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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수컷 붕어가 암컷된 사연
<KISTI의 과학향기> 제1115호 2010년 06월 07일
인간에게 성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 주어진 성적 역할로 일생을 살아야 한다. 부인이 겪어야 하는 출산의 고통이 안쓰럽다고 남편이 대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아내가 정자를 생산할 수도 없다.
이 가혹한(?) 운명은 물속에서 땅 위로 터전을 옮긴 조상들이 선택한 것이자 생태계의 구성원 중 많은 종이 선택한 ‘양성생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중에는 양성생식을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성별을 바꾸는 종들이 있다. 400여 종에 이르는 어류가 그들이다.
이렇게 성별을 바꾸는 어류가 보이는 성향은 대개 두 가지다.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와 반대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다.
붕어는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붕어는 몸길이가 3~4Cm인 치어일 때 전체 개체수의 70% 이상이 수컷이다. 그러나 6~7Cm 정도로 자라면 수컷의 비율이 40%로 점차 줄어든다. 다 자란 붕어 중 수컷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에 이른다.
수컷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암컷을 만날 수 없는 수컷 붕어가 성을 바꿔 처녀생식으로 알을 부화하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런 성 전환이 붕어의 개체수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리본처럼 몸이 얇고 길어 ‘리본장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도 여기에 해당한다. 리본장어는 청년기까지 수컷으로 지내다 성장이 멈춘 후에는 암컷으로 성을 전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푸른색을 띠던 몸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완벽하게 암컷이 된다.
말미잘 속에서 생활하는 ‘흰동가리’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수컷보다 암컷이 크다. 이들은 텃세가 심해 몇 마리의 새끼들 외에는 모두 자신의 영역 밖으로 쫓아낸다. 그런데 흰동가리 암컷이 죽으면 새끼를 쫓아내지 않고 부부로 맞아들인다. 수컷이 암컷으로 성별을 바꾸고, 새끼 중에 가장 큰 수컷과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감성돔을 포함한 여러 종의 물고기가 비슷한 성향을 보이면서 암컷으로 성을 바꾼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수컷 어류는 크기가 작아도 많은 수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 반대로 암컷 어류는 상대적으로 큰 생식세포를 가지기 때문에 난자 수가 적다. 즉 수컷의 숫자가 많아지면 난자가 정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전환해 더 많은 난자를 생산하는 것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는 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면서 무리를 지어 번식하는 물고기들에게서 나타난다.
청소놀래기가 대표적인 일부다처제 어류다. 이들은 수컷 한 마리가 여섯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방식으로 무리짓는다. 수컷은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암컷을 보호한다. 그러다가 수컷이 죽거나 없어지면 서열 1위의 암컷이 바로 성을 바꾸기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지나면 외양이 바뀌어 수컷 역할을 시작하고 3~4일이면 완벽한 수컷으로 알을 수정시킨다. 이런 양상은 청소놀래기뿐 아니라 놀래기과의 많은 종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열대 바다에 사는 라이어테일 또한 수컷 한 마리가 15~20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다가 수컷이 사라지면 우두머리 암컷이 바로 성을 전환하여 수컷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경우의 물고기들은 암컷 생식소인 난소와 수컷 생식소인 정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암컷은 항상 수컷으로 성전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수컷들끼리의 과다경쟁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강력한 수컷과 경쟁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따라서 재빠르게 암컷으로 변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것이다.
결국 물고기들은 개체수를 유지하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포함한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고 성을 바꾼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왜 물속 생물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물이라는 환경과 물고기의 단순한 생식기관에 있다.
물이라는 환경은 체외수정을 하는 물고기들의 정자와 난자의 건조를 막아준다. 따라서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관은 육지생물처럼 복잡할 필요가 없다. 생식기관이 단순한 형태이므로 변화가 쉬운 것이다. 게다가 물고기의 원시생식세포는 수컷의 정소에 넣으면 정자로 성장하고, 암컷의 난소에 넣으면 난자로 성장하는 특징이 있어 성전환을 해도 특별한 무리가 없다.
생물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 물을 떠난 생물들은 점차 복잡한 신체구조를 가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육지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모든 장기와 생식세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또 다른 생물은 그 나름으로 생존하는 풍경은 우리 인간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글 : 김병호 과학칼럼니스트
이 가혹한(?) 운명은 물속에서 땅 위로 터전을 옮긴 조상들이 선택한 것이자 생태계의 구성원 중 많은 종이 선택한 ‘양성생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중에는 양성생식을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성별을 바꾸는 종들이 있다. 400여 종에 이르는 어류가 그들이다.
이렇게 성별을 바꾸는 어류가 보이는 성향은 대개 두 가지다.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와 반대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다.
붕어는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붕어는 몸길이가 3~4Cm인 치어일 때 전체 개체수의 70% 이상이 수컷이다. 그러나 6~7Cm 정도로 자라면 수컷의 비율이 40%로 점차 줄어든다. 다 자란 붕어 중 수컷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에 이른다.
수컷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암컷을 만날 수 없는 수컷 붕어가 성을 바꿔 처녀생식으로 알을 부화하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런 성 전환이 붕어의 개체수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리본처럼 몸이 얇고 길어 ‘리본장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도 여기에 해당한다. 리본장어는 청년기까지 수컷으로 지내다 성장이 멈춘 후에는 암컷으로 성을 전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푸른색을 띠던 몸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완벽하게 암컷이 된다.
말미잘 속에서 생활하는 ‘흰동가리’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수컷보다 암컷이 크다. 이들은 텃세가 심해 몇 마리의 새끼들 외에는 모두 자신의 영역 밖으로 쫓아낸다. 그런데 흰동가리 암컷이 죽으면 새끼를 쫓아내지 않고 부부로 맞아들인다. 수컷이 암컷으로 성별을 바꾸고, 새끼 중에 가장 큰 수컷과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감성돔을 포함한 여러 종의 물고기가 비슷한 성향을 보이면서 암컷으로 성을 바꾼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수컷 어류는 크기가 작아도 많은 수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 반대로 암컷 어류는 상대적으로 큰 생식세포를 가지기 때문에 난자 수가 적다. 즉 수컷의 숫자가 많아지면 난자가 정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전환해 더 많은 난자를 생산하는 것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는 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면서 무리를 지어 번식하는 물고기들에게서 나타난다.
청소놀래기가 대표적인 일부다처제 어류다. 이들은 수컷 한 마리가 여섯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방식으로 무리짓는다. 수컷은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암컷을 보호한다. 그러다가 수컷이 죽거나 없어지면 서열 1위의 암컷이 바로 성을 바꾸기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지나면 외양이 바뀌어 수컷 역할을 시작하고 3~4일이면 완벽한 수컷으로 알을 수정시킨다. 이런 양상은 청소놀래기뿐 아니라 놀래기과의 많은 종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열대 바다에 사는 라이어테일 또한 수컷 한 마리가 15~20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다가 수컷이 사라지면 우두머리 암컷이 바로 성을 전환하여 수컷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경우의 물고기들은 암컷 생식소인 난소와 수컷 생식소인 정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암컷은 항상 수컷으로 성전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수컷들끼리의 과다경쟁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강력한 수컷과 경쟁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따라서 재빠르게 암컷으로 변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것이다.
결국 물고기들은 개체수를 유지하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포함한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고 성을 바꾼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왜 물속 생물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물이라는 환경과 물고기의 단순한 생식기관에 있다.
물이라는 환경은 체외수정을 하는 물고기들의 정자와 난자의 건조를 막아준다. 따라서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관은 육지생물처럼 복잡할 필요가 없다. 생식기관이 단순한 형태이므로 변화가 쉬운 것이다. 게다가 물고기의 원시생식세포는 수컷의 정소에 넣으면 정자로 성장하고, 암컷의 난소에 넣으면 난자로 성장하는 특징이 있어 성전환을 해도 특별한 무리가 없다.
생물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 물을 떠난 생물들은 점차 복잡한 신체구조를 가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육지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모든 장기와 생식세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또 다른 생물은 그 나름으로 생존하는 풍경은 우리 인간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글 : 김병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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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물고기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인간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는게 왠지 안심이되네요. ㅋㅋ
2011-04-14
답글 0
붕철이! 일러스트 참 귀엽네요. 글을 읽어보니 어류들의 세계에서는 성 정체성 혼란 문제가 없겠네요.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열린 마음으로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06-07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