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불가능’이라는 이름의 파란장미

<KISTI의 과학향기> 제124호   2004년 04월 26일
무더운 여름, 사랑하는 여인에게 시원한 파란색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몇 해 전 호주에서 파란색 카네이션이 개발돼 선풍적 인기를 모은 적이 있다. 붉은색, 분홍색, 흰색 카네이션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보라색에 가깝지만 어쨌든 푸른빛을 내는 블루 카네이션을 보고 마냥 신기해 했다. 블루 카네이션을 개발한 호주의 생명공학회사 ‘플로리진’의 과학자들은 최근 파란장미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파란 장미는 꽃과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진한 장미는 기원전 2,000년부터 재배돼 수많은 교잡을 거쳐 종류만도 1만5천 종이나 된다. 하지만 유독 파란색 장미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 장미를 만들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945년 파란장미 제1호 ‘그레이 펄’이 등장하고, 이어서 1957년에 ‘스털링 실버’, 1964년에 ‘불루 문’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제로 연보라색을 띠고 있어 파란색과는 거리가 멀다. 그 후에는 성과가 없어서 결국 파란장미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파란장미’를 만드는 일. 왜 이렇게 어렵고 불가능한 것일까?

그 이유는 장미에는 파란색을 내는 색소 ‘델피니딘(Delphinidin)’이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색소 성분으로서 델피니딘이 조금이라도 함유되어 있다면, 비록 꽃의 색깔이 붉은색이라고 해도 교배를 거듭함으로써 델피니딘을 많이 함유하는 계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장미처럼 전혀 델피니딘이 없는 경우에는, 교배를 반복하여도 파란 꽃을 만든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파란 색소를 이루는 효소 중에 ‘플라보노이드3(Flavonoids 3)’과 ‘히드록시라아제5(Hydroxylase 5)’가 있는데, 장미는 아쉽게도 이러한 효소들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파란색 색소인 델피니딘 합성이 불가능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미에는 파란 색소가 없는 것이 아니라 파란 색소를 만드는 효소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 즉 ‘청색유전자(Blue Gene)’를 넣어 준다면 파란장미를 만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델피니딘이 산도(pH) 6에서 7 정도의 ‘액포(液胞, Vacuole)’속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장미의 액포 속 산도는 4.5에서 5.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장미꽃에는 파란색이 없으며, 대체로 산성 토양에서 자란 꽃은 붉은빛을 띠고, 알칼리성 토양에서 자란 것은 파란색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기술로 파란장미를

파란 카네이션을 만들어낸 플로리진 사는 다른 꽃에서 파란색 효소의 합성을 이끌어 내는 유전인자를 분리시켜 이 청색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얻었다. 또한 청색유전자를 장미 유전인자에 집어넣어 줌으로써, 청색 유전자를 가진 효소를 배양해 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플라보노이드 내의 파란색 색소를 가진 효소를 몇몇 꽃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일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하여 ‘청색 유전자’를 넣은 파란장미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장열 박사, 그리고 호주의 플로리진 사의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곧 환상의 파란 장미를 볼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해 줄 것 같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장열 박사는 식물세포의 세포벽을 녹인 원형질체에 유전자를 집어넣어 재생시키는 시스템을 확립 시켜 놓고, 여기에 피튜니아의 파란색 유전자를 수입해 집어넣어 보기도 하고, 도라지에서 추출한 파란색 유전자로 장미의 형질을 전환시켜 보는 연구를 하였다

유장열 박사는 갖가지 실험 끝에 최근 희망의 단서를 잡았다고 한다. 유박사는 "경쟁이 치열해 지금은 비결을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6개월 안에 파란 장미를 선보일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또한 호주의 유전공학자문위원회(GMAC)에서도 1천2백 개에 이르는 새로운 유전인자를 지닌 파란장미를 만들어낼 계획을 공개했다. 파란 장미는 현재 온실에서 실험재배 중이다.



파란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라고 한다.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파란장미. 오랫동안 꿈으로만 여겨졌던 파란장미의 실현이 이제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글 : 김형자-과학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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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신비스러운 빛은 파란 장미 아름답습니다.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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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 평점   별 5점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것도 잘응용하면 저렇게 유용히 쓰일수 있군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200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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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 평점   별 5점

아름다운 파란장미네요^^

200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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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 평점   별 5점

파란 장미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니... 놀랍습니다..
과학 메일을 읽을 때 마다 즐겁고 조금씩 지식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ㅋ

200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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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 평점   별 4점

정말로 이 과학메일을 읽을때마다 항상 감탄과 흥미로움이 다가옵니다. 파란장미 볼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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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평점   별 5점

아.. 그러고보니 정말 파란장미는 한번도 보지 못했네요.. 파란장미가 없다는거 오늘 처음 알았어요.. 저 실험이 성공해서 실제로 파란장미를 보게 된다면 정말 신기할것같네요.. 파란게.. 왠지 차가운 이미지일 것같다.. ^_^

200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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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 평점   별 4점

잘 읽었습니다. 파란 장미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군요..
그런데요,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파란 장미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노랑, 분홍, 빨강, 하양.. 장미만으로도 우리는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모든 꽃이 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색을 띄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파란 도라지꽃을 보면서 기뻐하고, 빠알간 장미를 보며 기뻐하면 되는 것이 아닌지... (위 글처럼 복잡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까지 파란 장미를 보고 싶지는 않어요. -.- )

200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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