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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술을 현실로 만드는 홀로그램 콘서트
<KISTI의 과학향기> 제2635호 2016년 04월 25일
가수 싸이를 좋아하는 형준이는 몇 달 동안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콘서트 티켓을 샀다. 친구들은 부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티켓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함께 하지 못하고 동대문으로 쇼핑을 갔다. 의기양양하게 잠실 체조경기장에 도착해 오프닝 무대를 기다리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동대문에 쇼핑을 간다던 친구가 “형준아, 싸이 지금 여기 있는데 어떻게 된 거야?” 하며 증거 동영상을 보낸 것이다.
무대 위에서 신나게 말춤을 추는 사람은 분명히 싸이였다. 곧 공연이 시작될 텐데 지금 동대문에 있으면 언제 잠실에 온다는 건지 걱정이 됐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싸이가 등장했다. 말소리나 춤실력을 봐도 실제 싸이가 분명하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군데에 존재할 수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비밀은 ‘홀로그램’에 있었다. 가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지만 진짜 사람처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맞은편 건물 9층에 2014년 1월 문을 연 ‘케이-라이브(K-Live)’가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전용 공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싸이, 빅뱅, 투애니원 등 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 영상을 실제 모습과 혼동될 정도로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다.
케이-라이브 공연장은 2016년 들어 싱가포르 남쪽의 휴양섬 센토사에도 문을 열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곳곳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테마파크 에버랜드는 그보다 앞선 2013년 여름부터 ‘케이팝 홀로그램’이라는 공연장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테마파크 입장료를 구매한 사람만 관람할 수 있어서 전용 공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다.
이들 공연장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은 ‘플로팅 홀로그램(floating hologram)’이라 불린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한 스크린이나 성긴 그물망을 설치하고 그 위에 영상을 쏜다. 저 멀리 무대 뒷벽이 보이고 사람의 모습은 관객 가까운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서 플로팅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플로팅 기술은 불빛을 이용해 여러 형태를 벽면과 천장에 투사하는 ‘판타스마고리아’, 즉 불빛놀이에서 시작됐다. 유령 같은 형체들이(phatasma) 특정 장소에 모인다(agora)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802년 런던 공연을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이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사람이 19세기 영국의 발명가 존 헨리 페퍼(John Henry Pepper)다. 1862년 찰스 디킨슨의 소설 ‘유령 이야기’를 각색한 연극에서 플로팅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커다란 유리판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설치한다. 무대 아래나 옆면에 숨겨진 공간에서 유령 옷을 입은 사람이 연기를 펼치고 밝은 빛을 비춘다. 관객들은 실제 배우가 아닌 유리에 반사된 모습을 보기 때문에 마치 유령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이 기법은 ‘페퍼의 유령(Pepper’s Ghost)’라 불리며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플로팅 홀로그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투명한 막이나 그물 형태의 스크린을 설치하고 고해상도 장치로 영상을 투사해 실제감을 높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홀로그램 또는 홀로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홀로그램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전체(holos)의 모습을 담고 있는 표현물(gramma)이어야 하는데, 플로팅 방식은 객석에서 바라볼 때에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1948년 헝가리 출신의 영국인 물리학자 데니스 가보어(Dennis Gabor)는 특정 물체에 레이저 광선을 쬔 후 반사되고 회절되는 값을 계산해 다른 곳에서도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홀로그램 공식을 찾아냈다.
이 방식으로 촬영해 유리판에 레이저로 새겨 넣은 사진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얼굴을 촬영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수리 부분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콧구멍이, 옆쪽에서 바라보면 귓구멍이 보이는 식이다. 레이저를 교차시키면 허공에 진짜 같은 입체영상이 나타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정교한 허상을 그는 홀로그램이라 이름 붙였다. 레이저 발생기와 센서의 숫자를 늘리고 처리장치의 용량을 키우면 360도 어디서든 입체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러나 진정한 3차원 홀로그램을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입체 촬영을 생생하게 구현하려면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댄스가수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경우는 수십 대의 컴퓨터를 동원해도 제 시간에 계산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홀로그램 공연이 완벽한 입체가 아닌 어느 한쪽에서 바라볼 때만 실제 모습처럼 보이는 플로팅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컴퓨터의 계산 속도가 빨라지고 홀로그램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의 효율이 높아지면 허상이면서도 완벽한 입체로 보이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가수가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경우 이외에도 영화 ‘스타워즈’나 ‘어벤져스’처럼 행성의 모습과 물체의 구조를 공중에 띄워 여러 사람이 빙 둘러서서 바라보는 날이 올 것이다.
병원에서는 직접 들여다보기 어려운 부위를 수술할 때 상처 부위를 확대해 입체로 보여준 뒤 여러 명의 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할 수 있다. 집에서 드라마를 볼 때는 TV를 벽에다 붙여놓고 온 가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대신에 거실 한가운데에 홀로그램을 틀어놓고 마당놀이처럼 둘러앉아 구경할 수 있다. 데이터를 저장할 때도 단순한 평면에 홈을 파는 방식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읽기와 쓰기를 통해 용량을 수백 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인간의 감각을 속이는 방식으로 홀로그램을 구현하기도 한다. 미국의 컴퓨터 장비업체인 휴렛패커드 사(Hewlett-Packard Company)는 사람의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주고 뇌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지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마존은 시청자의 머리와 눈 위치를 파악해 그에 맞게 영상을 변화시켜 입체감을 주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10달러의 저렴한 비용으로도 입체 홀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는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케이팝 스타들이 동시에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홀로그램을 이용하면 매번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실제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플로팅 방식에 만족하지 말고 진정한 입체 홀로그램을 구현할 차례다. 관객들은 그저 신나게 즐기면 그만이지만 해당 기술을 구현하려면 여러 과학기술 분야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의 고집과 열정 덕분에 케이팝의 화려함이 빛을 발하는 셈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무대 위에서 신나게 말춤을 추는 사람은 분명히 싸이였다. 곧 공연이 시작될 텐데 지금 동대문에 있으면 언제 잠실에 온다는 건지 걱정이 됐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싸이가 등장했다. 말소리나 춤실력을 봐도 실제 싸이가 분명하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군데에 존재할 수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비밀은 ‘홀로그램’에 있었다. 가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지만 진짜 사람처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맞은편 건물 9층에 2014년 1월 문을 연 ‘케이-라이브(K-Live)’가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전용 공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싸이, 빅뱅, 투애니원 등 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 영상을 실제 모습과 혼동될 정도로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다.
케이-라이브 공연장은 2016년 들어 싱가포르 남쪽의 휴양섬 센토사에도 문을 열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곳곳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테마파크 에버랜드는 그보다 앞선 2013년 여름부터 ‘케이팝 홀로그램’이라는 공연장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테마파크 입장료를 구매한 사람만 관람할 수 있어서 전용 공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다.
이들 공연장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은 ‘플로팅 홀로그램(floating hologram)’이라 불린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한 스크린이나 성긴 그물망을 설치하고 그 위에 영상을 쏜다. 저 멀리 무대 뒷벽이 보이고 사람의 모습은 관객 가까운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서 플로팅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플로팅 기술은 불빛을 이용해 여러 형태를 벽면과 천장에 투사하는 ‘판타스마고리아’, 즉 불빛놀이에서 시작됐다. 유령 같은 형체들이(phatasma) 특정 장소에 모인다(agora)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802년 런던 공연을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사진 : 엑스재팬 공연 중 히데의 홀로그램(출처: flickr)
이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사람이 19세기 영국의 발명가 존 헨리 페퍼(John Henry Pepper)다. 1862년 찰스 디킨슨의 소설 ‘유령 이야기’를 각색한 연극에서 플로팅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커다란 유리판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설치한다. 무대 아래나 옆면에 숨겨진 공간에서 유령 옷을 입은 사람이 연기를 펼치고 밝은 빛을 비춘다. 관객들은 실제 배우가 아닌 유리에 반사된 모습을 보기 때문에 마치 유령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이 기법은 ‘페퍼의 유령(Pepper’s Ghost)’라 불리며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플로팅 홀로그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투명한 막이나 그물 형태의 스크린을 설치하고 고해상도 장치로 영상을 투사해 실제감을 높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홀로그램 또는 홀로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홀로그램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전체(holos)의 모습을 담고 있는 표현물(gramma)이어야 하는데, 플로팅 방식은 객석에서 바라볼 때에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1948년 헝가리 출신의 영국인 물리학자 데니스 가보어(Dennis Gabor)는 특정 물체에 레이저 광선을 쬔 후 반사되고 회절되는 값을 계산해 다른 곳에서도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홀로그램 공식을 찾아냈다.
이 방식으로 촬영해 유리판에 레이저로 새겨 넣은 사진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얼굴을 촬영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수리 부분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콧구멍이, 옆쪽에서 바라보면 귓구멍이 보이는 식이다. 레이저를 교차시키면 허공에 진짜 같은 입체영상이 나타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정교한 허상을 그는 홀로그램이라 이름 붙였다. 레이저 발생기와 센서의 숫자를 늘리고 처리장치의 용량을 키우면 360도 어디서든 입체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러나 진정한 3차원 홀로그램을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입체 촬영을 생생하게 구현하려면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댄스가수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경우는 수십 대의 컴퓨터를 동원해도 제 시간에 계산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홀로그램 공연이 완벽한 입체가 아닌 어느 한쪽에서 바라볼 때만 실제 모습처럼 보이는 플로팅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컴퓨터의 계산 속도가 빨라지고 홀로그램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의 효율이 높아지면 허상이면서도 완벽한 입체로 보이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가수가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경우 이외에도 영화 ‘스타워즈’나 ‘어벤져스’처럼 행성의 모습과 물체의 구조를 공중에 띄워 여러 사람이 빙 둘러서서 바라보는 날이 올 것이다.
병원에서는 직접 들여다보기 어려운 부위를 수술할 때 상처 부위를 확대해 입체로 보여준 뒤 여러 명의 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할 수 있다. 집에서 드라마를 볼 때는 TV를 벽에다 붙여놓고 온 가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대신에 거실 한가운데에 홀로그램을 틀어놓고 마당놀이처럼 둘러앉아 구경할 수 있다. 데이터를 저장할 때도 단순한 평면에 홈을 파는 방식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읽기와 쓰기를 통해 용량을 수백 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인간의 감각을 속이는 방식으로 홀로그램을 구현하기도 한다. 미국의 컴퓨터 장비업체인 휴렛패커드 사(Hewlett-Packard Company)는 사람의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주고 뇌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지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마존은 시청자의 머리와 눈 위치를 파악해 그에 맞게 영상을 변화시켜 입체감을 주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10달러의 저렴한 비용으로도 입체 홀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는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케이팝 스타들이 동시에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홀로그램을 이용하면 매번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실제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플로팅 방식에 만족하지 말고 진정한 입체 홀로그램을 구현할 차례다. 관객들은 그저 신나게 즐기면 그만이지만 해당 기술을 구현하려면 여러 과학기술 분야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의 고집과 열정 덕분에 케이팝의 화려함이 빛을 발하는 셈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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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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