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야생닭이 가축으로 변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KISTI의 과학향기> 제3777호   2022년 08월 15일
 
매년 여름이 되면 겪게 되는 세 번의 더위, 즉 삼복 중 세 번째 복날인 말복이 찾아왔다. 복날은 여름철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먹어 더운 기운을 몰아내고 체력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조상들이 정한 기념일이다.
 
많고 많은 보양식 중에 어째서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것일까?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닭과 인삼은 열을 내는 음식으로서 따뜻한 기운을 오장육부 안으로 불어넣어 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나 돼지같은 가축들보다도 닭이란 가축이 보양식의 재료로 더 인정받는 이유다.
 
어디 삼계탕뿐이랴? ‘국민 간식’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치킨이 1위로 꼽힐 만큼, 이제 닭은 사람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축이 된 지 오래다. 소, 돼지와 함께 인류에게 있어 꼭 필요한 3대 가축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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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닭은 소, 돼지와 함께 인류의 3대 가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출처: shutterstock) 

이처럼 닭은 3대 가축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지만, 소나 돼지와 달리 인간이 야생에서 자라는 닭을 길들여 사육하기 시작한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키우면 달걀도 부수적으로 먹을 수 있고, 사육 기간도 소나 돼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닭을 어째서 인류는 늦게 가축으로 삼았던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야생닭이 가축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3500년 전으로 추정 
닭이 가축으로 사육된 시기가 다른 가축들에 비해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비로소 밝혀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계는 닭의 사육 시점을 약 6000년에서 10000년 전 사이로 추정해 왔다. 닭이 가축으로 변했다고 예상하는 기간이 너무 광범위하고 길다 보니, 소나 돼지의 사육 시점인 8000년~9000년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 같은 학설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려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닭의 가축화가 불과 3500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와 ‘유물’ 두 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닭의 가축화 기원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전 세계 89개국 600개 이상의 지점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 지점에서 발견된 닭 뼈들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기법으로 분석하여 닭이 가축으로 변하기 시작한 시기를 추정했다.
 
이와 동시에 닭 뼈가 발견된 지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매장 위치 및 역사적 기록물 등을 조사했다. 조사의 핵심은 지역 주민들이 야생닭을 가축으로 삼으려고 시도한 사례가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야생닭이 유입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조사의 목적이었다.
 
그 결과, 인류가 닭을 가축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한 노력은 기원전인 BC 1500년경 동남아시아 일대의 벼농사가 계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오래된 닭 뼈가 태국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인 ‘반나와트’에서 발견됐는데, 그 뼈가 묻힌 시기가 기원전 1650년~1250년 사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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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닭의 조상으로 알려진 적색야계. 아시아 열대 우림에 서식한다. (출처: shutterstock) 

벼농사가 닭의 가축화를 이끈 계기가 된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닭의 먹이로 벼가 주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들었다. 닭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적색야계(red jungle fowl)는 날아다니며 주로 나무에서 생활했는데, 벼가 그런 나무 위의 닭을 땅으로 내려오도록 돕는 미끼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대 사회에서 닭은 숭배의 대상
그렇다면 소나 돼지처럼 좀 더 일찍 닭을 가축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는 왜 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연구진은 고대 사회의 경우 닭은 숭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식량으로 간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유럽에서 닭과 달걀을 지금처럼 음식의 재료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불과 3세기 이후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로는 유럽에 초기 유입된 닭들 중에 상당수가 도살 흔적 없이 땅에 묻힌 사례들을 제시할 수 있다. 
 
닭은 사람과 함께 묻힌 경우도 많았다. 또한 다 자란 닭을 병아리와 함께 묻거나 같은 성별의 닭들끼리 묻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사람과 함께 순장되기도 한 닭들에 대해 연구진은 닭이 ‘죽은 자를 인도하는 안내자’ 같은 문화적 상징성을 가진 동물이었기에 가축화되는 시기가 지연되었을 것으로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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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닭의 유골이 사람 뼈와 함께 발견된 사례. (출처: Antiquity) 

재미있는 점은 이런 해외의 사례들이 과거 한반도 최초 국가였던 고조선의 경우와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이라면 고조선이 고대국가로서 위상을 넓혀나가던 시기인데, 유적지인 요동반도의 양구 지역에서 닭 뼈가 무더기로 발견된 사례가 그런 유사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닭 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사실은 당시 고조선인들이 닭을 가축으로 키워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태국과 한반도는 왕래가 전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닭을 가축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한 양쪽 지역 거주민들의 노력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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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환[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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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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