴 때도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후각상피 밑, 동굴이 진득한 액체(주인이 콧물이라고 부르는)로 찰 때다. “팽!” 소리와 함께 액체가 강한 바람에 밀려나가면 다시 몇몇 후각수용체들이 조금 바빠지지만, 한창 바쁠 때에 비하면 휴가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다. 주인은 괴로워하고, 뇌 신경세포도 “너희가 쉬니 음식 맛이 안 느껴져 우울하다”며 항의했지만 후각수용체들은 쉴 수 있으니 좋았다.
후각수용체 중에 30개 안팎은 늘 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굴 만나야 하는지,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뇌 신경세포는 유전자의 이상이라고, 선천적으로 아픈 거니까 잘 해줘야 한다고 조용히 당부했다. 하지만 짝과 함께 보내는 알콩달콩한 시간을 좋아하는 몇몇 후각수용체는 쉬는 이들을 ‘솔로’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어느날 아주 진득한 누런색 액체가 동굴을 일주일 넘게 메웠을 때 솔로 하나가 실제로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뒤 ‘솔로’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됐다.
주인은 ‘전자코’라는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S-51은 뇌 신경세포들끼리 수근거리는 말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신경세포들은 너무 수다스러워 짜증나지만 그들 덕분에 바깥의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전자코는 후각수용체가 죽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냄새까지 식별하기 위한 물체인 듯했다.
이를 위해 주인은 계속 여러가지 냄새를 맡아댔다. 언제나 수다스러운 뇌 신경세포는 “냄새 분자가 전기와 결합하는 모습이 너희들 후각수용체가 짝을 만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둥 “냄새 분자와 결합하면 색이 바뀌는 색소가 새로운 재료”라는 둥 떠들어댔다. 전자코를 연구하는 동안에도 주인은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S-51은 암모니아와 결합하는 전자코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주인이 만든 전자코는 11개의 센서를 가져 중국산 인삼과 고려인삼을 구별할 수 있었다. 물론 뇌 신경세포로부터 얻은 정보다. 하지만 이 전자코가 S-51의 일을 대체해주지는 않았다. 주인은 여전히 화장실에 자주 갔고 - 기술이 발전해도 변비는 해결 불가능이었다 - S-51은 여전히 암모니아를 떼내기 위해 애썼다. 주인이 늙어 다른 후각수용체들이 하나씩 기능을 잃어갈 때도 S-51은 건재했으며, 그래서 자신을 저주했다. 그러나 주인이 받아들이는 냄새가 전과 달라졌을 때, S-51은 무언가 변했음을 깨달았다. 주인은 더 이상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낡아버린 신경세포들은 삐걱거리며 “병원”이라는 단어를 전달했다. 톡 쏘는 느낌의 새로운 냄새들이 들어오며 아주 오랫동안 쉬고 있었던 후각수용체들 중 일부가 ‘커플’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더딘 움직임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아주 맑고 투명한 바람만이 들어와 후각수용체들이 모두 휴식을 취하는 날이 이어지자 S-51은 암모니아가 조금은 그립다고 느꼈다.
며칠 뒤 주인이 조용히 숨을 거뒀을 때, 암모니아 분자 몇 개가 동굴로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리고 작은 암모니아는 S-51의 생애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짝이었다. 늙고 지친 S-51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쁨에 찬 전기신호를 발했다. 반항적인 S-51의 최후는, 그랬다.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그가 있는 곳은 엄지손톱만한 넓이의 후각상피였다. 이곳에서 1000개가 넘는 수용체가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었다. 수다쟁이 뇌 신경세포들은 시신경세포의 신호를 인용해 “유전자 풀의 3%를 차지하는 후각 유전자들이 각각 발현한 결과”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는 그저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여기 있을 뿐이었다.
각각의 후각수용체는 자신과 잘 결합하는 냄새 분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후각수용체는 자신의 짝을 좋아했다. S-51은 그 짝들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지만, 단 한 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자신과 붙는 짝이 지독히도 싫다는 사실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각수용체계의 ‘반항아’였다.
주인이 무언가 먹을 때, 샤워를 할 때, 화장실에 갈 때마다 후각수용체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주인은 호흡을 멈추지 않았고 냄새는 끊임없이 날아왔다. 후각수용체는 짝을 받아들인 뒤 재회를 기뻐할 새도 없이 바로 ‘후각망울’로 전기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는 뇌로 전달돼 주인의 기억으로 바뀌는 듯했다. 그런데 같은 전기신호를 계속 보내면 뇌 신경세포는 간혹 “그만!”이라고 외쳤다. 지쳐서 더 이상 신호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가끔 후각수용체들이 쉴 때도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후각상피 밑, 동굴이 진득한 액체(주인이 콧물이라고 부르는)로 찰 때다. “팽!” 소리와 함께 액체가 강한 바람에 밀려나가면 다시 몇몇 후각수용체들이 조금 바빠지지만, 한창 바쁠 때에 비하면 휴가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다. 주인은 괴로워하고, 뇌 신경세포도 “너희가 쉬니 음식 맛이 안 느껴져 우울하다”며 항의했지만 후각수용체들은 쉴 수 있으니 좋았다.
후각수용체 중에 30개 안팎은 늘 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굴 만나야 하는지,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뇌 신경세포는 유전자의 이상이라고, 선천적으로 아픈 거니까 잘 해줘야 한다고 조용히 당부했다. 하지만 짝과 함께 보내는 알콩달콩한 시간을 좋아하는 몇몇 후각수용체는 쉬는 이들을 ‘솔로’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어느날 아주 진득한 누런색 액체가 동굴을 일주일 넘게 메웠을 때 솔로 하나가 실제로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뒤 ‘솔로’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됐다.
주인은 ‘전자코’라는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S-51은 뇌 신경세포들끼리 수근거리는 말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신경세포들은 너무 수다스러워 짜증나지만 그들 덕분에 바깥의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전자코는 후각수용체가 죽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냄새까지 식별하기 위한 물체인 듯했다.
이를 위해 주인은 계속 여러가지 냄새를 맡아댔다. 언제나 수다스러운 뇌 신경세포는 “냄새 분자가 전기와 결합하는 모습이 너희들 후각수용체가 짝을 만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둥 “냄새 분자와 결합하면 색이 바뀌는 색소가 새로운 재료”라는 둥 떠들어댔다. 전자코를 연구하는 동안에도 주인은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S-51은 암모니아와 결합하는 전자코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주인이 만든 전자코는 11개의 센서를 가져 중국산 인삼과 고려인삼을 구별할 수 있었다. 물론 뇌 신경세포로부터 얻은 정보다. 하지만 이 전자코가 S-51의 일을 대체해주지는 않았다. 주인은 여전히 화장실에 자주 갔고 - 기술이 발전해도 변비는 해결 불가능이었다 - S-51은 여전히 암모니아를 떼내기 위해 애썼다. 주인이 늙어 다른 후각수용체들이 하나씩 기능을 잃어갈 때도 S-51은 건재했으며, 그래서 자신을 저주했다. 그러나 주인이 받아들이는 냄새가 전과 달라졌을 때, S-51은 무언가 변했음을 깨달았다. 주인은 더 이상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낡아버린 신경세포들은 삐걱거리며 “병원”이라는 단어를 전달했다. 톡 쏘는 느낌의 새로운 냄새들이 들어오며 아주 오랫동안 쉬고 있었던 후각수용체들 중 일부가 ‘커플’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더딘 움직임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아주 맑고 투명한 바람만이 들어와 후각수용체들이 모두 휴식을 취하는 날이 이어지자 S-51은 암모니아가 조금은 그립다고 느꼈다.
며칠 뒤 주인이 조용히 숨을 거뒀을 때, 암모니아 분자 몇 개가 동굴로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리고 작은 암모니아는 S-51의 생애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짝이었다. 늙고 지친 S-51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쁨에 찬 전기신호를 발했다. 반항적인 S-51의 최후는, 그랬다.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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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세포의 일생을 정말 재미있게 풀어서 써주셨네요. 콧물 때문에 후각이 마비되면 맛도 못느낀다는 부분 과 S-51세포가 암모니아와 짝이라는 유용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2009-04-16
답글 0
동굴은 콧구멍이잖아요~ ㅋㅋ
2007-11-28
답글 0
하하~~ 재밌는 내용인데(한편 단편소설
같아^^)... 심각하게 끝냈내여.. 끝에는 슬펐어여.. 인생이 이런거 아닌가 하구...
2007-11-16
답글 0
아니, 그런 의미보다도.. 특히, 마지막에 "조용히 숨을 거뒀을 때, 암모니아 분자 몇 개가 동굴로 들어왔다."라고 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앞 부분도 이런 부분이 있고요.
2007-10-09
답글 0
키키키 간만에 엄청 웃으면서 봤어요 ㅎㅎ
2007-09-24
답글 0
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네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처럼
하나의 조그만 소설같아요. 감사합니다.
2007-09-22
답글 0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마지막은 감동적이네요. ^^
2007-09-21
답글 0
최근에 후각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소설같은 재밌는 이야기에 감동받고 갑니다.
2007-09-21
답글 0
재밌게 하는 건 좋은데요, 글의 핵심을 잘 모르겠어요
2007-09-21
답글 0
정말 재미있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좋네요.. 잘 읽다 갑니다.
2007-09-21
답글 0
후각을 느끼게 해주는 후각수용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원리로 냄새를 맡는지 소개한 거잖아요. 소설 읽는 거 같아 좋구만 딴지 거시긴.
2007-09-21
답글 0
늘 좋은 내용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내용은 특히 소설 읽는 느낌과 함께 잘 표현되어있어
또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환절기 건강과 함께 즐거운 추석 되시기를....^^
2007-09-21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