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역사는 반복된다는 논리에 숨은 과학 - 프랙탈

<KISTI의 과학향기> 제86호   2004년 01월 28일
문명은 갈수록 진보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는 더욱 복잡 다양해지고 세분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로 치부해 왔는지도 모른다. 초기 조건만 완벽히 주어지면, 그 이후의 변화는 순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뉴턴의 결정론도 이것을 가능케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의 빛이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보이기 시작했는데, 프랙탈(fractal)이론이 그것이다.



프랙탈이란 세부 구조가 끊임없이 전체구조를 되풀이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뭇가지의 모습. 나무는 자라면서 큰 줄기에서 잔가지로 뻗고, 잔가지는 더 작은 가지로 뻗어나간다. 이런 패턴은 줄기 끝부분까지 수차례 반복된다.



흥미롭게도 프랙탈이란 개념을 만드는데 영감을 준 것이 바로 해안선이다. 1967년 프랑스의 수학자 베노이트 만델브로트 박사는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영국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의 총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어떤 잣대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재미있는 주장을 제기한다. 예로 기린과 생쥐가 해안선을 따라 달리기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생쥐는 걸음 폭이 짧아 세세한 곳까지 일일이 거쳐 가야 하는 반면, 기린은 걸음 폭이 길어 생쥐가 한참을 돌아돌아 간 길을 단번에 성큼성큼 지나갈 수가 있다. 그래서 생쥐의 입장에선 1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이 기린에겐 채 100여 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만델로브는 해안선이 아주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계적으로 확대해 들여다보면 마치 나뭇가지처럼 비슷한 모양이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구조를 ‘쪼개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프랙투스(Fractus)’에서 따와 ‘프랙탈’이라 부른다.



이 같은 현상은 파도, 구름, 암석, 강, 나무 등 자연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도를 생각해보라. 물밀듯 몰아쳐 매우 복잡해 보이는 파도이지만, 그 내면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파도의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하면 전체 모습과 흡사하고, 전체를 축소하면 또 어느 한 부분인 듯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체와 부분의 구조가 같은 것이다.



자연계뿐 만이 아니다. 이러한 징후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흔히 우리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작은 단위로 보면 저마다의 논쟁거리로 혼란스러워만 보이는 역사이지만, 큰 줄기로 보면 오묘하게도 일정한 주기와 패턴을 갖고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이어진다.



사람의 됨됨이나 조직 문화는 어떨까. 이 또한 굳이 전체를 세세히 파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 가지 행동만 보고서 그 사람의 인격적 소양이나 조직의 유연성 같은 큰 틀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은 ‘부분은 전체이다’ 라는 프랙탈의 기본 원리와 딱 들어맞는 셈이다.



증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심리, 수시로 날아드는 속보 등의 다양한 변수로 인해 ‘귀신도 모른다’는 증권시장이지만, 이 흐름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사한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종종 우리는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20년 혹은 50년을 주기로 성장과 침체를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는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자연계 내부의 프랙탈적인 요인이 사회전반에 깊이 스미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질서하게 나열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흐름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짜여 있는 자연현상. 역사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우리가 대응해 온 최상의 방책은 이 같은 자연현상에서 배운 통계학적인 대처였다. 자연 현상 속에 숨어 있는 물리적, 기하학적, 철학적 내용은 향후에도 우리가 연구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글: 송은영/ 과학칼럼니스트,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재미있는 물리 상식’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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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은 ‘부분은 전체이다’ 정말 그런것 같네요. 프랙탈의 기본 원리 재미있네요. 세상은 돌고 돈다.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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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 평점   별 5점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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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영
  • 평점   별 4점

안녕하세요.
송은영입니다.

저는 물리학을 전공했고요.
현재 과학칼럼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님의 과학에 대한 관심, 감사드리고요.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200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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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관리자
  • 평점   별 5점

안녕하세요 김윤상님.
우선,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지금 현재 인쇄를 하는 출력기능이 미비하여 불편한 점을
조만간 개선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는 독자님들을 위한 편리한 기능을 추가하는 등
서비스를 개선하여 새롭게 단장할 예정이랍니다.
그때까지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_^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isti의 과학향기-

200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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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manwoo
  • 평점   별 4점

프랙탈 이론을 일반인도 쉽게 납득되도록 써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문득 어렸을 적 무릎에 덮은 이불을 굽이굽이 산맥으로 삼아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보았던 기억, 큰 비가 온 뒤 땅에 깊이 패인 물고랑이 아무리 봐도 그랜드캐년과 별다를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도록 들여다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어쩌면 '프랙탈적 사고'와 일맥상통하였던 것일까요?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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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 평점   별 4점

매번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쇄를 하려니 글이 잘리는군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텐데요.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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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 평점   별 4점

이글을 보니 성경의 전도서 1장 말씀이 생각이 나네요..
이미 있던것이 다시 있겠고 이미 한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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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교헌
  • 평점   별 5점

송은영선생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물리학을 전공하신 것 같은데 직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연과학의 매력을 느낍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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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재
  • 평점   별 5점

음 소설 나무의 주제 가 이거군요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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