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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원천으로 떠오른 동물, 뱀
<KISTI의 과학향기> 제1808호 2013년 02월 20일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우리 조상들의 낙천성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무엇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결하게 돼 있다는 긍정성이 담겨 있다. 이가 없으면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잇몸으로 씹어 넘길 수 있고, 스포츠 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빠진다고 반드시 지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나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긍정성’을 가지라는 게 속담이 전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2013년 계사년의 주인공인 ‘뱀’은 이 속담이 가진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생물이다. 뱀은 애초에 다리 없이 태어나지만 네 발, 혹은 두 발 달린 다른 동물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 다리 없이 껍질로 사는 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뱀 껍질도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의 피부나 털이 하는 역할을 한다. 온몸을 둘러싸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껍질은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이뤄져 습도 변화에 대응하기 좋다. 젤라틴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몸 밖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잘 막고, 몸에 있는 습기도 잘 뺏기지 않는다. 그 덕분에 뱀은 습도에는 큰 상관없이 서식할 수 있다.
언뜻 뱀 껍질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하나씩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비늘 사이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면 비늘 사이의 주름이 늘어나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는 구조다. 비늘이 모두 연결된 덕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도 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뱀 비늘은 이동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리가 없는 뱀은 온몸을 지면에 밀착해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땅이나 물에 비늘이 직접 닿는다. 효과적으로 이동하려면 각종 표면과 맞닿은 비늘의 마찰력을 조절해야만 한다. 또 늘 어딘가에 닿는 비늘이 잘 닳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 한다. 뱀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미세한 표면 구조를 발달시켜 해결했다.
잘 이동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몸통 각 부분의 마찰력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뱀은 직진만 하는 성질을 가졌는데 이는 뱀의 배 비늘이 앞으로 갈 때는 마찰력이 가장 작아서다. 뒤쪽이나 옆쪽은 마찰력이 강해서 온몸을 움츠렸다가 펴면 앞으로 나가도록 이뤄졌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뱀 몸통의 마찰력을 측정해 2009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싣기도 했다. 연구진은 작고 온순한 뱀인 ‘퍼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마취시켜 몸통을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기울여 각 방향의 마찰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작고 옆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컸다. 마찰력이 큰 몸통 옆쪽은 브레이크 장치처럼 작용해 뱀이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뱀 비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일정한 형태의 무늬가 잘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무늬는 뱀 비늘이 지표면에서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마찰을 최소로 줄이고, 최대한 덜 닳도록 도움을 준다.
이런 뱀 껍질의 구조는 사막에 사는 도마뱀인 ‘샌드피시’와 비슷하다. 샌드피시는 모래 속을 파헤치고 다니면서도 반짝거리는 껍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껍질 표면이 마이크로미터(μm·100만 분의 1m) 에서도 매끄럽고 미세한 칸막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작은 칸막이에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등이 담기는데, 이는 샌드피시나 뱀이 윤활제로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뱀은 모래 표면에서도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고, 오랫동안 바닥에 닿아도 껍질이 쉽게 닳지 않는다.
뱀이 사는 환경에 따라 표면 무늬는 조금씩 달라진다. 사막이 아닌 동남아시아처럼 습기가 많은 환경에 사는 뱀은 표면에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무늬뿐 아니라 나노미터(nm·1nm=10억 분의 1m) 크기의 작은 돌기도 발달시켰다. 이렇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표면은 물기를 머금게 되면 뱀 비늘과 물이 맞닿는 부분에 충격이 줄어든다. 그 덕분에 뱀이 이동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며 비늘도 덜 닳게 되는 것이다.
결국 뱀은 다리를 가지지 못한 대신 껍질의 마찰력을 조절하고 독특한 무늬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처럼 날쌔게 달리지는 못해도 이동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껍질도 많이 상하지 않게 됐다. 이들이 ‘다리 없음’을 극복한 지혜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레인보우 보아뱀 껍질을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 크기에서 관찰해 표면의 무늬를 찾아낸 문명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계산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표면을 자동차 엔진 등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자동차 엔진에 있는 실린더는 마찰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 표면을 뱀 비늘에 있는 무늬처럼 만들면 마찰이 작고 마모가 거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한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부분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했다.
또 1년에 2~3차례 허물을 벗으며 아예 새로운 껍질을 가지게 되는 원리도 새로운 영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내 벗겨낼 수 있다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닳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은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전략으로 살아남은 뱀이 주인공인 해다. 올해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잘 될 거라는 긍정으로 헤쳐 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우리 조상들의 낙천성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무엇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결하게 돼 있다는 긍정성이 담겨 있다. 이가 없으면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잇몸으로 씹어 넘길 수 있고, 스포츠 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빠진다고 반드시 지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나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긍정성’을 가지라는 게 속담이 전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2013년 계사년의 주인공인 ‘뱀’은 이 속담이 가진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생물이다. 뱀은 애초에 다리 없이 태어나지만 네 발, 혹은 두 발 달린 다른 동물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 다리 없이 껍질로 사는 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뱀 껍질도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의 피부나 털이 하는 역할을 한다. 온몸을 둘러싸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껍질은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이뤄져 습도 변화에 대응하기 좋다. 젤라틴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몸 밖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잘 막고, 몸에 있는 습기도 잘 뺏기지 않는다. 그 덕분에 뱀은 습도에는 큰 상관없이 서식할 수 있다.
언뜻 뱀 껍질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하나씩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비늘 사이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면 비늘 사이의 주름이 늘어나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는 구조다. 비늘이 모두 연결된 덕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도 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뱀 비늘은 이동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리가 없는 뱀은 온몸을 지면에 밀착해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땅이나 물에 비늘이 직접 닿는다. 효과적으로 이동하려면 각종 표면과 맞닿은 비늘의 마찰력을 조절해야만 한다. 또 늘 어딘가에 닿는 비늘이 잘 닳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 한다. 뱀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미세한 표면 구조를 발달시켜 해결했다.
잘 이동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몸통 각 부분의 마찰력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뱀은 직진만 하는 성질을 가졌는데 이는 뱀의 배 비늘이 앞으로 갈 때는 마찰력이 가장 작아서다. 뒤쪽이나 옆쪽은 마찰력이 강해서 온몸을 움츠렸다가 펴면 앞으로 나가도록 이뤄졌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뱀 몸통의 마찰력을 측정해 2009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싣기도 했다. 연구진은 작고 온순한 뱀인 ‘퍼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마취시켜 몸통을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기울여 각 방향의 마찰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작고 옆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컸다. 마찰력이 큰 몸통 옆쪽은 브레이크 장치처럼 작용해 뱀이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뱀 비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일정한 형태의 무늬가 잘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무늬는 뱀 비늘이 지표면에서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마찰을 최소로 줄이고, 최대한 덜 닳도록 도움을 준다.
이런 뱀 껍질의 구조는 사막에 사는 도마뱀인 ‘샌드피시’와 비슷하다. 샌드피시는 모래 속을 파헤치고 다니면서도 반짝거리는 껍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껍질 표면이 마이크로미터(μm·100만 분의 1m) 에서도 매끄럽고 미세한 칸막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작은 칸막이에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등이 담기는데, 이는 샌드피시나 뱀이 윤활제로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뱀은 모래 표면에서도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고, 오랫동안 바닥에 닿아도 껍질이 쉽게 닳지 않는다.
[그림]뱀이 움직이는 힘은 껍질의 독특한 무늬에서 나오는데, 서식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샌드피시(좌)와 보아뱀(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결국 뱀은 다리를 가지지 못한 대신 껍질의 마찰력을 조절하고 독특한 무늬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처럼 날쌔게 달리지는 못해도 이동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껍질도 많이 상하지 않게 됐다. 이들이 ‘다리 없음’을 극복한 지혜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레인보우 보아뱀 껍질을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 크기에서 관찰해 표면의 무늬를 찾아낸 문명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계산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표면을 자동차 엔진 등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자동차 엔진에 있는 실린더는 마찰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 표면을 뱀 비늘에 있는 무늬처럼 만들면 마찰이 작고 마모가 거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한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부분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했다.
또 1년에 2~3차례 허물을 벗으며 아예 새로운 껍질을 가지게 되는 원리도 새로운 영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내 벗겨낼 수 있다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닳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은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전략으로 살아남은 뱀이 주인공인 해다. 올해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잘 될 거라는 긍정으로 헤쳐 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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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보면 항상 무섭고 신기하죠.ㅋ
2013-03-20
답글 0
좋은정보-감사
2013-02-21
답글 0
뱀이 허물(껍질)을 벗는데 벗어버린 허물에 영야분이나 약효(피부병 등)가 있는지? 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수있는지 궁굼합니다.
2013-02-20
답글 0
잘 보고 갑니다.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새로운 과학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2-20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