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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액체 속 분자의 움직임까지 찍는다 - 초고속 분자 캠코더(?)
<KISTI의 과학향기> 제322호 2005년 08월 01일
1660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뢰벤후크는 인류 최초로 박테리아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광학렌즈를 이용해 만든 현미경으로 박테리아를 270배나 확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가 만든 광학 현미경은 미생물과 인간의 혈구를 관찰하기 위한 필수품이 됐고, 마이크로 세계에 대한 연구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물체를 보는 데 사용하는 가시광선 아래에서는 ‘회절’이라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수천 배 이상을 확대하면, 물체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 작은 세계를 보기를 원했던 과학자들은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현미경들을 고안해냈다.
광학렌즈 대신에 전자나 중성자의 흐름을 렌즈로 활용하는 방식을 알아낸 것이다. 1932년경 독일의 E.루스카는 사물을 수십만 배 이상까지도 확대시킬 수 있는 전자 현미경을 만들어 바이러스나 여러 미세한 구조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뒤를 이어 중성자를 사용해 원자단위를 관측하는 중성자 현미경, 미세한 탐침으로 표면을 훑어가면서 컴퓨터로 원자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등도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이처럼 원자 단위까지 관찰하는 현미경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가지 큰 약점이 남아 있었다.
이들 현미경들이 주1결정(結晶)체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커피 한 잔에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물 분자들과 커피 분자들이 춤추고 있는데 지금까지 등장한 최고 수준의 현미경이라도 이러한 움직임까지는 관찰 할 수 없었다.
우선 분자 크기가 나노미터(㎚) 보다 작아 현미경 같은 기존 방법으로는 관찰이 힘든데다 이들 분자들이 수억~수천억 분의 1초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분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주 짧은 시간단위로 그들의 움직임을 연속 촬영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의 이효철(李效澈)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액체에 빛을 쪼인 후 일어나는 복잡한 분자들의 움직임을 100억분의 1초 간격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 유럽방사광가속기 연구소와 공동으로 유기물을 녹인 알코올(에탄올) 용액에 0.1㎚ 길이의 펄스를 가진 엑스선파를 100억분의 1초 간격으로 쏜 후 여기에서 반사돼 나오는 신호를 측정했다. 1년간의 끈질긴 실험 끝에 그는 에탄올이란 액체에서 특정 물질(C₂H₄I₂)의 분자구조가 바뀌는 과정을 정확히 포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주 짧은 X선 펄스가 분자의 움직임을 찍어내는 초고속 분자 캠코더의 역할을 한 셈이다.
X선 펄스는 그 동안 결정(結晶)을 가진 고체를 관찰하는 데는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왔지만, 액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결정 속의 원자는 입체적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므로 X선이 각 원자에 부딪치면 이들 원자 속의 전자는 X선의 진동수(주파수)와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는데, 이 진동을 근원으로 사방으로 퍼지는 전자파인 X선을 발생시킨다. 이것을 X선 ‘회절’이라 한다.
그런데 X선 회절에 사용되는 X선의 파장은 원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란파와 서로 간섭하게 되는데, 이러한 회절 현상은 원자의 배열방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X선 회절 패턴을 분석하면 원자의 구조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결정체의 구조를 관찰하는 데 적합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교수팀이 1년 이상 끈질긴 반복 실험과 신호 분석을 통해 액체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낸 것이다. 이는 액체에서 일어나는 분자의 구조 변화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10억분의 1m 크기인 나노 물질이나 생체 단백질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나노 물질이나 단백질 등의 기능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험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약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해 작용하는지를 시간에 따라 파악할 수 있어 약물의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즉, 신약의 효능을 직접 보면서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사진 대신 캠코더 녹화장면을 보면서 실상을 파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제약 회사들도 사이언스지 인터넷 판에 소개된 이 교수의 연구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인 것이다. (글: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주1: 결정(結晶) : 일정한 평면으로 둘러싸인 물체 내부의 원자 배열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짐, 또는 그렇게 이루어진 고체.
자신이 광학렌즈를 이용해 만든 현미경으로 박테리아를 270배나 확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가 만든 광학 현미경은 미생물과 인간의 혈구를 관찰하기 위한 필수품이 됐고, 마이크로 세계에 대한 연구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물체를 보는 데 사용하는 가시광선 아래에서는 ‘회절’이라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수천 배 이상을 확대하면, 물체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 작은 세계를 보기를 원했던 과학자들은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현미경들을 고안해냈다.
광학렌즈 대신에 전자나 중성자의 흐름을 렌즈로 활용하는 방식을 알아낸 것이다. 1932년경 독일의 E.루스카는 사물을 수십만 배 이상까지도 확대시킬 수 있는 전자 현미경을 만들어 바이러스나 여러 미세한 구조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뒤를 이어 중성자를 사용해 원자단위를 관측하는 중성자 현미경, 미세한 탐침으로 표면을 훑어가면서 컴퓨터로 원자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등도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이처럼 원자 단위까지 관찰하는 현미경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가지 큰 약점이 남아 있었다.
이들 현미경들이 주1결정(結晶)체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커피 한 잔에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물 분자들과 커피 분자들이 춤추고 있는데 지금까지 등장한 최고 수준의 현미경이라도 이러한 움직임까지는 관찰 할 수 없었다.
우선 분자 크기가 나노미터(㎚) 보다 작아 현미경 같은 기존 방법으로는 관찰이 힘든데다 이들 분자들이 수억~수천억 분의 1초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분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주 짧은 시간단위로 그들의 움직임을 연속 촬영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의 이효철(李效澈)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액체에 빛을 쪼인 후 일어나는 복잡한 분자들의 움직임을 100억분의 1초 간격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 유럽방사광가속기 연구소와 공동으로 유기물을 녹인 알코올(에탄올) 용액에 0.1㎚ 길이의 펄스를 가진 엑스선파를 100억분의 1초 간격으로 쏜 후 여기에서 반사돼 나오는 신호를 측정했다. 1년간의 끈질긴 실험 끝에 그는 에탄올이란 액체에서 특정 물질(C₂H₄I₂)의 분자구조가 바뀌는 과정을 정확히 포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주 짧은 X선 펄스가 분자의 움직임을 찍어내는 초고속 분자 캠코더의 역할을 한 셈이다.
X선 펄스는 그 동안 결정(結晶)을 가진 고체를 관찰하는 데는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왔지만, 액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결정 속의 원자는 입체적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므로 X선이 각 원자에 부딪치면 이들 원자 속의 전자는 X선의 진동수(주파수)와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는데, 이 진동을 근원으로 사방으로 퍼지는 전자파인 X선을 발생시킨다. 이것을 X선 ‘회절’이라 한다.
그런데 X선 회절에 사용되는 X선의 파장은 원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란파와 서로 간섭하게 되는데, 이러한 회절 현상은 원자의 배열방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X선 회절 패턴을 분석하면 원자의 구조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결정체의 구조를 관찰하는 데 적합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교수팀이 1년 이상 끈질긴 반복 실험과 신호 분석을 통해 액체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낸 것이다. 이는 액체에서 일어나는 분자의 구조 변화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10억분의 1m 크기인 나노 물질이나 생체 단백질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나노 물질이나 단백질 등의 기능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험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약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해 작용하는지를 시간에 따라 파악할 수 있어 약물의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즉, 신약의 효능을 직접 보면서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사진 대신 캠코더 녹화장면을 보면서 실상을 파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제약 회사들도 사이언스지 인터넷 판에 소개된 이 교수의 연구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인 것이다. (글: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주1: 결정(結晶) : 일정한 평면으로 둘러싸인 물체 내부의 원자 배열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짐, 또는 그렇게 이루어진 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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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것도 잘응용하면 저렇게 유용히 쓰일수 있군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2009-04-05
답글 0
이렇게 중요한 일을 우리나라사람이 이루어냈다니 자부심이 생깁니다 ^^
2005-08-04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